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생끗 웃었다
가수 박영미.
노래 하나를 끝내고 생끗 웃는 그녀의 모습이 참 싱그럽다.
"나는 외로움 너는 그리움"이란 제목의 노래인가? 예전에 KBS홀의 앞자리에 앉아서,
"열린음악회" 녹화를 직접 볼 기 회가 있었는데, 그때도 박영미가 나와서 노래를 불러서
참 좋았던 기억이 있다. 나는 노래하는 그녀가 참 좋다. 속이 시원하게 해 준다. 또한 인형처럼
예쁜 얼굴이 아니어서 더 좋다. 그리고 키가 크고 늘씬해서 참 좋다.
내가 생각하는 "강난하"의 이미지를 가진 그녀.
자신만만해 보이는 당당한 그녀의 모습이 좋다.
물론 나는 그녀를 모른다. 아는 거라고는 노래하는 가수라는 것뿐.
그걸로 충분하지 않은가? TV 앞에서 노래하는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며 나 스스로 생각할 뿐이다.
가수는 노래를 잘 하면 된다. 그녀처럼 외양까지도 시원스러이 갖추면 더욱 좋겠지만...
강난하. 그녀는 아직까지도 내 안에서 숨 쉬고 있는 여자다.
잠깐 동안 이 세상에 내보낸 적은 있어도, 내 마음 속에서 아직도 서른 세 살 이상을 먹지 못한 여자다.
언뜻 지나가듯이 이야기한 적이 있어서 기억할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꽤 신나는 일상을 보내고 있다.
"미모당 통신" 이라는 제목으로 소설을 구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 소설 속에서의 중심 인물은
강난하 그녀다. 20대 초반부터 그녀는 내 친구로서 내 속마음을 읽어 주는 그리하여 나를 지켜주는 존재다.
결혼과 함께 그녀는 꽤 오랫동안 나를 떠났다. 그러다 결혼 생활 틈틈이 갈등을 빚는 나를 지켜보았다.
그래서 소설로 나타나기도 했다. 제대로 끝을 맺은 것은 없지만, 그녀의 흔적이 있는 소설 몇 편을
나는 아직도 버리지 못 하고, 대신에 또 다른 소설을 구상 하고 있는 것이다.
소설 속에서 그녀는 이제 40대의 여성이 되어 있을 것이다.
금요일마다 작가와의 대화에 참여하면서 나는 스스로 참 많이 부끄러웠다.
지금도 소설을 구상하고 있고 그리하여 쓸거 라고 말한다는 사실 역시도 부끄럽다.
어제 나는 또 한 번, 아니, 비로소 소설을 쓰지 못 하고 있는 이유를 알았다.
나와 동갑인 작가 "박상우"는 말했다.
작가란, 작가가 몸 담고 있는 이 시대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에 대한 자각이 있어야 하며,
시대와 정신적인 불화감이 있어야 글을 쓸 수 있다고... 지금 사는 게 행복하다면 굳이
글(소설)을 쓸 필요는 없다고. 소설은 인간과 인생을 다루는 작업이고 그래서 의미론적
측면 으로써 일말의 의미라도 주어지도록 써야 한다고 했다.
소설 이란 결국은 작가의 인생에 대한 경험과 모색이 반영된 산물 이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자기가 가장 잘 쓸 수 있는 소재로, 쓰고자 하는 것을 조립 조합해 낼 수 있는
연출력을 보여야 한다고 했다.
내가 경험한 것. 내가 살아오면서 만났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설로써 만들고 싶었다. 그러려면 나는 그들 하나하나를 보다 자세히 관찰해야 하며
구체적으로 그들 속으로 들어가서 그들이 되어 그들 의 각각의 인생을 살아보아야 할지도
모르는 것이다. 나는 자신이 없다. 그래서 나는 지금 한창 열심히 구상은 하면서도
과연 소설로 만들 수 있을지는 도저히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지하철을 타고 돌아오는 길에 나는 문학평론가 두 사람의 대담 을 읽었다.
