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24일) 아침밥을 먹다가 눈물이 왈칵 났습니다.
"밥아 너 본지 언제더냐?"는 이몽룡의 노랫가락처럼
오랫만에 밥을 대하고 보니 서러움이 복받쳤던 것입니다.
하루 세끼 밥을 차리고 설거지, 청소하고 요리하는 일이
십 년을 넘기니 이제 신물이 나도록 지긋지긋합니다.
하지만 당장 손을 놓으면 손가락만 빨아야하는 처지이니
마음과는 달리 부엌에서 서성거릴 수밖에 없습니다.
사정이 그렇다 보니 '일요일은 짜파게티요리사'라는 말처럼
쉬는 날에는 바깥양반의 밥상을 받아보고 싶습니다.
지난 사흘 연휴(석가탄실일부터 일요일까지)동안 석가탄신일에는
아주 넉넉하게 먹었습니다.
그리고 토요일. 느지막히 일어난 바깥양반 이정희씨가 신문을 봅니다.
신문을 보는 건 괜찮은데 밥 줄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어른들끼리라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성장기인 다향이도 있는데
밥줄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평소에도 그러다가 자신이 배고파야 과자나 빵을 먹습니다.
그래 부랴부랴 밥상을 차려서 아침을 먹었는데 사우나에 가겠답니다.
늘 일에 시달리는 걸 알고, 밖에 비 또한 내리니 자동차로 사무실까지
바래다줍니다. 사무실에 사우나 티켓이 있다고 해서 내려줍니다.
커피수업은 오후 4시니까 2시 반에 나가도 될 걸 12시에 나갑니다.
수업 전에 뭘 먹을까 하다가 혼자 먹기도 그렇고 귀찮아서 그냥 갑니다.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는데 전화가 옵니다.
다향이가 두 번씩이나 전화해서 수업은 끝났는지, 어디 쯤 오는지를
묻습니다. 정희씨가 해주면 좋을 텐데 항상 다향이가 챙겨줍니다.
빈 속에 커피를 여러 잔 마신 터라 쉽게 잠이 올 것 같지 않습니다.
그래 막걸리를 한병 사와서 마시고 잠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토요일을 보냈지요.
일요일 아침. 다향이가 일등으로, 내가 이등으로 일어났습니다.
"쉬잇. 엄마가 푹 자게 조용히 말해."
언제나 처럼 휴일이 드문 정희씨가 푹 자도록 배려해서 소근소근 얘기합니다.
정희씨가 깨어났습니다. 기재개를 켜면서 일어납니다.
밥을 주려는지 주방으로 가더니 석가탄신일에 받은 떡을 찝니다.
그 양이란 게 셋이 먹기에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그래 전날 수업을 마치고 챙겨온 머핀으로 아침을 대신했습니다.
아침을 먹은 정희씨가 다향이랑 사우나에 가겠답니다.
어제 티켓을 찾지 못해서 가지 못했다고 사우나에 가겠다고 합니다.
이틀 동안 350km나 운전한 탓에 피곤하기도 하고,
원래 사우나를 좋아하지 않는 탓에 둘이 다녀오라고 합니다.
운전대에 앉은 정희씨한테 빗길운전을 조심하라 당부합니다.
그리고 점심. 두 여자가 돌아오면 뭘 챙겨줄까 보니 밥통에 찬밥이 있습니다.
그런데 두 여자가 먹을 양만큼 밖에 없습니다. 그래 다시 밥을 할까 하다가
귀찮아서 두 여자에게 밥을 차려주고 라면을 삶아 먹었습니다.
토요일 아침에 밥을 먹고나서 네 끼 연속으로 밀가루음식만 먹었습니다.
우유나 밀가루음식을 먹으면 속이 불편하고 아프기까지 하는데 그랬습니다.
그래 저녁 한 끼는 밥을 챙겨줄 줄 알았는데... 역시나 희망사항이었습니다.
밥 먹을 때가 다 되어도 밥할 생각을 하지 않기에 '뭐라도 시켜먹으려나?'
생각했는데 7시에 주방으로 갑니다.
"뭘 먹으려고?"했더니 스파게티를 삶겠답니다.
한번도 자신의 손으로 스파게티를 만들어본 적이 없는 사람이
아무런 재료도 없이 스파게티를 삶겠답니다.
처음이다 보니 면을 삶을 용기의 선택부터 적당한 것을 고르지 못합니다.
그래 비 맞은 중처럼 중얼거리면서 스파게티를 만들어냅니다.
이렇게 다섯 끼니를 라면이나 빵으로 떼우고 밥을 보니 눈물이 왈칵
솟아납니다. '아! 이럴려고 결혼 한 게 아닌데...'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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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나
섬세한 글
여자인줄 알았다
눈물이 왈칵..내 주특기인데..
그렇구나 .. 음~~색다른 삶을 보는것 같다.
