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여년 훨씬 그전 입학식 날...

글쓴이 누봉이

등록일 2010-03-02 23:05

조회수 1,636

글자확대 글자축소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블로그 네이버밴드 페이스북 트위터

이런저런 사연으로 부모품을 떠나 충청도 시골, 할머니 할아버지 슬하에서 국민학교를 입학하게 되었다.

시티걸로 살다가 시골로 가서, 생애 최초의 입학식을 하게 되었는데, 사실 난 아버지가 가르쳐준

한글과 숫자, 그리고 내 이름의 한문자 정도는 쓸수 있었다.

지금도 흑백사진처럼 선명하게 기억나는 것은, 멜빵달린 진청색 치마에 흰색타이즈를 입고 가슴에 가제손수건을 옷핀으로 꽂고 있었다는 것이다.

당시 아이들은 너나없이 코를 많이 흘렸고, 그래서 화장지가 없던 당시에 아이들 가슴에 손수건을 달아주는게 엄마들의 할 일이었는데, 난, 정말 맹세코 코를 흘린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냥 그당시 입학하는 아이들이 의례 그렇게 했기에 나도 역시 손수건을 달고 있었다.

그땐, 그냥 다 그랬다. 입학하는 아이들은.... 말하자면 하나의 패션트렌드였다고나 할까..


코 .. 얘기를 하니까 생각난다. 정말 콧구멍에서 누런 콧물을 늘상 주르르 달고 사는 아이가 있었다.

훌쩍 들이마시면 콧구멍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주르르 흘러나오는,,,,,,,,,,,, 으, 지금 생각하면 무척 드럽지만 그땐 그냥 그애 존재 자체로 그 콧물을 받아들였고,, 별로 이상스럽지 않았었다.

아이들의 소맷부리가 반들반들한 것은 콧물을 닦은 흔적이기도 했지만, 세탁기나 빨래비누가 흔치않던 그 옛날에 세탁을 자주 하지 않은 흔적이기도 했다.


솔직히 내가 사랑하는 할머니,, 내 사랑의 근원인 할머니를 말하자면, 가사에도 뜻이없고 깔끔함에도 관심이 없고 너무 청소를 해대면 복이 나간다고 믿는 분이었는데 그분은 코를 팽~ 하니 풀면

회색 뽀뿌링 치마에 코 푼 손을 썩썩 문지르거나, 아니면 눈물이 흔한 분인지라 남의 얘기에 펑펑 울다가

고만 회색 뽀뿌링 치맛자락을 모아 팽~ 하고 코를 풀기도 했는데, 그후에도 며칠간 그 뽀뿌링 치마를 빨았던 기억이 없는걸 보면,,,,  당시엔 위생 어쩌구 하는 얘기는 당췌 생활 어느 구석에도 없었던 모양이다..

뭐...우리 할머니뿐 아니라 고만고만 살던 이웃들도 그러했으니...


아무튼 입학식을 하고 동네 언니들하고 학교를 가게 되었는데...

할머니가 왜간장에 참기름 넣고 비벼준 밥을 우겨넣고 있으면 동네 언니들이 '00아 학교가아자~' 하고 합창을 해댔다.

숟가락을 내동댕이치고 두발모으고 손모으고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다녀오게뜹미다 하고 인사를 하고

학교를 가는데, 정말 내가 부러웠던건, 동네 언니들이 대각선으로 맨 책보였다.

난 (지금 생각하면 촌스럽지만) 꽃무늬가 새겨진 빨강 책가방을 가지고 있었는데, 언니들의 책보자기가

더 멋져보이고 존경스러웠다.

책보자기는 네모난 나이롱 보자기를 펼쳐 어긋지게 책을 놓고 싸매서 길다란 끝부분을 묶어 어깨와 허리에 대각선으로 가로지르던,, 허름한 책가방대용이었다. 그러나 난,, 그게 왠지 그렇게 부러울수가 없었다.


