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이서 저녁을 먹고, 정희씨를 공항버스정류장까지 바래다 줍니다.
금, 토, 일 사흘 동안 대전에서 교육이 있답니다. 모처럼 올라간 김에
친구도 만나고, 친정에도 들렀다가 일요일저녁에 돌아온다고 합니다.
일 때문에 가는 것이지만 헤어지기가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중문관광단지 입구에 도착하기가 무섭게 내리려는 이정희씨.
그녀의 팔목을 붙잡습니다.
"다녀올께요." 정희씨가 작별인사를 하는데 이별하고싶지가 않습니다.
그래 손을 꼭 쥐어잡습니다. "가지 말까요?"
"그럴 수 있다면요." 정희씨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습니다.
그윽한 눈으로 정희씨를 바라봅니다.
헤어지기 아쉬워하는 그녀의 그윽한 눈을 보고싶지만 부질없는 희망입니다.
속마음은 어떨지 몰라도 남편과 아이를 두고 가면서 담담한 표정입니다.
'다녀올께요.' 이런 의례적인 인삿말은 직장동료들에게나 어울릴 것 같은데.
며칠씩이나마 떨어지거나 다시 만날 때 꼭 안아주고, 키스해주면 좋으련만
그것은 자신과 전혀 상관없는 영화속의 일이라 생각하는 것인지?,
아니면 정희씨에게 나란 남자는 이제 지겨운 존재가 되어버린 것인지?
텅 빈 들녁에 남겨진 것처럼 쓸쓸함이 밀려옵니다.
내 꿈이라면 정희씨, 다향이랑 함께 소소한 즐거움을 모아가면서
즐거운 인생이란 앨범을 채워가고 싶은 것뿐인데 쉽지가 않습니다.
사랑을 속삭이기에도, 재미있는 얘기를 하기에도 너무 과묵한 그녀.
좋고 싫음에 대해서나 감사함에 대해서도 표현에 너무 인색한 그녀.
산이나 바다를 함께 걷거나 말을 타자고 해도 대부분 거절하는 그녀.
때때로 와인을 마시거나 요즘 배우는 커피맛을 봐주면 좋으련만
커피(차)는 잠을 이룰수 없어서 술은 좋아하지 않는다고 거부하는 그녀.
아! 나이가 들수록 함께 공유할 취미나 기호가 많아져야하는데...
공유할 부분은 줄어만 가고, 조금만 마음에 들지 않아도 토라지는 그녀.
같은 일이 반복되면서 서로에게 흥미를 잃고 애틋한 감정마저 모두
사라진 건 아닌지?(아니, 그런 감정이 남아있기는 한 걸까?)
일상에서의 작은 즐거움들이 모여서 인생을 풍요롭게 한다고 믿는 남자와
뭘 원하는지, 뭘 꿈꾸는지조차도 말하지 않는 여자의 삶은 참 어렵다.
난 아직도 정희씨가 출근하는 바로 그 순간부터 그녀가 그리워진다.
하물며 닷새 동안의 외출이라니...
(물론 유럽과 일본여행을 다녀올 때는 훨씬 더 긴 시간을 감내해야했지만)
그런데 그토록 그리운 정희씨를 만나면 왜 자꾸 작은 일로 부닥치는 걸까?
정희씨가 육지로 떠난 어제 저녁도 마찬가지였다.
친정에 도착하면 자정이 다 될 텐데 저녁을 빵으로 떼우겠다니...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 다향이랑 제주시에서 영화를 보고 부리나케 달려와서 장을 보았지.
시간이 촉박해서 밥은 (난생 처음으로 구입한)햇반으로 대체하고,
땀으로 목욕을 하면서 마늘이랑 고추까지 넣어서 어묵도 볶았다.
먼 길 떠나는 사람에게 따뜻한 밥을 든든히 먹여서 보내고 싶었는데...
아침일찍 영화보러가느라 개수대에 쌓인 설거지를 하면서 말한다.
(하지 않았으면 훨씬 더 좋았을 걸.)
"정희씨, 밥 다 먹어요. 또 남기지 말고요."
"배부른데."
그냥 든든히 먹고나가길 원한 것뿐인데 또 말이 불퉁하게 나가고 말았다.
"조금 전에도 다향이랑 당신이 남긴 찬밥을 해결했어요.
밥이 많든 적든 늘 한숟가락씩 남기는 건 나쁜 습관이라니까요."
"......"
밥을 먹고, 양치질을 한 다음에 출발할 줄 알았는데 바로 일어서는 정희씨.
그녀를 공항버스정류장에 내려주고 오는 내내 속으로 울음을 삼킨다.
'왜 마음 따로, 말 따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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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꽃
아직도 청춘 이십니다...........
며칠 떨어져 출장가는데 그런마음을 가지셨다니 놀라울 따름이구요..
두분이 반반씩 썩으면 좋을낀데 ~
고것이 마음대로 안되는법..
부부??
평행선을 나란히 가는 동무같은 사람이라 생각하는데
이젠 텔레파시도 안통한다고
구박받을때도 있습니다만 ??............
한길 쭉 같이 가는 동반자 아닌가여 ..
답글
밥상차리는 남자
늘 그리운 만큼만 잘 지내면 좋겠는데
그게 참 맘대로 안 되네요.
그렇다고 애인을 따로 두기는 찜찜하고...
미즈천사
저도 부부라면...
시간이 갈수록 공감 할 수 있는 부분이 늘어날것 같았는데요.
일부 그런 부분도 있지만...점점 멀어지는 것도 있는것 같아요.
오늘 날씨와 함께 서글픈 마음이 들게 하는 글이었어요...ㆀ
답글
밥상차리는 남자
하! 공연히 미즈천사님의 기분을...
살다보면 흐린 날도 있고, 개인 날도 있는 법이지요.
혹시 아나요?
이번엔 출장다녀오는 정희씨가 뽀뽀라도 한번 해줄지?
(아! 이런 기대를 갖고 있으면 또 실망하는데...)
핑크마미
저는 남편에게서 느끼지 못하는 공감대를 친구에게서 얻는 편입니다.
오히려 내가 저 여자랑 살면 남편과 사는 것보다 훨씬 행복하지 않았을까...
할 정도로 말이죠.^^;;
하지만 과연 그럴까요...ㅎㅎㅎ
제 마음에도 여러개의 방이 있지요.
그 중하나를 남편에게 내 주었을 뿐...
제 맘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감정을 남편과 상의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어차피 인생은 홀로서기라는 말을 절실히 공감하고 있으니까요.
사람에게 불타는 사랑이란 시간상으론 두어달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그야말로 활활 타오르는 사랑을 늘 갖고 산다면 아무일도 할 수 없으니까요.
내가 옳다고 믿는 것이 상대방에게는 부담이 될 수도 있을 겁니다.
빵이 편하다는 그녀에게 차라리 맛난 빵을 사주세요.^^
그녀의 맘부터 이해하는 것이 대화의 시작이 아닐까 싶습니다.
(오늘도 주제넘게 충고를 한듯해서 죄송하네요.^^:;)
답글
밥상차리는 남자
주제넘은 충고라니요. 핑크마미님 말씀이 맞습니다.
그런데 점심도 머핀으로 대신한 걸 알고는
따뜻한 밥을 꼭 먹이고 싶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