지금도 내 아들은 본받고 싶은 인물 제 1호로 제 작은 외삼촌을 꼽는다.
몇 년전에 이 곳에 글로도 쓴 적이 있는 내 동생 넘 얘기다.
아들 넘이 제 외삼촌을 본받고 싶어하는 이유는 대략...
낮 12시 넘어서 일어난다.
밤에 새벽 다섯시까지 맘대로 컴퓨터 게임을 한다
밤중에 맥주도 사먹고 오징어도 사먹고 빵도 사먹는다
일도 안하고 빈둥빈둥 논다
맨날 만화와 비디오를 빌려다 본다
위와 같이 한치의 오차도 없는 백수의 기본에 충실했던 남동생의 화려한 생활을 가장 가까이에서
( 주말마다 한침대를 쓴 관계로) 지켜본 이후로 아들 넘의 장래 희망은 '백수' 가 되었던 것이다.
그 희망사항은 중 2 가 되는 현재도 매우 유효하여 가끔 녀석에게 보이스 비 엠비셔스 (영어 타자 못침)를
일깨우는 차원에서 약간의 몽둥이 찜질을 특효약으로 쓰는 중이다.
물론 동생넘은 화백 생활을 2년만에 어쩔 수 없이 접고 ( 같이 죽자고 엄마가 벽제화장터 까지 끌고 갔다가
떵 때문에 살아난 이후.. 궁금하신 분은 지난 글을 뒤적이기 바람)
취직이란 걸 했다가 사장이 맘에 안든다고 때려친다는 걸 온 식구가 애걸복걸 말려서 간신히
현상유지를 시켰는데, 얼마후 그 회사가 망하는 바람에 또다시 백수가 되었다.
그러나 또 엄마가 벽제화장터에 끌고갈까봐 겁을 집어먹은 넘은 내친 김에 지 회사를 차려볼거라고
이름도 거창한 I&S 그룹(?)을 설립했다.
I&S 그룹이란 녀석의 앞 이름자를 딴,,, 아무 뜻도 없는 이름이다..
2년동안 갈고 닦았던 빈대정신을 이어받아 더욱 더 내공을 연마한 끝에 이름만 있는 I&S 그룹이 드디어 창업 2년 만에 흑자로 돌아서는 개가를 올리게 되어 온 집안의 기쁨이 되었다
(돈 안빌려 가니까. 돈달라고 안조르니까)
드디어 장가까지 가게 되었다
온 집안의 여론이... '갸가( 올케) 철딱서니가 없어서' 내 동생한테 시집이란 걸 오게됐다지만
실상은 그게 아니었음이 지난 설날 밝혀지고 말았다.
몹시도 화기애매한 설 전날,, 오랜만에 온 식구들이 한자리에 모였는데,
시사문제 운운하는 얘기 끝에 내 동생이 엄마한테 이렇게 소리를 쳤다
'엄마! 에버랜드 빼라그래 . 월세 몇 푼 나온다고 속시끄럽게 빌려주고 그래?'
먼 소리여??????
'천안 독립기념관 땅도 그냥 기증해버려, 괜히 쪼잔하게 월세 몇 푼 챙기지 말고'
저 사발면이 먼 소리를 하는거야?????
그러더니 녀석은 지 마눌을 딱 째려보면서 말했다
'광화문 미스 김이 우리 엄마란 말야. 지금은 저렇게 쪼그만 식당한다고 위장하고 있지만
그게 다 돈 많다고 소문나면 곤란해서 저러구 있는거라구'
온 식구가 와르르 웃었다. 녀석의 개그가 나온 것이다
녀석이 또 말했다 ' 총독부 건물 있지, 그거 왜 헐린줄 아냐?
김영삼 대통령이 나라기강 바로세우기 한다구 소문난건데
사실은 우리 엄마가 기분나쁘다구 땅 빼라구 해서 할 수 없이 옮긴거야.
엄마 기분나쁜데 미군기지 땅도 빼라구 그럴까?'
모두 배를 잡고 웃다가, 우리 둘 째 올케가 하는 말에 그만 몽땅 기절하고 말았다.
'저는요........오빠가 하는 말이 다 진짠줄 알고 결혼한거예요.....'
조만간 녀석의 순익이 억단위를 넘는다니,
백수 생활동안 녀석이 조카들 봐준다는 핑계로 우려먹은 내 돈들,
피자 값 떼먹은 돈들을 쫌 돌려받을 수 있으려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