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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이 되어서야 진정 나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깨달았어요"
작가마당 수필방의 오렌지님 글/ 김민정([email protected]) "아무리 어렵고 힘든 과거도 잘 극복한 사람에게는 그 자체가 무궁한 영광이고 햇살이지만 저에겐 고난들이 과거가 아니라 아직 현재진형형이라서 제 모습을 주변 사람들에게 보여주기가 아직은 부끄럽네요." 작가마당 수필방의 오렌지님(31). 작가마당에서 유일하게 본명을 밝히지 않는 필자로서 그는 그 이유를 이렇게 털어놓는다. 비록 상큼한 느낌의 '오렌지'라는 필명을 대신 쓰고 있긴 하지만, 그의 글을 읽으면 그의 지난 잿빛 젊은 날들에 마음 한 편이 아려오고 안타까운 마음은 어느새 눈물로 고이게 될 때가 많다. 때로는 웃음이 터지게 하다가도 왠지 씁쓸함이 완전히 지워지지 않는 그런 글들이 그의 글방에 앉아있다. "고등학교 시절 저는 남들이 흔히 말하는 '문학소녀'였어요. 글을 잘 쓰려고 특별히 노력했던 것도 아닌데 생활 속에서 어떤 느낌을 받으면 나도 모르게 그 느낌이 문장이 되고, 활자가 되어 제 머리 속을 맴맴 맴도는 바람에 그 느낌을 글로 정리하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었지요. 반 아이들이 '안 쓸것도 죄다 써'라는 별명을 지어줬을 정도로 항상 수첩을 가지고 다니는 메모광이었고 혼자 앉아 늘 뭔가를 쓰면서 그렇게 사춘기를 보냈습니다." 그는 가난한 집안 형편 때문에 자신의 꿈을 미래와 연결시킨다는 것 자체가 죄악이라고 생각했던 소심한 10대 소녀였다. 또 20대는 그가 하고 싶은 일을 어떤 과정을 통해 구체화시켜야 하는지 자체를 몰라 '아둔하게' 그냥 그렇게 보냈다. 글을 쓰고 싶다는 막연한 마음은 있었지만 정말 자신에게 소질이 있는 건지 확신도 없었고, 설사 확신이 있었다 하더라도 실천으로 옮길 용기도 그에겐 없었다고. 글을 쓰는 것은 자신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는 것 "사춘기를 지나면서 제가 여기저기 흘려 써놓은 메모들을 보니 이건 '글'또는 '문학' 이라기보다는 어려움을 이겨나가기 위한 나 자신에 대한 위안 삼기, 또는 스스로에 대한 변명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란 객관적인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또 천재작가들의 사춘기와 저를 비교해 보니 저는 너무나 평범하고 아는 것이 없었으며 그저 어렵게 살아내느라 가슴속에 할말만 많이 차 있어 주책없이 말을 흘리고 다니는 것 아닌가 하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지요. " 그래서 오렌지님은 사춘기를 보내고 20대가 되면서 글쓰기를 과감하게 정리했다. 더 이상 마음속에서 꿈틀대는 말과 글에 귀를 기울이지 말고 철저한 생활인이 되자고 마음먹고 일기조차도 쓰지 않으면서 그렇게 10년을 보냈다고 한다. "그랬는데, 다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서른이 되고 보니 여러 가지로 느낌이 달랐습니다. 서른이 되어 바라본 세상은 10대나 20대에 느꼈던 세상과는 많이 달랐고 제가 너무나 오랫동안 스스로를 방치하며 살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여기저기 기웃기웃 하다가 사주대를 알게 되었지요." 사이버주부대학에 처음 들어와 '나만의 방'에서 그냥 자신의 하루 일상을 몇 차례 글로 올렸는데 그것이 결국 작가마당에 '오렌지'라는 간판을 걸 수 있게 된 계기가 되어 주었다. 이 작은 공간이 30년간 해오지 못했던 '자신에 대한 사랑을 실천할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가 될지도 모르며 '후회와 아쉬움뿐인 자신의 과거와도 화해할 수 있는' 발판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그에겐 이 공간에 있는 시간들이 너무 소중하고 행복하다. 동경의 대상이었던 국문과 학생이 되다 직장 생활하면서 딸아이 키우고, 살림하며, 틈틈이 글쓰고, 그것도 부족해 오렌지님은 작년에 방송통신대에 입학했다. 문학소녀시절 동경의 대상이었던 국문과에, 내가 대학을 간다면 꼭 선택하리라던 국문과에 서른이 넘은 나이에서야 들어가게 된 것이다. 글을 쓰고 싶으면서도 자신에 대한 확신이 없어 포기해버렸던 기억이 있었고, 또 국문과를 선택하면 꼭 그에 맞는 답을 찾아야만 할 것 같다는 부담감 때문에 주저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래서 아예 현실적인 유아 교육과에 갈까 하고도 생각했지만 '에라 모르겠다, 더 나이 들기 전에 한번 가보자' 는 배짱에 드디어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는 오렌지님. "직장 생활하면서 염증을 느낄 때가 많았는데 그 때마다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을 참 많이 했었어요. 직장 생활하면서 야간대학을 다니는 동료들을 보면 부럽기도 했지만 공부한다는 이유로 직장에서 괜히 흠 잡히기 싫다는 융통성 없는 고집으로 20대를 다 보내고 서른이 넘어서야 시작하게 됐네요." 비록 시험 때만 간신히 공부하고 시험을 치르는, 스스로 불성실한 학생이라지만 그래도 오랫동안 꿈꿔오던 공부를 하는 그의 마음은 누구보다도 풍요로울 거라는 생각이 든다. 예쁜 딸아이의 웃는 얼굴을 볼 때가 가장 행복하다는 오렌지님은 요즘 둘째를 낳을 계획으로 마음이 들떠 있다. 그가 오렌지라는 이름으로 지난 시절의 앙금들과 착실한 화해를 이루고, 언젠가 그의 빛나는 이름 석자가 이 세상에 당당히 나서게 될 그날을 기다려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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