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제 오후에 전화를 받았습니다. 중학생인 아들이 컴퓨터게임 중독에
빠져 있어서 격리가 필요하다고, 여름방학 한 달 동안 아이를 맡아
주었으면 합니다. 그 말을 듣고 몇 가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첫째. 격리는 답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사는 둥구나무가
조금 외지기는 하지만 4-50분만 걸어가면 표선면에 닿습니다. 그곳에는
피시방이 여럿 있고요. 더 중요한 건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내고, 분석해서
치료를 해야 할 텐데 아빠가 엉뚱한 처방을 내놓았다는 것입니다.
둘째. 컴퓨터게임에 중독된 것이 아이만의 잘못일까? 하는 생각입니다.
부모가 맞벌이를 합니다. 학교에 다녀온 아이는 오래도록 집에 방치가
되었습니다. 혼자서 할 수 있고, 즐거움을 찾을 만한 게 뭐 있을까요?
그래서 나한테 보내기보다는 너나 아내가 아이와 지내는 시간을 늘리는
게 좋지 않겠느냐고 물었지요.
일-사업-은 어떻게 하느냐고 묻습니다. 그 녀석을 위해서 돈을 버는 건데.
나로서는 그 말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아이는 부모의 애정과 관심을
필요로 하는데 아빠는 보수를 받고 아이를 돌봐줄 사람을 찾습니다. 본말이
전도된 것입니다. 애써 경제활동을 하지 않아도 될만큼 경제력을 갖추고 있는
지라 더 의아 스럽습니다.
셋째. 작년에 만나본 아이는 고운 심성을 가졌습니다. 한 달이 아니라 이삼
년이라도 같이 살고 싶습니다. 처음에는 컴퓨터가 없는 집에서 힘들겠지만
다른 즐거움을 가르쳐준다면 충분히 극복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 달은 증상만 완화시킬 수 있는 기간입니다. 집으로 돌아가면 다시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겠지요. 지난해에 두고 가라할 때는 그냥 데리고 가더니만
상태가 더 나빠진 모양입니다.
어쨌거나 혼자서 결정할 문제는 아닙니다. 정희씨, 다향이랑 함께 사는 만큼
두 사람의 의견이 매우 중요하지요. 저녁에 가족회의를 했습니다. 다향이가
반대합니다. 첫째, 자신이 불편하고, 둘째, 아빠가 한 달 동안 애써봤자 집으로
돌아가면 다시 컴퓨터게임에 빠질 테니 그만두라고 합니다. 그래서 안건이
부결되었습니다. 나랑 같은 생각을 하는 다향이가 대견했고요.
다향이가 반대만 한 게 아니라 대책까지 내놨습니다.
"아빠, 아저씨한테 전화해서 2학기부터라도 공동체에 보내라고 해. 공동체에도
게임중독으로 온 애들이 있는데 저녁만 먹으면 자."합니다. 그것이 정답이라고
생각합니다. 함께 공부하고, 땀 흘리며 일하다보면 게임같은 것에 신경쓸 겨를이
없지요.
열다섯 다향이가 오십을 바라보는 후배보다 문제의 핵심을 잘 꿰뚫어 보는 것
같습니다. 후배의 아이뿐만 아니라 컴퓨터게임에 중독된 아이들이 많다고 합니다.
요즘은 프렌디라는 말이 유행하는 것 같습니다. '친구같은 아빠'라는 뜻이라지요.
프렌디로서 게임이외의 다양한 즐거움에 아이가 눈을 뜨도록 도와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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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디베어
현명하신 아버지와 따님이십니다..ㅎㅎ
답글
밥상차리는 남자
그집 아이랑 소통하며 치유해주고는 싶은데 '여름방학 한 달'이라고 시한을 정한
건 졸업장을 염두에 두었기때문이 아닌가합니다. 아이가 병들었다면 그것의 치유가
우선이지 졸업장이 급한 건 아닌데요.
학교를 그만두라는 게 아니라 1-2년 늦어진다고 해서 큰 일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비비아나
사람들은 근본을 잊고 살지요..
부모들은 아이들을 키우고 행복한 가정을 만들려고
일을하고 맞벌이를 하지만..
정작 아이들은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 늘게되니..
아이를 통제하고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이 곁에 없는 것 !
안타깝습니다..
답글
밥상차리는 남자
그러면 자연스럽게 우선순위를 정해야 하는데 엉뚱한 걸 앞에 놓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요.
윗 글에 언급한 후배는 부모로부터 분당에 5층짜리 건물을 물려받았거든요. 그 임대수익만
해도 대단할 텐데 자꾸 돈을 벌려고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소중한 걸 놓쳐가면서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