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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오늘 점심은 빵 먹으면 안 될까?”
만날 집에서 고만고만한 반찬에 밥을 먹는 다향이가 지겨워진
모양입니다. 그래 대답을 합니다.
“안되긴 왜 안 되겠어? 그런 이따가 빵가게 갈까?”
“응. 좋아.” 다향이가 함박웃음을 짓습니다.
피아노를 치고, 시를 외우고, 그림을 그리다가 점심시간에 맞춰서
중문시내로 나갑니다. 둘이 얘기를 하면서 걸어가는데
저만치에 반가운 얼굴이 보입니다.
“엄마.” 정희씨를 발견한 다향이가 반갑게 달려갑니다.
동료들과 점심을 먹고나오는 것으로 보이는 정희씨가
애매한 웃음을 짓습니다.
지나치면서 가볍게 인사를 하고 빵집으로 갑니다.
쿠키랑 크로켓 하나, 바게트 하나, 그리고 처음 본 피자를 구입해서
나옵니다. 나는 가을에 대해서 다향이는 걸그룹의 음악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면서 걷습니다. 빵을 먹으면서 걷습니다.
내게 필요한 스카프와 털모자를 구입하러 아름다운가게로 향합니다.
“오늘저녁 회식 있어서 늦을 거예요.”
어제아침에 출근하는 정희씨가 말합니다. ‘또?'라는 생각이 고개를
들지만 알았다고 합니다. 이놈의 시월(내가 가장 사랑하는 시월임에도)은
뭔 행사가 이리도 많은지 토, 일요일에도 정희씨가 쉬어본 적이 없습니다.
저녁 10시가 조금 넘어서 전화가 옵니다.
다향이를 재우다가 전화를 받으니 조금 더 늦어질 것 같다면서
먼저 자라고 합니다. 어쩌다가 내가 늦을 때면 정희씨는 먼저 잠들지만
나는 그런 성격이 못됩니다. ‘직장생활이 다 그렇지 뭐!’,
‘알아서 잘 하겠지.’라고 마음을 먹어봐도 쉬이 잠이 오지 않습니다.
피곤한데 잠도 못자고, 그렇다고 눈이 아파 책을 읽을 상태도 아니고,
이제나저제나 기다리는데 자정을 넘겨도 들어오지 않습니다.
어디에 있다는 전화도 없고, 사람이 늦으면 늘 그렇듯이 불길한 생각만
들고……. 모든 걸 집어삼킬 듯 바람 위잉, 휘이잉 불고, 날은 추운데
소식이 없습니다.
기다리다 못해 0시 30분에 전화를 거니 조금 있다가 일어날 거니까
먼저 자라고 합니다. 아침 7시 20분에 나간 사람이 자정을 넘겨서도
조금 더 있어야한다고 하니 기가 막힙니다. 이럴 때마다 살림을
시작한 게 후회됩니다.
‘내가 미쳤지. 그냥 다른 가정처럼 아이 돌보면서 살림하라고 할 걸.
그랬으면 이렇게 불편한 밥을 먹지는 않을 텐데…….’
하지만 죽은 자식 붕알만지기입니다. 새벽 1시에 들어온 정희씨.
씻기가 무섭게 코를 곱니다. 6시 30분. 자명종소리에 일어났다가
다시 눕고, 7시에 겨우 깨어납니다. 그리고 또다시 출근.
체육센타에서 다향이는 수영을 하고, 나는 헬스클럽에서 운동을 한
뒤에 마트로 갔습니다. 그런데 또 정희씨가 보입니다.
낮에도 보고, 저녁 무렵에도 보다니 신기하기만 합니다.
그런데 정희씨가 빵과 음료수를 한 봉지 갖고 있습니다.
다향이가 그게 뭐냐고 물으니 조금 있다가 도자기페인팅이 있어서
사가는 것이라고 합니다. ‘또 늦겠구나.’생각합니다.
금요일저녁에 기타강습을 책임지느라 늦는데 이제 수요일마다
도자기페인팅을 한다니……. 툭하면 각 단체들과 회의다, 회식이다
자정을 넘겨가면서 술을 마시고.
밥을 먹어도 마음이 편치 않고, 늘 가시방석입니다.
그리고 ‘이러다간 내명대로 못살지.’라는 자괴감도 점점 심해집니다.
