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남자 전업주부'입니다.
상황에 떠밀려서 어쩔수 없이 선택한 게 아니라
출산 뒤에도 직장에 다니고 싶어 하는 아내의 의견을 존중해서 회사를 그만두고
(15년 전에는 아빠의 육아휴직이 없었으니까) 그 직업으로 15년을 살아왔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아내의 수입이 더 많았느냐?'고 묻는 분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공무원인 아내가 180만 원을 받을 때 나는 주5일
근무를 하면서 300만 원의 수입을 올리고 있었으니까요.
출산을 하게 되면 육아는 당연히 여자(엄마)의 몫으로 돌리는 게 사회적으로나
남자들의 통념도 그렇습니다. 한 여자자연인과 한 남자자연인이 혼인을 하면서
아니가 탄생하는데 그걸 어느 한편의 책임으로 전가하는 게 합리적인가? 생각을
했고, 머리를 저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가 사랑하는 아내의 의견을
존중해주고 싶어서 전업주부의 길을 택했지요.
과천에서 나고 자란 다향이랑 정말 성실하게 놀아주었고, 모든 먹거리는 직접
만들어서 해결했습니다. 적어도 만 세 돌이 될 때까지는요. 아이가 실컷 먹고,
놀고, 잠 자도록 배려를 했지요. 그 아이가 7살이 될 무렵 과천에 재개발의 바람이
불었고, 우리가족은 분당 율동고원 앞으로 이사를 갔습니다.
녹지의 비율이 과천보다도 높고, 문화시설이 훌륭한 분당이 마음에 들었지만
말로만 듣던 사교육을 접하고 많이 놀랐습니다. 그때 '이 어린아이를 무한경쟁의
틀 속으로 등 떼밀 것인가?'에 대해서 고민을 하다가 '어릴 때 못 놀면 언제?'라는
생각으로 제주도로 이주를 했습니다.
제주에서 말을 타고, 바다에서 수영을 하며 한라산을 오르내리면서 아이가 성장을
했습니다. 그렇게 초등학교 2학년 1학기를 마치고 학교를 그만두었습니다. 질식할
것 같았던 학교-아이가 먼저 문제점을 제기했지만 아내와 나도 똑같이 느끼는 문제-
분위기 때문에 홈스쿨링을 시작했지요.
날마다 날마다 즐겁게 지내고, 한 달씩 배낭여행도 다니면서 아이의 견문을 넓혀
주었습니다. 그렇게 4년 반을 함께 놀고, 지난해부터는 전북 부안에 있는
변산공동체학교 중등부에 입학을 했습니다. 몇 년 전 다큐3일에도 소개가 되었고,
그것을 설립한 분이 바로 보리출판사의 대표인 윤구병선생님입니다.
그곳에서 아이는 건강하고 씩씩하게 자라며 아빠인 나는 새로운 책을 준비하면서
전업작가로서 살아가려고 합니다. '다시 서울로 돌아갈까?'생각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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뾰로롱~
답글
밥상차리는 남자
하지만 가족을 위해서 애쓰는 건 당연한 일이지요.
스페이스
답글
밥상차리는 남자
아이가 행복한 사람으로 살 수 있도록 도와주려고
노력은 했습니다. 어느 특정 직업군이 아닌 나이가
먹어도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해주고 싶었지요.
소엽
답글
밥상차리는 남자
그곳을 졸업한 아이는 지금 '로드스콜라'에서 아주 행복하게 지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