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나고 또 일어나라. 양이 사자가 될 때까지……”
어릴 때부터 만화로 동화로, 또 애니메이션으로 숱하게 보았던
‘활 잘 쏘는 숲속의 의적 로빈후드’의 모습을 리들리 스콧감독은 확 깨버린다.
그 숲속에서의 영웅담이 아니라 왜 로빈후드가
숲속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는지에 이 영화는 초점을 맞춘다.
로빈후드는 사자왕이라 불린 리처드를 따라 십자군전쟁에 참가한다.
하지만 리처드가 죽자 그는 몇몇의 동료들과 자유를 찾아 나선다.
영국은 이미 오랜 전쟁으로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져있지만
종자마저도 세금으로 빼앗아간다.
밭에 뿌릴 씨앗마저 도적질해가 희망의 싹조차 자른다.
프랑스의 왕은 사자왕을 없애고, 만만한 존을 왕으로 옹립한 뒤
영국을 점령하려는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그가 손을 쓰기도 전에 사자왕은 전쟁터에서 목숨을 잃고,
존은 왕위에 오른다.
국가재정의 확충을 위해 더 많은 세금을 거두라는 명령하는 존왕.
마른수건도 쥐어짜라는 말이다.
백성의 군사가 아닌 왕의 군사들이 존왕의 명령을 받아 칼로 세금(?)을 거둔다.
닥치는 대로 베고, 아녀자들을 겁탈하고, 심지어는 농민들을 집안으로 몰아넣은
뒤에 못질한 다음에 불을 지른다.
불꽃과 연기 속에서 신음하는 백성들과 그 모습을 보면서 희희낙락하는 군사들을
보면서 용산참사를 떠올린 건 나만의 경험일까?
권력은 신이 부여해준 것이고, 백성들은 명령에 복종하며 세금을 내는 것이
마땅하다는 존왕의 수탈에 맞서 지방의 영주들이 반기를 든다.
존왕과 지방영주들이 내전으로 돌입하려는 때에 쫓겨난 충신 한명이
프랑스군의 침공을 알아내고 두 세력 간의 연합이 이루어진다.
자유와 국왕의 권력을 분점할 것을 조건으로 침공하는 프랑스군에 맞서 싸운다.
내란을 일으켜놓고, 손쉽게 영국을 점령하려던 프랑스왕의 계획은 틀어지고,
결국 패퇴한다.
그 모습을 보고 존왕이 누구의 공로인가를 묻는다.
곁의 신하가 대답한다. 로빈후드로 인해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일그러지는 존왕의 표정에서 이순신을 시기하고 두려워하는 선조의
모습을 엿보았다면 거짓일까?
승리 후 존왕은 영주, 백성들과의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린다.
그리고 기사를 사칭한 로빈후드를 끝까지 쫒아가 죽이라고 명령한다.
‘기사를 규정하는 건 기사의 갑옷’뿐이라는 로빈후드의 말과 극명하게 대비가 된다.
그래서 로빈후드는 숲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좋아서가 아니라 어쩔 수 없이 숲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일어나고 또 일어나라. 양이 사자가 될 때까지……”
리들리 스콧감독은 이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로빈후드를 만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내게는 이 문장이
“촛불을 들고 또 들어라. 자유와 민주주의가 뿌리내릴 때까지……”로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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