지나간 날의 선택이야 어쩔 수 없다 해도 곧 이사 갈 공간에서
빨리 자리 잡아 일을 그만두게 해야겠다는 생각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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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제가 과천에서 의왕으로 이사간 게 2005년이니까 1년 후에 이사를 가신 셈이군요. 이사 사유도 똑같이 치솟는 전셋값이었다니 재밌네요^^ 저도 한때 제주도에 가서 사는 걸 꿈꾸었던 적이 있는데, 아직은 아무래도 뭍이 좋네요. 아름다운 제주 풍경, 독특한 삶의 이야기 기다리겠습니다.
답글
밥상차리는 남자
예전에 달동네사람들이 변두리로 몰려나는 것이나
재개발로 세입자들이 쫓겨나는 것이랑
똑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덕분에 제주에서 사는 호사(?)도 누려보지만요.
다은맘
이글을 읽고나니 그냥 지나갈수가 없어요. 늘~~ 집에서 살림하는 마눌 대단한지 모르는 남편하고 살려고 하니 그맘이 우찌그리 이해가 되는지 모르겠어요. 저두 늘 먹는 고만고만한 반찬이 싫은지 가끔은 애들이 엄마 밥말고 다른거 먹자고 하더군요. 우찌그리 저랑 비슷한 상황을 겪고 계신지... 동변상련 이란 맘에 힘내시라고 하고 싶어요.
답글
밥상차리는 남자
고맙습니다 다은맘님.
살림을 하기 전에는 몰랐던 사실을 말씀드리면...
여자라서 주부우울증을 겪는 게 아니라
일의 역할에서 온다는 사실입니다.
저만이 아니라 다른 남자주부들의 말을 들어봐도
비슷한 경험들을 하거든요.
자신도 모르게 잔소리가 많아지고, 경제적인 독립을 꿈꾸고,
조금 남은 밥 냉장고에 넣었다가 같이 먹으면 된다는 걸 알면서도
먹어치우느라 뱃살이 나오고...
밖에서 힘들게 일해 돈 버는 게 얼마나 힘겨운지 아느냐는 유세나 듣고...
그럴 때마다 살을 맞대고 사는 부부임에도 참 아니꼽다는 생각이 불쑥.
아름다운
아~ 반갑습니다. 언제 제주도로 내려가셨어요? 아마 절 잘 모르실거예요. 저도 과천 살았었어요. 다향이 아버님은 과천에서 워낙 유명인사셨으니까 아는 사람이 많지요^^
답글
밥상차리는 남자
2006년 초에 제주로 주거지를 옮겼습니다.
과천이 재개발되면서 하늘높은줄 모르고 치솟는
전셋값을 감당하지 못해 과천에 못지 않은 분당으로
이사를 갔답니다. 그리고 1년 쯤 살다가 제주로...
말로만 듣던 사교육이란 게 분당으로 가서 보니
피부로 확 다가오더라고요. 그때 고민을 했지요.
공부도 때가 있다면 노는 것도 때가 있을 것이고,
어린시절에 놀지 않으면 언제 놀 것인가?
그래 산과 바다가 아직은 덜 오염된 제주로 훌쩍 떠나와 삽니다.
분꽃
돌이킬수 없는일...
늘 가시방석이라 생각 마시고
각자 나름대로 사는방법이 다를뿐
누구나 다같은 생활을 합니다
다향이 셈으로 전업주부 로 열심히 살아가시는 모습
글쓰시면서 편안한 마음 가져야 글도 좋은글 나오는거 아시져....
답글
밥상차리는 남자
맞습니다 분꽃님.
평상심을 유지하는 게 중요한데 늘 일에 치이고,
늦은 시간에 파김치가 되어서 돌아오는 걸 보면
너무 가슴이 아픕니다.
사는 게 고해라지만 아내는 아내대로 힘들고,
저는 저대로 제 일을 하지 못해 힘들고...
하지만 연초에 이사를 합니다.
오랜만에 제 일을 가지고 사회로 복귀하는 거지요.
그곳에서 그동안 머릿속으로만 그리던 일들을
하나하나 10년에 걸쳐서 실행할 예정입니다.
밥상차리는 남자
과천에 살던 다향이아빠 맞습니다.
그런데 누구시지요?
답글
아름다운
정말 직장에 머무르는 시간이 너무 길지요? 일하는 사람은 일하는 사람대로 힘들고 집에 있는 사람들은 집에 있는 사람대로 외롭고... 그렇다고 직장을 때려치자니 먹고 살 일이 걱정이구요. 근데 혹시 실례지만 예전에 과천에 살던 다향이 아버님이 아니신지요?
답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