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에서 아는 분을 만났는데 예전보다 얼굴이 안돼 보입니다.
무슨 일이 있는지 여쭤보니 ‘포옥’ 한숨부터 내쉽니다. 그리고 잠시 뜸을 들이더니 말을 합니다.
고등학생인 큰아들이 음악을 하고 싶어 한다고 합니다.
초등학교 시절 내내 악기를 가르쳐도 싹이 보이지 않아 공부에만 전념하도록 했고,
집근처의 학교도 제쳐두고 입시에 유리한 고등학교에 진학을 시켰는데 갑자기 음악을 하겠다고
해서 당황스럽답니다. 그 말을 하면서도 눈가가 촉촉하게 젖어듭니다.
남편이 말한답니다. 길동이 입장에서 한번만 생각해보라고.
그 말을 듣고 밤이면 밤마다 결심을 한답니다. 아이의 어깨를 토닥이면서 네가 하고 싶으면 해보라고
말하지만 아침에 눈을 뜨면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있는 자신이 너무나 괴롭답니다.
하아! 그 말을 듣고 한숨이 새어나옵니다. 그런 갈등이 어찌 그분만의 것이겠습니까?
그런 부모의 마음을 자식이 이해하려면 이십 년은 더 지나야할 것입니다. 그렇다고 그분이 옳고,
아이가 그르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 부모는 부모의 입장과 경험으로 자식을 걱정하지만 자식들이
살아갈 세상은 부모의 그것과는 전혀 다른 세상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보고 위안을 삼으세요.
하나밖에 없는 아이가 학교에 다니지 않아도 걱정하지 않고 웃으면서 살잖아요.” 위로랍시고
한마디 했지만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래 말을 조금 더 합니다.
얼마 전에 타계한 그리스로마신화의 열풍을 일으킨 이윤기선생님과 소설가 이문열선생이 제자을 데리고
술을 마실 때의 이야기입니다. 한분이 옆에 있는 제자를 가리키며 재수를 해봤냐고 물었답니다.
제자가 그렇지 않다고 했더니 ‘그러니까 네가 글을 쓰지 못하는 거야’했답니다.
그 말을 들은 다른 선생님이 자신의 제자에게 검정고시를 치러봤냐고 물었고 아니라고 했더니
‘그러니까 네가 글을 쓰지 못하는 것’이라면서 웃었다지요.
이윤기선생님으로부터 직접 들은 이야기입니다.
당신의 딸과 아들도 좀 넘어지고, 좌절하면서 인생의 의미를 새겨가면서 살면 좋겠는데 너무나
순탄하게 살아 안타깝다고도 했지요. 대학시절에 존경하는 학과교수가 단 한명도 없었습니다.
권력에 아부하거나 돈이나 밝히는 속물들이었기 때문인데 노교수의 한마디는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는 말도 했습니다.
당신이 소학교시절 몸이 약해서 휴학을 두 번이나 해서 동창회를 세 번이나 나간답니다.
하지만 그것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는 별 장애가 되지 않을 뿐더러 소학교든 중학교든 고등학교든
3개 학년의 동창회에서 연락이 와 도리어 노년이 심심하지 않다고 합니다. 그 말을 하면서
‘인생은 100미터 달리기가 아니라 42.195킬로미터를 뛰어야 하는 장거리경주니까
급하게 서두르지 말고 찬찬히 자신의 페이스를 지키면서 뛰라’고 했지요.
"이제 가봐야겠어요.” 황급히 걸어가는 그분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작은 위로라도 됐으면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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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상차리는 남자
살다보면 넘어지기도 하고, 때론 깁스를 하기도 하면서
좌절도 하고, 자살도 생각하면서 조금씩 조금씩 성장하는 것인데
저를 포함한 어른들은 애당초 그런 것을 겪지 않게 하려는 마음이
너무 강한 게 아닌지 생각하는 요즘입니다.
답글
섭맘
답글
책마음
아이가 원하는 방향과 부모가 원하는 방향이 서로 어긋나 고민이었는데,,,
아이의 선택을 존중하자고 다짐하지만 아침에 눈을뜨면 다짐은 저멀리 사라지고 욕심과 걱정의 경계를 넘지 못하는 제 자신을 보곤 하지요. 믿는만큼 자란다는 간단 명료한 진리를 실천해야겠습니다...
답글
밥상차리는 남자
'머리로 아는 건 아는 게 아니다'
스무살을 넘기면서부터 갖게 된 생각입니다.
머리로 이해했다고 해서 진정으로 이해한 게 아니라
'몸으로 실천할 때에야 비로서 알게된 것'이란 말이지요.
열두 살 다향이는 매일아침 동시를 한편씩 외우고 있습니다.
하지만 의인법이니 은유법이니 하는 말은 전혀 하지 않습니다.
그냥 운율에 맞춰서 읽도록 하고 모르는 단어를 설명해주지요.
그리고 외운 동시집이 열권입니다.
시를 몸으로 체득하기 바라는 마음으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다향이의 중요 프로그램중의 하나인 영화도 마찬가지입니다.
매주 한두 편의 영화를 보면서도 굳이 토론을 하지 않습니다.
한편 한편 보면서 제 스스로 체득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인데
때때로 물어보고 싶은 욕망이 꿈틀거리기는 합니다.
이옥단
앞날을 내다 보고 살수 있다면 정말 좋텐데,,,
그렇지 못한게 힘들고 어렵지요 모두들...
더군다나 자식 인생의 전환점이 될수도 있는 순간 입니다.
저도 자식 키우는 입장 이라서 쉽게 이야기 할수 없네요.
저도 고민합니다.....
답글
밥상차리는 남자
쉽지 않은 일이지요.
지금의 학교체제가 동의하지 않는 터에
아이가 재미없다고, 학교에 가지 않으면 안되느냐고
물어와 선뜻 그러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3년의 세월이 흘렀고 아이는 잘 지내는 것 같은데
가끔은 '저러다 제 밥벌이도 못하는 것 아니야?'라는
의구심이 들기도 합니다.
밥상차리는 남자
아이의 입장에서 아이의 행복을 우선시하는지?
아니면 부모의 입장에서 그런지가 또 많은 차이를
가져오는 것 같습니다.
답글
핑크마미
그 무엇보다도 아이의 행복이 먼저가 아닐까...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다만 부모는 아이에게 선택의 폭을 넓혀주는
역할을 하고 끝까지 지지해 주는 거죠.^^
답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