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을 통해 처음 맺게 된 K와의 인연은 꽤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천리안 시절부터 시작되었으니 그녀와의 우정이 벌써 10년은 족히 되어 간다.
그 당시 나는 주부전용사이트였던 '사주대'와 '아줌마닷컴'을 오가며
인터넷 세상에 대한 왕성한 호기심을 발휘하고 있었다.
K와의 소통이 두 곳 중 어디서 먼저 시작되었는지는 불분명하다.
중요한 사실은 우리가 서로의 글에 적극적으로 반응하며 혈기 넘치는 피드백을 주고받았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것은 초창기 네티즌들의 훈훈한 열기가 느껴지던 당시의 게시판 분위기에서 그닥 특별한 것은 아니었다.
30대 초반 젊은 아줌마들의 열정 또한 다르지 않았다.
그녀가 내게 또렷하게 각인된 것은,
그러니까 우리의 관계가 조금 특별해지기 시작한 것은 한 통의 편지가 발단이 되었다.
2000년 6월13일 밤11시37분에 전송된 K의 이메일은 대충 이러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제가 운영자님께 사라님의 게시판을 하나 만들어 달라는 청탁성 메일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이미 침을 발라놨다는 답변을 들었네요.
저 사실 사라님 많이 질투했어요. 그래도 많이 좋아합니다.
제가 못 가진 재능을 가지셨으니 맘껏 펼치시길 바랍니다. 사라님의 팬, 님프."
이 메일을 받았을 때 나의 기분은 참 묘했다.
일면식도 없는 누군가가,
그저 온라인에서 만난 누군가가 사심없이 보내는 애정표현은 모골이 송연해지는 짜릿한 기쁨이었다.
게다가 동성에게서 받아본 생애 첫 고백은
장동건 뺨치게 멋진 이성에게서 받는 그것과는 질적으로 차원이 다른 성격의 감동이었다.
그제서야 나는 이토록 명료하게 솔직할 수 있는 사람에게 굉장한 매력을 느끼며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누군가에게 좋아한다는 감정을 내보이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심지어 질투의 감정을 내보인다는 것은 더더욱이나 쉽지 않은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가 보여준 진정성은
사뭇 건조한 내 심성에 봄날 단비처럼 촉촉히 스며들었다.
그것은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남아 있는 행복한 기억들 중의 하나다.
세월에 묻히고 퇴색되는 기억이 아니라
두꺼운 퇴적층을 형성하며 견고하게 쌓이는 그런 종류의 기억인 것이다.
온라인에서 K와의 교류는 한동안 그렇게 이어졌다.
소소한 일상을 나누며, 사람과 사회를 논하며 우리는 전업주부의 고립감을 떨칠 수 있었다.
작은 모니터 안에서 느끼는 거대한 세상,
우리는 그 한 복판에서 많은 이야기들을 쉼없이 나누었던 것 같다.
적어도 지난 5년 동안 내가 인터넷과 단절되었던 딱 그 시간만큼의 공백이 없었다면
서울과 부산이라는 지리적 제약에도 불구하고
한 번쯤은 더 찻잔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 마음을 나누었을지도 모르겠다.
인생에 있어서 예기치 못한 쓰나미가 몰려왔던 삼십대를 거치면서
오로지 먹고 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살았던 지난 5년 동안
나의 인간관계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단절되었다.
선택과 집중은 '사람'이 아니라 '일'이었던 시기였다.
그것은 후회의 대상도, 연민의 대상도 아닌, 그저 내가 건너야만 했던 시간의 강이었다.
K와 재회를 하게 된 것은
생활의 안정을 되찾은 지난 해에 다시 '미즈'에 얼굴을 내밀면서 부터였다.
나를 그 판으로 다시금 끌어들인 사람은 따로 있었지만
그녀 K도 10년 전 바로 그날처럼 거기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이다.
낯익은 그녀의 닉네임을 보는 순간,
뿔뿔이 흩어졌던 숱한 기억들이 퍼즐 조각처럼 제 자리를 찾아 속속 복귀하기 시작했다.
내 인생의 '화양연화'였던 한 시절에 대한 총체적 추억에서
그녀가 차지하는 비중이 제법 컸던 것이다.
우리의 소통은 다시 시작되었다.
각자 조용하게 숨어든 자신들만의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소통은
훨씬 더 내밀하고 친밀해지기 시작했다.
미니홈피에서 웅크리고 있지말고 블로그로 나와서 놀라며 끊임없이 종용당하고 있지만,
정작 그녀 역시도 듣도 보도 못한 낯선 블로그에서 저 혼자 놀고 있긴 마찬가지다.
포퓰리즘과도 거리가 멀고, 적당히 폐쇄적인 성향 외에도
K와 나 사이에는 지독히도 닮은 구석이 많다.
동갑내기 딸 하나를 키우는 것도,
결혼생활에 적당히 부대끼지만 그것 때문에 휘청거리지 않는 것도,
그닥 멋스럽지 않은 닉네임을 십 년째 고수하는 고지식함도,
어설프게 뜨거운 피를 주체하지 못해 글쓰기를 하며 끊임없이 무언가를 토해내는 것조차도 말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과 관점이 매우 비슷하다는 점이
우리의 연대감을 설명하는 가장 확실한 키워드일 것이다.
