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우웅, 손전화가 진저리를 치니 문자가 들어온 모양입니다.
가시리문화센타에서 '김복남살인사건의 전모'를 상영한다고 합니다.
보고 싶기는 한데 자동차가 없습니다.
자동차를 가져간 정희씨의 귀가시간을 물어보니 역시나 늦는답니다.
"다향아, 가시리에서 영화상연한다는데 걸어갈까?" 물으니 싫답니다.
인터넷으로 영화를 확인하니 미성년자관람불가랍니다.
올레길을 걷듯이 다향이랑 이야기를 나누며 밤길을 걸어갈 참이었는데
그럴 수도 없습니다.
다향이가 아빠 혼자 다녀오랍니다.
'그럴까?'생각해보지만 썩 내키지가 않습니다.
정희씨도 늦는다는데 밤에 다향이 혼자 두고 나간다는 게 영 찜찜합니다.
영화를 보고싶은 마음이 얼굴에 나타났는지 다향이가 한번 더 권합니다.
그래 못이기는 체 하고 집을 나섰습니다. 오후 6시 35분입니다.
길을 갑니다. 걸리적 거리는 것 하나도 없이 훠이훠이 걸어갑니다.
푸드득, 나무의 물놀이터인 늪에서 물오리 두 마리가 날아오릅니다.
철조망 안의 흰 말이 긴 풀밭 위에 그림처럼 서 있습니다.
통통하게 살이 오른 키 작은 뱀이 길을 막아 쿵쿵 발을 구릅니다.
저만치 밭에서 노루가 달립니다. 밭 저쪽 돌담끝에서 노루가 뛰는데
한 마리가 아니라 한 가족인듯 일곱 마리가 달려갑니다.
영화를 보러 설렁설렁 걸어가는데 많은 생명을 놀라게 한 것입니다.
25분 만에 농로가 끝나고, 국도가 나타납니다.
'계속 갈까? (다향이가 있는 집으로)돌아갈까?'고민이 됩니다.
집전화가 있거나 다향이한테 손전화가 있다면 전화를 해볼 텐데
그 어느 것도 없어서 다향이의 상태를 확인할 수가 없습니다.
(다향이는 손전화를 사달라고 하지만 대부분의 시간을 붙어있는 지라
아직은 사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습니다. 꼭 필요하지 않은 걸
산다면 그건 이미 낭비라고 생각합니다.)
집으로 돌아옵니다. 어둠이 짙어지는 가운데 발걸음을 되짚습니다.
노루도, 뱀도, 말도, 물오리도 이미 사라진 길을 걷습니다.
선선한 밤인데도 땀으로 젖은 몸이 미끌미끌, 미끄덩 거립니다.
저만치에 집이 보이는데 주방에 불이 밝혀져 있습니다.
다향이가 저녁을 먹으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그 불빛을 보고 외칩니다. "다향아!"
불빛 속에서 대답이 돌아옵니다. "왜, 아빠! 영화 안 보고 그냥 와?"
"응, 다향아. 다향이랑 있는 게 영화보는 것보다 더 좋아."
"알았어 아빠, 빨리와 같이 밥 먹게."
집 어귀로 들어서는데 반딧불이 하나가 꽁지에 불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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