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로 이주한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8년째입니다. 처음 봄을 맞아서 소영이 할머니를 쫓아다닐 때만 해도 어떤 게 고사리인지 알 수가 없었지요. 할머니는 줄기가 길고, 아이 주먹 같은 고사리를 잘도 끊었지만 내 눈에는 잎이 활짝 핀 것밖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고, 할머니가 껄껄 웃으셨지요. 처음으로 하나를 찾아내니 고사리가 눈에 띄기 시작했습니다. 키가 작아 볼품없는 작은 고사리였지만 그 기쁨만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지요.
해마다 봄이 오면 고사리를 꺾기 시작했습니다. 이른 아침부터 고사리를 끊는 분들과는 달리 살림하며 아이 돌보느라 한낮에만 끊었기 때문인지 역시나 실한 것을 채취하기란 몹시도 어려웠습니다. 장바구니를 들고 들판과 오름, 그리고 목장주변을 다니면서 하나하나 끊을 때마다 마냥 신기하기만 했습니다. 비록 키가 작고, 마르거나 더러는 잎이 조금 핀 것일지라도 ‘내가 먹을 건데 뭘!’하면서 잠깐씩 채취를 했었습니다.
지난 3월에 무릎수술을 받았고, 퇴원 뒤에도 한동안은 목발을 짚고 다녔습니다. 무릎을 구부릴 수도 없고, 조금만 걸어도 무릎에 돌을 매단 것처럼 묵직해졌지만 운동 삼아서 조금씩 끊었지요. 처음에는 삼사십 분, 며칠 뒤에는 한 시간 씩 집 주변에서 고사리를 채취하면서 많은 것을 깨달았습니다.
마음대로 걸어 다닐 때와는 달리 조금 더 찬찬히 살피게 되었고, 숨바꼭질하는 아이처럼 숨어있는 고사리를 찾아내게 되었습니다. 잎이 활짝 핀 고사리 아래서, 찔레가시 속에서 키 크고, 실한 고사리를 발견하는가 하면 밑동만 보고서도 좋은 고사리를 찾아낼 수 있었지요. 어디서 이렇게 실한 고사리를 끊었냐고 퇴근한 아내가 묻습니다. 그래 집근처에서 끊었다고 하니까 고개를 갸우뚱합니다. 다음날 새벽 아내가 장바구니를 들고 집을 나섰습니다. 출근 전에 고사리를 조금 끊겠다고 했는데 돌아와서는 ‘별로 없는데’합니다. 자동차로 여행할 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도보여행 때 발견되어지는 것과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집 주변이 고사리 밭이라는 글을 [다음-카페 ‘밥상 차리는 남자의 둥구나무’]에 올린 적이 있습니다. 그 글을 보고 육지에서 이주해온 분들이 여럿 왔었는데 대부분이 실망한 표정으로 돌아갔습니다. 한 시간만 고사리를 끊어도 마트에서 파는 가격으로 2만 원어치는 될 텐데 양에 차지 않는 모양입니다. 내가 씨를 뿌려서 재배한 것도 아닌데 낫으로 벨만큼 되어야 고사리 밭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아무튼 고사리를 끊는 것은 즐거운 일입니다. 처음에 좋은 고사리가 눈에 띄지 않으면 초조해집니다. 마음이 바빠지면 아주 작거나 볼품이 없는 고사리에도 손이 가게 되지요. 그러다가 상품가치가 있는 키 크고, 실한 고사리를 발견하면 ‘공연히 욕심을 부렸구나.’반성하게 됩니다. 고사리 끊는 재미에 빠지게 되면 멈추기가 힘듭니다. 하나만 더, 하나만 더 하다가 길을 잃어버리기도 하지요. 그래 해마다 길을 잃는 사람들이 발생하는 모양입니다.
채취한 고사리를 푹 삶아서 잔디밭에 널어둡니다. 아침에 널어두면 대여섯 시간 뒤에는 바짝 마르지요. 고사리가 겹치지 않도록 하나씩 펴서 말리는 걸 보고, “뭐 하러 그렇게 까지 해요?”라며 아내가 핀잔을 줍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고사리가 겹치지 않도록 가지런히 줄을 맞춰서 말립니다. 파란 잔디밭에 나란히 누워있는 통통한 고사리를 보면 마음이 넉넉해집니다. 해가 넘어가기 전에 바짝 마른 고사리를 손으로 쭉 훑으면 갈무리하기가 아주 수월합니다. 통통한 것이나 바짝 마른 것이나 줄지어 누워있는 고사리는 물론 바구니에 가지런히 담긴 고사리는 아주 독특하고, 아름다운 기하학적 무늬를 만들어 냅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나는 고사리를 끊으면서 감사와 비움의 마음을 배우고, 심미안을 기르며, ‘빨리빨리’대신 천천히 가라는 가르침을 받습니다.
오성근 <작가, 둥구나무 찻집 & 민박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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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상차리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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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
울서방님이 요즘 갑자기 고사리에 필이 꼿혀스리..
밤마다 고사리 안주로 쐬주한잔씩 드신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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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상차리는 남자
감자, 표고버섯도 훌륭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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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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