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사연으로 부모품을 떠나 충청도 시골, 할머니 할아버지 슬하에서 국민학교를 입학하게 되었다.
시티걸로 살다가 시골로 가서, 생애 최초의 입학식을 하게 되었는데, 사실 난 아버지가 가르쳐준
한글과 숫자, 그리고 내 이름의 한문자 정도는 쓸수 있었다.
지금도 흑백사진처럼 선명하게 기억나는 것은, 멜빵달린 진청색 치마에 흰색타이즈를 입고 가슴에 가제손수건을 옷핀으로 꽂고 있었다는 것이다.
당시 아이들은 너나없이 코를 많이 흘렸고, 그래서 화장지가 없던 당시에 아이들 가슴에 손수건을 달아주는게 엄마들의 할 일이었는데, 난, 정말 맹세코 코를 흘린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냥 그당시 입학하는 아이들이 의례 그렇게 했기에 나도 역시 손수건을 달고 있었다.
그땐, 그냥 다 그랬다. 입학하는 아이들은.... 말하자면 하나의 패션트렌드였다고나 할까..
코 .. 얘기를 하니까 생각난다. 정말 콧구멍에서 누런 콧물을 늘상 주르르 달고 사는 아이가 있었다.
훌쩍 들이마시면 콧구멍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주르르 흘러나오는,,,,,,,,,,,, 으, 지금 생각하면 무척 드럽지만 그땐 그냥 그애 존재 자체로 그 콧물을 받아들였고,, 별로 이상스럽지 않았었다.
아이들의 소맷부리가 반들반들한 것은 콧물을 닦은 흔적이기도 했지만, 세탁기나 빨래비누가 흔치않던 그 옛날에 세탁을 자주 하지 않은 흔적이기도 했다.
솔직히 내가 사랑하는 할머니,, 내 사랑의 근원인 할머니를 말하자면, 가사에도 뜻이없고 깔끔함에도 관심이 없고 너무 청소를 해대면 복이 나간다고 믿는 분이었는데 그분은 코를 팽~ 하니 풀면
회색 뽀뿌링 치마에 코 푼 손을 썩썩 문지르거나, 아니면 눈물이 흔한 분인지라 남의 얘기에 펑펑 울다가
고만 회색 뽀뿌링 치맛자락을 모아 팽~ 하고 코를 풀기도 했는데, 그후에도 며칠간 그 뽀뿌링 치마를 빨았던 기억이 없는걸 보면,,,, 당시엔 위생 어쩌구 하는 얘기는 당췌 생활 어느 구석에도 없었던 모양이다..
뭐...우리 할머니뿐 아니라 고만고만 살던 이웃들도 그러했으니...
아무튼 입학식을 하고 동네 언니들하고 학교를 가게 되었는데...
할머니가 왜간장에 참기름 넣고 비벼준 밥을 우겨넣고 있으면 동네 언니들이 '00아 학교가아자~' 하고 합창을 해댔다.
숟가락을 내동댕이치고 두발모으고 손모으고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다녀오게뜹미다 하고 인사를 하고
학교를 가는데, 정말 내가 부러웠던건, 동네 언니들이 대각선으로 맨 책보였다.
난 (지금 생각하면 촌스럽지만) 꽃무늬가 새겨진 빨강 책가방을 가지고 있었는데, 언니들의 책보자기가
더 멋져보이고 존경스러웠다.
책보자기는 네모난 나이롱 보자기를 펼쳐 어긋지게 책을 놓고 싸매서 길다란 끝부분을 묶어 어깨와 허리에 대각선으로 가로지르던,, 허름한 책가방대용이었다. 그러나 난,, 그게 왠지 그렇게 부러울수가 없었다.
까맣고 딱딱한 껍데기의 연습장 안에는 큼직한 네모가 그려진 갱지가 있었다.
백로지는 나중에 나온 고급종이였고 내가 입학했던 70년대 중반엔 보통 공책속지가 갱지로 되어있었다.
