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을 흐르는 강’에서 이 세상을 자신 있게, 그리고 당당하게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려낼 겁니다. 특히, 어렵지만 즐겁게 살아가려는 여자들의 모습을 소설 속에 담아 내고 싶어요. 소설을 쓰는 것은 곧 나 자신을 찾아가는 여행이기도 하지요. 이 여행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사주대 작가 마당에서 소설 “생을 흐르는 강”을 연재하고 있는 정현숙님. 사이버 세상에서 쓰는 정현숙님의 필명은 소엽이다. 작을 소(小)에 빛날 엽(燁). ‘세상에 태어나서 커다란 빛은 못될지라도 자그마한 빛으로는 남고 싶다’는 깊은 뜻으로 그가 소녀 적부터 생각해 오던 이름이다.
나이가 많고 적음을 떠나 학창시절에 문학소녀를 꿈 꾼 적이 있다면 누구나 소설 한편 정도는 끄적였던 기억이 있을 법하다. 소엽님은 그 소녀 적에 머리 속을 맴돌던 이야기와 인물들에 대한 화두를 오래도록 놓지 않았다. 어렸을 때 소엽님이 썼던 소설에는 첫사랑에게 느끼는 아련한 그리움과 기다림이 그려져 있었다. 세월이 흘러 마흔도 훌쩍 넘어버린 지금 그는 헤어진 사람들에 대한 그리움과 다가올 미래에 대한 기다림을 동시에 소설 속에 담고 싶어한다.
“내 소설 속의 주인공들은 모두 고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나와 함께 나이를 먹어간 인물들이예요. 그래서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나이도 나와 동 연배이지요. 지금 연재된 소설의 내용을 보면 모두 하나하나 떨어져 있는 듯 보이지만 이야기가 깊어지면서 그들은 모두 만난답니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인 난하(蘭荷)는 소엽 이전에 쓰던 아이디이다. 난하는 ‘난초와 연꽃의 향기를 가지고 어느 곳에도 걸림 없이 살아가는 자유로운 여자’라는 뜻이다. 소엽님은 앞으로 소설 속의 난하를 통해 그 자신을 보여줄 예정이다.
“이젠 저의 목소리에서 편안함과 즐거움이 느껴진데요.”
소엽님은 남편을 중매로 만나기는 했지만 동창이기도 하다. 남편은 일로 바빠 늘 늦게 집으로 돌아왔고, 소엽님은 그때 소설을 많이 썼다. 결혼 생활을 시작하며 소엽님은 남편에게 자신의 온 관심과 사랑을 쏟아 부었지만 그런 아내를 남편은 부담스러워했다. 그것이 자신의 집착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은 소엽님이 30대 후반이 되어서였다. 정현숙님의 30대는 지나친 사랑과 관심이 집착이 되고, 그 집착이 또 고통을 낳는 세월이었다.
소엽님은 30대 후반에 하이텔 통신에 글쓰기를 시작했다. 아이들 키우는 것이 힘들다보니 꼭 써야겠다는 의지가 희석되어 글쓰기를 잠시 멈춘 적도 있다. 하지만 채팅을 통해 사람들과 사는 이야기를 하다보면 진지하게 나를 돌아보고, 남편에 대해 돌아보게 되었다. 지금 소설 방에 있는 ‘채팅 하는 여자’도 그때 씌어진 글을 전체 소설에 맞게 재구성 한 것이다.
“남편은 내가 쓴 글을 보지는 않지만 소설을 쓴다는 사실을 재미있어하죠. 살면서 대화하는 시간을 많이 가지려고 하는 걸 보면 서로에게 무관심하다는 건 틀린 말인 듯 해요. 그런 의미에서 남편과 저는 서로 독립적인 거죠.” 이젠 엄마보다도 더 훌쩍 커버린 아이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어릴 적부터 자신의 일은 알아서 할 수 있도록 키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채팅에서 만난 친구들과 사는 이야기를 오랫동안 풀어놓다 보니 어느새 주위 사람들이 그에게서 편안함과 즐거움이 느껴진다고 한다. 그래서 소엽님은 통신과 채팅에 대해서 자신만 떳떳하다면 부정적이지만은 않다는 사실에 대해 꼭 써달라는 ‘특별한’ 부탁을 잊지 않는다.
