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는 내가 존재하고 살아 있음을 확인하는 돌파구랍니다. |
| 벌거숭이의 노래'글마당 작가 희망 김연희 님 |
"시를 쓰고 싶다는 욕망과 이미 녹슬어서 쓸 수 없는 절망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을 때 사이버주부대학이 저에게 회생의 생명수를 들이키게 했답니다." 아이 둘을 낳고, 수많은 육아 서적을 탐독하고, 줄곧 태교 일기를 쓰고…. 그래도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가 있어 늘 삶이 허무했다는 희망 김연희님(37세, 경기 안양).그러던 그가 사막에서의 오아시스처럼 사이버주부대학의 글 마당을 발견하게 됐다. 자신의 시로 사람들과 삶의 애환을 함께 나눌수 있는 요즘 그는 '벌거숭이의 노래'를 생각하면 절로 '콧노래가 나올 정도'로 행복하다. 초등학교 때부터 동시를 긁적거렸고 중학교 때는 본격적으로 시라는 걸 써 보고 싶었단다.하지만 전남 나주의 워낙 벽촌에 살다 보니 학교 도서관에든 집에든 명서 한 권이 없었다 "친구 집에 굴러다니는 '새 농민'이며 찢어진 신문 조각도 샅샅이 훑어 내렸던 기억이 나네요. 한창 감수성이 예민할 때 욕심껏 하지 못한 독서는 누군가에게 영혼을 도둑맞은 것처럼 억울할 때가 있습니다." ![]() 십대에서 이십대까지는 하루에 열댓 통의 편지를 쓴 적도 있을 만큼 편지 쓰기를 좋아했다. 명시와 좋은 글 구절들을 인용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시를 긁적이게 됐다는 희망님. ▣ 내 시의 원천은 한(恨), 사랑, 화해... 그의 아이디 '희망'은 평범해 보이지만, 그의 아픈 기억들과 바램이 모두 담겨져 있는 소중한 위안처이기도 하다. "입에 풀칠하기도 힘든 환경에서 자랐어요. 중학교 3학년때 나주에서 부산으로 건너가 자취를 하면서 직장 생활을 하고 검정고시로 고등학교 졸업장을 얻어냈어요. 먹고살기도 빠듯한데 그놈의 글이 뭐가 좋은지 습관적으로 무수히 써 댔었지요. 대학은 스물 여섯에 들어가 국문학과를 졸업했습니다." 소질이 있어도 환경이 따라 주지 않으면 재능조차도 무용지물이 아니겠느냐는 그의 말에서 가난을 딛고 살아온 그의 힘들었던 생활들이 느껴진다. 그의 마음속에 자리한 가장 아픈 기억은 그가 28세때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것. 빨갱이로 수색 당하는 큰아버지 대신에 무시로 맞았던 것이 지병이 되어 서서히 뼈가 삭아지는 고통으로 평생을 사신 아버지. 힘든 일은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고 빚에 허덕이며 감당할 수 없는 가장으로서의 삶이 구차하여 농약병을 입에 물고 시위하셨던 아버지. 하지만 오빠들을 제치고 희망님 만큼은 끔찍이도 아껴 주셨다. 아버지는 어린 딸의 머리를 손수 땋아 주셨을 뿐 아니라 산에 나무하러 가실 때는 지게에 태우고 심청전, 춘향전, 흥부전 등을 너무 재미있게 구연해 주셨다. 또 밤에는 늘 새로운 얘깃거리로 딸을 울리고 웃겼던 다정하고 눈물이 많았던 분으로 희망님은 기억하고 있다.아버지는 가슴 한구석의 커다란 한(恨)이요, 사랑이요, 또 하나의 희망으로 자리잡고 있다. 그의 시에는 궁핍했던 삶(정신적, 물리적)과의 화해, 애증의 존재인 가족과의 화해, 내 자신과의 화해도 내재되어 있다. "퇴적된 한과 아픔을 쏟아내면 언젠가는 그 슬픔마저 아름다운 추억이 되지 않을까요?" 