거기에도 소설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처음에는 그냥 읽어나갔는데, 나중에는 펜을 꺼내어
밑줄까지 쳐 가면서 아주 진지하게 읽었다.
그 중에서 몇몇 대목만 인용을 할까 한다.
[지금 한국 작가들에게 예외 없이 적용될 문제는 작품이 '문제' 와 '질문'을 만들 줄 모른다는 것입니다.]
[문제 생산 능력이 없다는 것이군요.]
[그렇지요. 묘사력도 있고 문장력도 있는데 다 읽고 나면 우리를 자극하는 어떤 문제도 질문도 담겨
있지 않습니다. 세계와 인간 에 대한 질문이 문장의 형태로 작품 속에 명시적으로 나타나야 한다는
주문이 아닙니다. 보이지 않게 배후에 깔려 있어야죠. 아, 이 작가는 이 문제를 건드리고 있구나.
이것을 파고들고 있구나. 이것을 자기 체험의 언어로 서술하고 있구나. 독자가 그런 식으 로 느낄 수
있게 해 주어야 합니다. 또 주제는 반드시 작가만이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읽기의 과정에서
독자 자신이 만들기도 합니다. 발견하는 것이든 만드는 것이든 간에 주제가 눈에 띄고 독자를
감동시킬 수 있어야 하는데 우리 문학의 경우 이 부분이 지금 위험한 약체 수준입니다.
...(중략)... 세상을 보는 눈이 없을 때 어떻게 소설이 만들어집니까? 인물도 못 만듭니다. ...
(중략)... 등장인물의 다양성...(중략)... 그런데 요즘 소설들은 대개 화자 - 주인공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느라 목소리가 빈약 하고 평면적이어서 재미없습니다. 소설에는 여러 다양한
목소리가 들어와 갈등을 일으키고 싸우고 하는 충돌의 불꽃들이 번쩍여야 합니다. ...(중략)...
등장인물들을 통해서 자기 관점을 투영, 조 절, 중개하고 다양한 목소리들의 장에서, 말하자면
소설의 세계에 서, 독자로 하여금 어떤 인물이 재미있더라, 작가의 관점은 이런 것이구나 등등의
판단을 할 수 있게 해 주어야 합니다.]
소설을 쓰고 싶어서 소설가들의 이야기를 들으러 열심히 금요일 마다 갔는데,
묘하게도 나는 갈수록 자신감이 없어지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글 쓰고 생각하는 이 순간이 참 좋다. 소설가가 아니 면 어떠랴.
세상에 많고 많은 것이 소설가인데, 나까지 굳이 소설가의 이름을 얻어야 할 필요가 있을까?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이름만 해도 오죽 많으냐!
한 남자의 아내이며 두 아들의 엄마이 며, 우리 엄마 아버지의 큰딸이고 시부모님의
하나밖에 없는 며느 리, 동생들에게는 언니 누나라 불리고, 친구들에게는 현숙이로,
통신지기들에게는 소엽님으로 불동 사람들에게는 자정행으로...
그리고도 또 내가 모르게 불려지는 이름도 있지 않을까?
하여간 나는 그래도 소설 구상은 한다. 하면서도 떠든다.
이렇게 하는 나 자신이 즐겁다. (2000. 12. 2일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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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미
오래전에 써둔 글인거지요? ^^
지금도 꿈으로 남아 있다면 다시 해보셔도 좋지 않을까, 싶어요.
답글
새초롬
글 너무 멋찌고..감동적이예요~!
절대 포기하지 마시고 열심히 써보세요 전 워낙 글과는 거리가 멀어서 님이 너무 부러워요.
어느날 미즈에서 님의 책이 출간됨을 알리는 배너광고를 볼 수 있는날이 꼭 올꺼라고 믿어봅니다
용기내시고 다시한번 도전도전 하세요.
답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