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내일부터 휴가에요."
지난달의 어느 날, 잠자리에서 정희씨가 말합니다.
'어휴! 미리 얘기를 좀 하지.'
언제나처럼 통고를 받으면서 드는 생각입니다.
다음 날 아침, 아침밥을 먹은 정희씨가 묻습니다.
"뭐, 생각해 놓은 거 없어요?"
"......"
휴가는 자기 맘대로 정해놓고, 그럴 듯한 계획이 없냐고 묻는
정희씨를 바라보면서 되묻습니다.
"휴가비용으로 얼마를 생각하고 있는 데요?"
"10만 원이요."
"......"
지난 수요일(8월 4일)에 예래동으로 전근을 받았답니다.
그래 5일에는 예래동주민자치센타직원들과 회식을 한답니다.
밤 10 쯤에 전화를 하니 중문동주민자치센타에서 짐을 정리한다고
해서 마중을 다녀왔습니다.
6일인 어제는 중문동주민자치센타직원들과 송별회를 겸한
회식을 한답니다.
모처럼 다향이랑 해수욕을 다녀와서인지 - 나는 수영하지 못하는
관계로 다향이만 하지요 - 저녁을 숟가락을 놓기가 무섭게 졸음이
쏟아집니다.
저녁밥 먹고, 책을 읽던 다향이도 하품을 계속합니다.
"다향아, 엄마는 아빠가 기다릴 테니까 자고 내일아침에 만나."
다향이가 잠자리에 들고 홀로 앉아서 책을 읽습니다.
'10시 쯤이면 들어오려나?' 어림하는데 폭우가 쏟아집니다.
초보운전자가 자동차를 가져간 것이 생각나 더 걱정이 됩니다.
집에 차가 있고, 데릴러가면 좋을 텐데 그렇지가 못합니다.
10시에 전화를 하는데 통화가 되지않습니다.
"고객님의 사정으로..."전화를 받을 수 없다는 신호음만 울립니다.
30분을 더 기다렸다가 다시 전화해도 역시 불통입니다.
오랫동안 근무한 곳의 직원들과 송별회를 겸한 회식이니 소주는 마실 텐데
초보우넌자가 자동차는 가져갔고, 폭우가 쏟아집니다.
10시 40분에야 통화가 됐는데 서귀포시내에서 11시에 출발한답니다.
늦어지면 중간에 한 번쯤 전화를 해주면 좋을 텐데 그런 법이 없고,
늘 기다리는 사람만 골탕을 먹습니다.
11시가 넘고, 11시 30분이 넘어도 소식이 없습니다.
자꾸 걱정이 되고, 그런 마음과는 달리 잠은 쏟아질 때 '딸꾹'
'딸꾹' 딸꾹질소리가 들리더니 현관문이 열립니다.
딸꾹질을 하면서 술 내새를 확 풍기는 이정희씨, 기분이 좋아보입니다.
"씻고 자요."
긴장이 풀렸는데 눈꺼풀은 더 무거워지고, 술 취한 사람과 얘기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도 없으니 먼저 잠자리에 눕습니다.
깜빡 잠이 들었다가 침대가 출렁여서 눈을 떴더니 정희씨가 말합니다.
"내일 논짓물축제가 있어서 아침에 8시까지 나가요."
'토요일인데 또 출근한다고? 그것도 아침 8시까지.'
잠결에서도 '다음 주는 또 무척 힘들게구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늦은 밤까지 마셔대고 푹 쉬는 게 아니라 토요일에 출근을 한다면
누구라도 피곤할 것입니다.
그러면 자꾸 짜증을 낼 것이고, 평소에도 그렇지만 집안 일은 모르쇠할 것이니
내 일만 많아질 게 뻔하니까요. 누구나 자쳐가는 이 무더위에.
자신은 물론 남편과 아이도 배려하고, 미리미리 상의를 하면 좋을 텐데
왜 코앞에 닥쳐서야 일방적으로 통고를 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난 당신의 노예가 아닌 파트너에요. 결혼 전부터 수 없이 다짐한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고 배려하며 크고작은 일에도 합의를 하자'던
원칙은 어디로 갔나요? 내가 당신처럼 통고를 하면 당신은 좋겠어요?"
"......"
뭐 이런 얘기를 한두 번 한 게 아니지만 사람은 변하지 않습니다.
오늘 아침에 눈을 뜨니 식탁위에 쪽지가 보입니다.
그래 전화도 없이 늦어서 미안하다는 내용인 줄 알았는데,
'자동차는 중문동사무소앞에 있으며 논짓물축제는 내일저녁 9시 30분까지 에요.
제주시에 잘 다녀와요.(커피수업)'란 내용입니다.
오늘내일 셋이서 밥 한끼 같이 먹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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