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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에서 "안녕하십니까, 여기는 장충체육관입니다"라는 아나운서의 말. 먹고 살기 힘들고 마땅히 즐길 것도 없던 시절, '박치기 왕' 김일, '백드롭 명수' 장영철, '당수 귀신' 천규덕의 프로레슬링 경기라도 있는 날이면 동네 만화 가게는 손님들로 미어터졌다. 세계 챔피언이 된 순간은 장충체육관 역사에서 참으로 화려한 페이지 중 하나. 주식(主食)이었던 보리쌀 한 가마가 1000원 하던 당시, 링 사이드 입장권이 6000원. 유복자로 태어나 가난을 운명으로 알고 살아온 한국 젊은이가 66전 66승 세계 챔피언을 무릎 꿇리는 순간 온 나라가 열광했다. ▶장충체육관이 들어선 남산 자락엔............ 명성황후 시해 때 일본군에게 맞서다 순사(殉死)한 훈련대장 홍계훈과 장병들을 모신 사당이 있었다. 일제는 이 사당을 허물고 조선 침략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기리는 절 세웠다. 정부 수립 후엔 육군체육관이 들어섰고, 1963년 2월엔 국내 첫 돔 형식 실내 체육관으로 장충체육관이 문을 열었다. ▶장충체육관이 문 연 지 50년 만에 안팎을 두루 뜯어고치는 리모델링을 시작했다. 돔 천장 올리는 기술이 달려서 아시아 선진국이었던 필리핀 기술자들이 옛 문화관광부 청사와 미국 대사관 건물을 짓는 데도 참여했다. 그때 우리의 세 배가 넘던 필리핀의 1인당 국민소득이 ........... 지금은 우리 10분의 1 수준이다. 장충체육관 사진을 보며 우리가 걸어온 지난 50년을 새삼 돌아보게 된다. (김태익 논설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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