답글
밥상차리는 남자
남녀라는 성에 의한 구별보다는
일의 역할에 따라서 생각과 행동, 감성이 결정지워지는 것 같습니다.
남자인 저도 주부습진, 주부우울증으로 힘들 때가 있거든요.
이웃집 주부들이 남편 흉보는 거나 내가 아내 흉보는 데서도
많은 공통점이 발견되고요.
쌍둥이키우기 힘들다
언제였나..암튼 '아~나도 누군가가 차려주는 밥이 먹고싶다..'라는 생각이 문득 들던날이 있었답니다..친구들은 친정가면 친정엄마가 차려주는 밥이라도 먹을수있지만..전 임신했을때 엄마가 돌아가셔서는 정말이지 지대로 철든후엔 그런적이 없었거든요..참 처량했던 하루를 그렇게 보낸적이 있었어요..
지금 내새끼들 밥차려주고 또 그걸 맛나게 먹는모습을보면 난 왜 예전에 울엄마가 차려준밥을 먹으면서도 한번도 고맙단생각을 못했을까..진~~한 후회가 밀려들어 가슴이 먹먹해진답니다..(눈물 핑~)
답글
밥상차리는 남자
저랑 비슷하시네요.
저희 부모님은 몸이 많이 불편하시지만 돌아가시지는 않았답니다.
하지만 당신들의 기대주였던 장남이 살림한다는 사실에 대해
아주 못마땅해 하시지요.
그래 친정에 가서 손에 물 한방울 묻히지 않고 푹 쉬다 왔다거나
어르신들이 참(들)기름이나 들기름, 쌀, 김치를 보내줫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딴 나라 얘기같아서 넋을 놓고 듣습니다.
섭맘
난,세남자 밥차리느라 하루를 다보내는데ㅜ.ㅠ
네식구 같이 앉아서 밥먹기가 왜이리 안되는지, 각자 배고풀 때 밥달라보채니... 그것두 냉면해달라, 잔치국수해달라, 비빔밥해달라 아주 각자 먹고 싶은데로 주문을 해댄다. 첨엔 엄마라서 당연히로 여기고 해주었더니, 나두 이젠 슬슬 짜증이 밀려온다.어느정도의 규칙을 만들어놓고 해주어야겠다.
저두, 찬성이요///
답글
밥상차리는 남자
엄마를 식당주인으로 아는 모양이군요.
'어느 정도의 규칙!'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가장 훌륭한 학교라 여기는 '변산공동체'
그곳 학생들이 늦잠을 자고 말고 어른들이 간섭하지 않습니다.
단지 밥 때가 넘어서 식당에 나타나면 먹을 게 없다는 거-.
황토로 지어진 기숙사에 군불을 때고 안 때고도 자유입니다.
대신 냉방에서 잠을 자면 되지요.
빈이맘
답글
밥상차리는 남자
빈이맘님.
미즈회원들부터라도 '주부가 밥상받는 날'을 정해서
실천하는 건 어떨까요?
'여자가 밥상받는 날'이라고 하면 저같은 남자주부들이
또 역차별을 받게 되니까 '주부가 밥상받는 날!'
미즈천사님들의 의견은 어떠신지?
모닝연필
구구절절 가슴에 와닿네요
저도 가끔 밥상을 받아 보고 싶다는 생각이 울컥 울컥 생깁니다 ㅎ
답글
밥상차리는 남자
아따맘마
ㅎㅎ 같은 주부님이니 공감이 가네요.
저도 바깥양반이 해주는 음식 먹어보고 싶은데,
만든다고 야단법석 해놓은걸 뒷수습 하다보면 괜히 먹고 싶어했다~는 생각도 듭니다
답글
밥상차리는 남자
제 말이요.
어쩌다가 바람이 불어서 뭐 하나 만들기라도 하는 날에는
개수대 가득 그릇을 내놓고 나몰라라 합니다.
그래도 가끔은 밥상을 받아보고 싶은데 어찌 그리
제 마음을 몰라주는지...
밥상차리는 남자
고맙습니다 분꽃님.
향 좋고, 진한 커피. 맛있게 홀짝! 홀짝! 홀짝...
답글
분꽃
그간 너무 외조를 잘하신탓도 있는듯 합니다........
한번씩은 정희씨가 만들어준 엉터리음식 이라도 먹고픈 마음 ?
뜨거운 커피라도 한잔 하십시요...
답글
인선마눌
저커피 살아있어요...
너무 보기좋아요..
개잉적으로 전 커피를 너무 사랑합니다..
커피종류는모르고 오로지 1회용믹서지만 ㅋㅋㅋㅋ
아침에 눈뜨자마자 마시는커피 기가막히죠^^(전 오로지1회용)
밥상차리는 남자
요즘 전 핸드드립을 배우고 있습니다.
첫 번째 시간에는 콜롬비아산의 수프리모를
두 번째 시간에는 에티오피아의 이가체프를
내려서 마셨는데 그 향과 맛이 감동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