그에게 있어 시는 지난날의 아픔을 낫게 하는 유일한 치료제가 아닐는지. ![]() ▣ 소외받은 이웃과 환경문제에 관한 시도 쓰고파 희망님은 결혼 전 정호승 시인에게서 일 여 년 동안 시 공부를 했다. 이미 문단의 큰 별이신 분을 자신이 욕되게 할까 조심스럽다는 말을 덧붙이는 희망님은 정호승님이 자신의 스승이며 자신의 시를 있게 한 원천임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분 밑에서, 시를 쓰는 것은 끊임없는 노력과 자신과의 싸움이라는 진리를 배웠습니다. 결혼하겠다고 말씀드렸을 때 그럼 시는? 하시며 당혹스러워 하시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군요." 그는 정호승님의 처녀시집 <기쁨이 슬픔에게>를 읽고 한눈에 반했다고 한다. 평론가들은 <사랑하다 죽어버려라>를 정호승님 시의 결정체로 보고 있다는 얘기도 들려주었다. 또한 <아랑아 옷 벗어라>와 <어메>라는 시집을 출간하신 벽파 김철진님은 희망님에게 연당(蓮堂)이라는 아호도 지어주시고 늘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의 마음을 갖는다고 전한다. 희망님은 지금은 주로 '피붙이'들의 이야기를 쓰고 있지만 좀 더 곰삭으면 소외 받은 이웃과 환경 문제에 관한 시를 써 보고 싶다고 한다. 또 시들이 어느 정도 모아지면 시집을 펴 낼 꿈도 갖고 있다. 글 마당 카페에 글을 올려 주시는 분들의 글에서 자신이 도리어 더 위안 받고 힘을 얻을 때가 많다며 "'사주대가 생의 은인"이라 말하길 주저하지 않았다. ▣ 모임터에서의 또 다른 모습 글 마당에서 그의 시를 읽다가 모임 터로 향하면 그곳엔 또 다른 모습의 '희망'님이 있다. 게시판에서 친한 회원들과 같이 낄낄대고 웃는 희망님의 글을 만날 때면 그래도 역시 평범한 이웃임을 상기하게 된다. 우선, 모두 '죽'이 잘 맞아서 친정 같은 곳이라는 '다섯알음알이' (안양, 군포, 의왕, 과천, 안산 지역 모임)방의 방장이다. 게시판에 흔적을 남겨 놓지 않아도 무슨 일이 있으면 제일 먼저 달려와서 도움을 주는 멋진 사람들의 방이라고 자랑을 아끼지 않는다. 그 다음으로 희망님의 정신적 지주들이 많이 사는 그 유명한(?) '65년 뱀띠방'을 열심히 들락날락 한다. 그 외 '별이 사는 마을'과 '나만의 방', '아주 작은 인형극'방, 그리고 글 마당에 올려진 방들은 여력이 닿는 한 부지런히 누비고 다닌다고. 아주 작은 인형극 방은 인형극을 널리 알리고 싶은 취지로 개설된 방이라고. '인형'이란 아이디의 방장님은 현재 인형극을 하고 계신 분이기도 하다. 집에서 아이들과 간단히 인형을 만드는 방법도 배우고 공연 소식과 인형극에 대한 정보도 교환하고 있단다. 희망님은 모임터의 성향이 다른 사람들의 삶을 보면서 시적 소재를 찾아낼 때도 있다고 한다. 오늘도 나는 큐피드의 화살을 그대의 심장에 겨눕니다. 붉은 햇덩이도 질투하여 쉬어 가는 곳 우리의 희망 사주대여 영원 하라. 요즘 사주대의 눈부신 발전을 보면 마음이 흡족해진다는 희망님. 부탁하지 않았는데도 그가 보내온 짧은 시에서는 그의 사주대를 사랑하는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져 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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