같이 분노하고 같이 웃을 수 있는 것,
그런 동질감 만큼 서로의 영향력을 확인하는 구체적인 수단은 없다.
그녀의 솔직담백한 글이 제아무리 맛깔스러워도 사사건건 견해를 달리 한다면
참 맥 빠지는 일일테니 말이다.
며칠 전, 나는 그녀 K로부터 10년 만에 또 한 번의 닭살스러운 애정표현을 받았다.
그녀의 블로그에 찾아든 낯선 방문자의 글이 계기가 되었다.
우리의 소통이 재미있었던지 그 분은 방명록에 온라인 10년 우정에 대한 감탄을 남겨 놓으셨다.
"말이 십년이지 우리 딱 한번 봤어요...안친해요 우리!"
나의 장난스러운 댓글에 K가 다시 다음과 같은 리플을 남긴 것이다.
"우리가 한 번 밖에 못 만났다는 게 안 믿어지는군..그런데 난 네가 참 좋대이!"
동성으로부터의 애정표현은 여전히 민망하고 낯간지럽다.
세파에 찌들어서 10년 전보다 훨씬 더 건조해진 나로서는
이럴 때 뭐라고 대꾸해야 할지 참 난감하다.
나도 네가 참말 좋다고,
까짓거 그 한 마디를 죽었다 깨놔도 못하겠다고 버티는 나도 참 한심하다.
이 글을 빌어서 그녀의 무한한 애정에 나도 화답을 하고 싶어졌다.
중년의 아줌마 동창들이 모여 앉아 바람난 남편을 성토하기 바쁠 때
너와는 정치와 문화를 논할 수 있어서 참 좋다고,
때때로 지적인 담론을 논할 때 뇌신경에 전달되는 충만한 관계의 만족을 느낀다고,
이런 방식의 소통을 할 수 있는 친구가 있어서 다행이고 든든하다고 말이다.
언제나 사심없는 고백을 서슴치 않는 너의 나이브함을 내가 많이 좋아한다는 것도 말이다.
하지만, 이 말도 꼭 전하고 싶다.
이제 애정고백은 장동건 뺨치게 매력적인 남자에게서 받고 싶다고 말이다. 하하.
dear,K
뒤척이다 일찍 눈을 떴다.
아침부터 커피가 땡겨서 한 잔 뜨겁게 타 마시고 오랜만에 접속했다.
사실 이 글은 마음이 충만하고 글발이 땡기던 12월 어느날에 썼던 글인데
민망해서 홈피에도 안올리고 묵혀 두고 있었다.
사람들에게 치여 죽을 맛인 너에게 새치 혀로 할 수 있는 위로가 참 막막해서
그냥 숨겨논 히든카드 하나 꺼내 들듯 이 글을 올리고 간다.
사적인,너무나 사적인 글을, 사적인 대상을 향해 올리는 게 조금 저어되면서도
여기서 널 만나고 소통했으니 또한 가장 적합한 루트라는 생각을 했다.
사람들,그리고 관계라는 거,,왠수 같이 끔찍할 때도 있고 살맛 나게 할 때도 있지..그렇지않더냐.
10년 내공의 네가 아마도 나보다 더 잘알거라 믿는다.
위로 혹은 위안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또한 다 지나가리라...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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쏙이♡
아주 오래된 맴버분들의 이야기 이신가봐요.
이글을 보니까 궁금증도 생기지만
아는 분들만 간직하는 이야기라 미스테리로 다가와요 ㅋㅋ
답글
SarA
누구에게나 열정적인 한 시절이 있는 거 같습니다.
지금은 심드렁하기 그지없지만 그땐 참 신나게 놀았죠.
덕분에 평생 지인 둘을 얻었어요.(제 성격에 둘이면 엄청 성공한 거라는..^^)
평생가야 우리가 얼굴을 마주 보며 수다떨 기회는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힐 지도 모르겠지만
온라인에서 자주 대면하니 어제 만나고 헤어진 것처럼 친밀하게 느껴집니다.
다음엔 님의 미스테리를 들려주시길...^^
맘마미아
누굴까??저두 궁금해지네요..^^
답글
SarA
또미
누군지, 참 멋진 사람이네..ㅋ
글이 너무 멋져서 좀 떠가고 싶어진다는...
나는 멋진 글을 보면 눈물이 나더라고..
답글
누봉이
또미
ㅋㅋㅋ 모름..
내가 좋아서 웃은 거임? 아라써~~
나도 언니 좋아해~
SarA
싸우지들 마셈~
제비꽃
사라님 체리맘님 누봉님
모두 예선에서 떨어지면 인되겟쥬? ㅎㅎㅎㅎ
답글
SarA
누봉이
난 ,, 니들이 지난 10년간 한 짓을 알고이따~!아~!!!
나도 갑자기 애정고백을 막 하고 싶어졌쓰... 체리맘~! 마다무상~! 일대백온담서요?
내가 마다무상땜에라도 죽어도 가야겄쓰!!!
답글
SarA
언냐,,애정고백은 나한테 해주면 안되겠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