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폐암말기 소식을 접한 작년 2월 말, 아버지의 마지막
가는 길이나마 곁을 지켜주고 싶어서 부모님을 집으로 모셨습니다.
그때 제가 부모님을 모시겠다고 하지 않았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다른 누가 병구완을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버지가 병마의 고통으로 힘겨워 할 때, 나 역시도 가장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아버지가 영면에 드신 뒤에는 어머니가 많이 불편했고,
급기야는 병원에서 기저귀를 갈아채우고, 목욕을 시켜야 하는 상황까지
벌어졌지요. 나는 죽을 힘을 다해서 어머니를 모시는데 동생들은 성에
차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 다시는 어머니를 보내지 않을 것처럼,
모셔갔지요. 내 생각이나 감정과는 아랑곳없이.
지난 4월. 아버지의 기일에 어머니를 모시고 왔습니다.
어머니의 거취를 정하려고 개개인의 의견을 들어보니 어느 누구도
어머니를 모실 형편이 안 되었습니다. 그래 어머니를 모시면서 뒷방
늙은이 - 천덕꾸러기 - 취급을 하기 보다는 노인시설로 모시는 게 어떨까?
했지만 모두 반대를 했습니다. 그리고 내게 떠맡기고 갔지요.
그때 내가 거부를 했으면 누가 모셔갔을까? 궁금합니다.
차마 지면에 공개할 수는 없지만 내게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습니다.
그것을 동생들은 잘 알고요.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서 두 동생에게
어머니를 네 달만 돌봐주기를 부탁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모두 거절했지요.
어머니를 계속 모시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을 만들기 위해서라고 설명을
했음에도 모르쇠 했습니다..
어머니는 모시는 게 물론 쉬운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어머니 곁에 계속
붙어있을 수도 없고, 내가 일을 하거나 손님을 맞기 위해서 찻집에 있으면
어머니는 말 벗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노인들에게 가장 두려운 건 죽음의
공포와 더불어 외로움입니다. 그래 어느 자식도 마음 편안히, 외롭지 않게
모실 형편이 안 된다면 노인시설에서 친구들과 지내는 건 어떨까? 해서
어머니와 어려운 이야기를 나눈 것입니다.
하지만 나와 어머니가 뜻을 모았다고 해서 마음대로 시설에 갈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심사를 신청해야 하고, 조사관이 다녀가고, 최종적으로 결정되기
까지는 한 달이 걸린다고 합니다. 탈락을 하면 그만이고요. 동생 중의 하나가
어머니와 의논한 카페의 글을 본 모양입니다. 그리고 무슨 말들이 오갔는지
어머니를 보내라고 합니다. 그것도 어머니의 입을 통해서 말입니다.
어머니를 모시고 있는 내게는 한 마디 말도 없이 저희들 마음대로 모셔다
놓고, 또 모셔간다고 합니다. 생각이 다르다 하여 형이나 오빠취급을 하지
않으니 나의 인격과 능력에 문제가 많다는 생각을 합니다. 손 윗사람으로서
인정을 받지 못했으니 이제 형제간의 인연을 끊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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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상차리는 남자
아주 오래전부터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나면 남남이 되겠구나!'
생각했던 동생들입니다. 그때까지만이라도 잘 지내고 싶었습니다.
부모님이 마음의 상처를 받을까 염려스러워서 그동안 혼자서
애면글면했던 것인데 결국은 이리 되고 말았네요. 노인문제에
대해서 진지한 고민을 해야할 때가 아닌가 싶어서 부끄러운
가정사를 공개한 것이고요.
답글
소엽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내가 남을 아프게 했던 기억이 되살아난 탓이었다는 것...
참회를 하면서 그 참회가 눈물이 되어 바깥으로 나갔던 걸까요...
끊기는 쉽지만 다시 잇기는 어려운 법입니다...
내가 나를 먼저 들여다보고,
나를 비워야 할 시간이 먼저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답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