♣ 다양한 인연으로 바쁘게 살아가는 소엽님
소엽님은 여러 인연의 끈으로 묶여 참으로 바쁘게 살아가는 듯하다. 먼저 불교와의 인연. ‘序. 먼 그날의 풍경하나’를 보면 따스한 한잔의 녹차 사진이 먼저 나온다. 산사의 모습을 정물화처럼 그린 소설의 내용도 왠지 불교와의 범상치 않은 인연을 보여주는 듯하다. 고3때 잠깐이지만 공부를 하기 위해 절에 며칠 머물렀던 경험이 소설 속에서 배경으로 자주 그려진다. 소엽님이 30대 중반이던 10여 년 전 동생의 죽음을 맞이했다. 동생의 유해는 화장해서 대구 근처의 한 절에 뿌려졌고, 그때부터 그는 ‘죽음이 살아있는 자에게 주는 영향’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자신이 진정한 불자가 된 건 아마도 그때부터 인 듯하다고 했다.
소엽님은 지금껏 이어지는 통신 산행 모임에서 한 달에 한번씩 꼭 산행을 갈 만큼 애정이 깊다. 매주 금요일에는 대학로에서 열리는 ‘문학이야기’ 모임에 가기 위해 그의 집이 있는 용인수지에서 빠지지 않고 참석한다. 또 아이들에게 시를 알려주기 위해 만들어진 한국시사랑회라는 단체에서 소엽님은 사무국 일을 보고 있다. 한국문학도서관에서 운영하는 홈페이지에 주소를 두고 「정현숙의 문학서재」를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그곳에서 가면 그가 쓴 몇 편의 동화와 소설을 만날 수 있으며, 시낭송도 볼 수 있다.
♣ 어디에서건 열심히 살아가는 그를 만나다
“신오리님 덕분에 알게 된 사이버주부대학의 곳곳을 둘러보다가 알게된 모임터 중에 풍경 방과 동갑방이 있어요. 그 두 곳을 빼놓지 않고 들르는 것도 하루 일과가 되었죠. 사주대에서 처음 소설을 연재한 곳은 글마당이었지만, 작가마당으로 옮기며 새로이 이야기를 엮어내고 있습니다.”
사주대와의 인연은 화려한 외출-여행에 “길 찾아 떠난 이야기”를 쓰고 있는 신오리 최미희님의 글을 보러 자주 들렀던 것이 계기가 되었다. 지금 연재중인 ‘미모당 통신’도 신오리님이 당수(?)로 있는 ‘미모당’에서 따온 것이다. ‘미모당’은 초기에 ‘미련하고 모자란 사람들이 만든 당’이라는 놀림도 받았지만, 옆에서 지켜보는 그들의 생활이 재미있어서 소설 속에서도 빌려다 쓰고 있다.
글쓰기, 산행, 불교 등등 여러 곳에 인연을 두고 열정적으로 살아가는 정현숙님. 그래서 “생을 흐르는 강”의 이야기방으로 찾아오는 손님들도 많다. 그 손님들의 이야기 하나 하나에 빼놓지 않은 답 글들을 보면 소엽님의 따뜻한 마음이 한껏 배어 나온다. 이야기방에 올려진 갖가지 음악과 사진, 그림 등을 보더라도 그들 사이에 오고가는 정도 얼마나 돈독해져 있는지가 보이는 듯하다.
글을 쓰는 사람들의 한결 같은 바램은 단행본을 내는 것이리라. 소엽 정현숙님 또한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프로 의식이 부족한 탓일까, 너무 바쁘게 살아가서일까 그런 목표가 자꾸만 희석되는 듯도 하단다. 어떤 모임에서건 열심히 살아가는 소엽님의 모습을 만나가다 보니 그의 소망 또한 먼 훗날의 이야기만은 아닌 듯 하다. 그의 건필을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