입학하고 얼마까지는 큼직한 네모안에 빨간 색연필로 기역니은 등 자모음 연습을 하고 숙제로 집에서 칸을 채워오게했는데, 이 색연필이 하도 잘 닳아서 돌돌 풀어 헤쳐 심을 찾는게 아주 귀찮을 지경이었다.
그리고 얼마후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드디어 연필로 문장을 쓸 수 있게 되었는데, 형편없는 갱지 공책에
흐렸다 잘나왔다 하는 질나쁜 연필의 만남은 글씨를 쓰면 공책이 찢어지거나 지우개로 지우다가 공책이 찢어지는 사태가 하루에도 열두번도 더 일어났다.
아, 지우개........ 이건 뭐 지우개도 아니다. 진한 글자만 흐리게 해주는 역할뿐,,
당시 우리 사회 전반적으로 제품들이 질이 낮고 형편없었다.
그래서 당시 '미제' 라고 하면 최고로 쳤으니... '외제' 하면 무조건 국산보다 윗길로 쳤었다.
무슨놈의 크레파스가 칠을 하면 진하게 잔뜩 묻어나오는 부분도있고 아예 직직 그려지지 않는 부분도있었다. 그래서 '이거 미제다' 라고 자랑하는 애가 반에서 최고 인기인이었었다..
글을 쓰다보니, 내가 마치 구석기인같다..
불과 30여년 저쪽 편의 일인데도 불구하고..
내가 국민학교 들어가고 몇달후에 전기가 들어왔고 그전까지 난 호야라는 전등도 호롱불도 다 겪었다.
물론, 충청도시골로 가기 전의 내 태어난 고향, 도시에서는 전깃불과 연탄으로 시티걸 스럽게 살았지만
시골에서 산 1년반은 장작불과 호롱불과 저수지와 비료포대와 도토리줍기 등등, 아주 많은 추억을
내 생에 갖게되어 지금은 감사하게 생각한다....
내 유년의 뜰이고 삶의 자양분이고 소중한 추억이기에.
가제손수건을 가슴에 매달고 입학하던 그 때..
반공방첩이 쓰여진 2층짜리 학교 건물을 바라보며, 그 어려운 글자를 읽을 줄 아는 내가 자랑스러워 학부모 석을 돌아보면, 잔뜩 멋을 낸다고 낸,,,,,,,,,, 흰색 한복 치마저고리에 제법 깔끔을 떨며 닦은 흰색 고무신을 신은 할머니와, 역시 한복 바지 저고리에 털신을 신고
고동색 중절모를 눌러쓴 할아버지가... 연신 안절부절못하며 나를 바라보던 그 모습이...
아,
아직도 난,
어제 일인듯,
그립고 ,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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쏙이♡
울 부모님도 그때 그시절의 추억을 이야기 해주시곤 하는데
그리움도 많이 있으신거 같더라구요.
점점 나이를 드시니 옛추억속으로 빠지시는 경우가
종종 보이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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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토
ㅎㅎ 사랑스런 어린 누봉이님의 모습이 상상이 가네요..어린 시절 기억을 어찌 이렇게 상세히, 사진찍어놓은 듯 풀어놓으실 수가 있소? 난 지난날이 거의 생각 안 나.. 해민이한테 누봉님의 축하 꼭 전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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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미
음,,몇살 차이도 안 나는 나이임에도..정말 보자기 책가방을 봤단 거에..눈이 @@
난 시티걸?임에도 촌티 줄줄 나는 애였기에..ㅎㅎ
지금도 그 촌티는 내가 껴안고 가야할 유산처럼 끌어 안고 살지만서도..
코 닦은 이야기는 너무..실감한다..ㅋㅋ나도 절대로 코 같은거 안 흘려 봤음..:)
오늘 우리애가 중학교에 입학해요. 중딩..오오~~
밤새 잠을 설쳐가며 감격스러워해야 할 일이지만, 잘 잤고..ㅎㅎ
걱정만 한가득. 앞으로 짧게는 6년간 애가 해야 할 공부를 생각하니..그저 불쌍하기만 한..
나도 더불어 밤 12시 이전에 못 잔다는거..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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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마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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