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럴려고 결혼한 게 아닌데...

글쓴이 밥상차리는 남자

등록일 2010-05-25 09:11

조회수 2,0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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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24일) 아침밥을 먹다가 눈물이 왈칵 났습니다.

"밥아 너 본지 언제더냐?"는 이몽룡의 노랫가락처럼

오랫만에 밥을 대하고 보니 서러움이 복받쳤던 것입니다.

하루 세끼 밥을 차리고 설거지, 청소하고 요리하는 일이

십 년을 넘기니 이제 신물이 나도록 지긋지긋합니다.

하지만 당장 손을 놓으면 손가락만 빨아야하는 처지이니

마음과는 달리 부엌에서 서성거릴 수밖에 없습니다.


사정이 그렇다 보니 '일요일은 짜파게티요리사'라는 말처럼

쉬는 날에는 바깥양반의 밥상을 받아보고 싶습니다.

지난 사흘 연휴(석가탄실일부터 일요일까지)동안 석가탄신일에는

아주 넉넉하게 먹었습니다.

그리고 토요일. 느지막히 일어난 바깥양반 이정희씨가 신문을 봅니다.

신문을 보는 건 괜찮은데 밥 줄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어른들끼리라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성장기인 다향이도 있는데

밥줄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평소에도 그러다가 자신이 배고파야 과자나 빵을 먹습니다.

그래 부랴부랴 밥상을 차려서 아침을 먹었는데 사우나에 가겠답니다.

늘 일에 시달리는 걸 알고, 밖에 비 또한 내리니 자동차로 사무실까지

바래다줍니다. 사무실에 사우나 티켓이 있다고 해서 내려줍니다.

커피수업은 오후 4시니까 2시 반에 나가도 될 걸 12시에 나갑니다.


수업 전에 뭘 먹을까 하다가 혼자 먹기도 그렇고 귀찮아서 그냥 갑니다.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는데 전화가 옵니다.

다향이가 두 번씩이나 전화해서 수업은 끝났는지, 어디 쯤 오는지를

묻습니다. 정희씨가 해주면 좋을 텐데 항상 다향이가 챙겨줍니다.

빈 속에 커피를 여러 잔 마신 터라 쉽게 잠이 올 것 같지 않습니다.

그래 막걸리를 한병 사와서 마시고 잠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토요일을 보냈지요.


일요일 아침. 다향이가 일등으로, 내가 이등으로 일어났습니다.

"쉬잇. 엄마가 푹 자게 조용히 말해."

언제나 처럼 휴일이 드문 정희씨가 푹 자도록 배려해서 소근소근 얘기합니다.

정희씨가 깨어났습니다. 기재개를 켜면서 일어납니다.

밥을 주려는지 주방으로 가더니 석가탄신일에 받은 떡을 찝니다.

그 양이란 게 셋이 먹기에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그래 전날 수업을 마치고 챙겨온 머핀으로 아침을 대신했습니다.


아침을 먹은 정희씨가 다향이랑 사우나에 가겠답니다.

어제 티켓을 찾지 못해서 가지 못했다고 사우나에 가겠다고 합니다.

이틀 동안 350km나 운전한 탓에 피곤하기도 하고,

원래 사우나를 좋아하지 않는 탓에 둘이 다녀오라고 합니다.

운전대에 앉은 정희씨한테 빗길운전을 조심하라 당부합니다.


그리고 점심. 두 여자가 돌아오면 뭘 챙겨줄까 보니 밥통에 찬밥이 있습니다.

그런데 두 여자가 먹을 양만큼 밖에 없습니다. 그래 다시 밥을 할까 하다가

귀찮아서 두 여자에게 밥을 차려주고 라면을 삶아 먹었습니다.

토요일 아침에 밥을 먹고나서 네 끼 연속으로 밀가루음식만 먹었습니다.

우유나 밀가루음식을 먹으면 속이 불편하고 아프기까지 하는데 그랬습니다.


그래 저녁 한 끼는 밥을 챙겨줄 줄 알았는데... 역시나 희망사항이었습니다.

밥 먹을 때가 다 되어도 밥할 생각을 하지 않기에 '뭐라도 시켜먹으려나?'

생각했는데 7시에 주방으로 갑니다.

"뭘 먹으려고?"했더니 스파게티를 삶겠답니다.

한번도 자신의 손으로 스파게티를 만들어본 적이 없는 사람이

아무런 재료도 없이 스파게티를 삶겠답니다.

처음이다 보니 면을 삶을 용기의 선택부터 적당한 것을 고르지 못합니다.

그래 비 맞은 중처럼 중얼거리면서 스파게티를 만들어냅니다.


이렇게 다섯 끼니를 라면이나 빵으로 떼우고 밥을 보니 눈물이 왈칵

솟아납니다. '아! 이럴려고 결혼 한 게 아닌데...'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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