까맣고 딱딱한 껍데기의 연습장 안에는 큼직한 네모가 그려진 갱지가 있었다.

백로지는 나중에 나온 고급종이였고 내가 입학했던 70년대 중반엔 보통 공책속지가 갱지로 되어있었다.

입학하고 얼마까지는 큼직한 네모안에 빨간 색연필로 기역니은 등 자모음 연습을 하고 숙제로 집에서 칸을 채워오게했는데, 이 색연필이 하도 잘 닳아서 돌돌 풀어 헤쳐 심을 찾는게 아주 귀찮을 지경이었다.


그리고 얼마후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드디어 연필로 문장을 쓸 수 있게 되었는데, 형편없는 갱지 공책에

흐렸다 잘나왔다 하는 질나쁜 연필의 만남은 글씨를 쓰면  공책이 찢어지거나 지우개로 지우다가 공책이 찢어지는 사태가 하루에도 열두번도 더 일어났다.

아, 지우개........ 이건 뭐 지우개도 아니다. 진한 글자만 흐리게 해주는 역할뿐,, 

당시 우리 사회 전반적으로 제품들이 질이 낮고 형편없었다.

그래서 당시 '미제' 라고 하면 최고로 쳤으니... '외제' 하면 무조건 국산보다 윗길로 쳤었다.

무슨놈의 크레파스가 칠을 하면 진하게 잔뜩 묻어나오는 부분도있고 아예 직직 그려지지 않는 부분도있었다. 그래서 '이거 미제다' 라고 자랑하는 애가 반에서 최고 인기인이었었다..


글을 쓰다보니, 내가 마치 구석기인같다..

불과 30여년 저쪽 편의 일인데도 불구하고..

내가 국민학교 들어가고 몇달후에 전기가 들어왔고 그전까지 난 호야라는 전등도 호롱불도 다 겪었다.

물론, 충청도시골로 가기 전의 내 태어난 고향, 도시에서는 전깃불과 연탄으로 시티걸 스럽게 살았지만

시골에서 산 1년반은 장작불과 호롱불과 저수지와 비료포대와 도토리줍기 등등, 아주 많은 추억을

내 생에 갖게되어 지금은 감사하게 생각한다....

내 유년의 뜰이고 삶의 자양분이고 소중한 추억이기에.


가제손수건을 가슴에 매달고 입학하던 그 때..

반공방첩이 쓰여진 2층짜리 학교 건물을 바라보며, 그 어려운 글자를 읽을 줄 아는 내가 자랑스러워 학부모 석을 돌아보면, 잔뜩 멋을 낸다고 낸,,,,,,,,,, 흰색 한복 치마저고리에 제법 깔끔을 떨며 닦은 흰색 고무신을 신은 할머니와, 역시 한복 바지 저고리에 털신을 신고

고동색 중절모를 눌러쓴 할아버지가... 연신 안절부절못하며 나를 바라보던 그 모습이...


아,

아직도 난,

어제 일인듯,

그립고 ,

그립다...










마이 페이지 > 스크랩북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소중한 글에 감사 댓글 남겨주세요.

 담기 인쇄 답글 목록 글쓰기


글수 글수(36,596 )
쓰기
번호 제목 글쓴이등록일조회수
24773   저 대통령 만났어요. 8 맘마미아..2010-03-03666
24772   따뜻한게 챙겨 입으세요^^* 9 뽀샤시2010-03-02994
24771   30여년 훨씬 그전 입학식 날... 4 누봉이2010-03-021637
24770   빨간내복~ 3 이경화2010-03-02715
24769   *^^축하해주세요^^* 8 <포동..2010-03-02880
24768   큰딸 조금전에 왔어요 7 자연2010-03-02765
24767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7 뽀샤시2010-03-02629
24766   삼겹살 준비하셨어요? 14 천자맘2010-03-02957
24765   1탄*^^저의 결혼 이야기~~쭈욱~전해드립니다^^* 6 <포동..2010-03-021662
24764   오늘 하루종일 멍하니 있어요 5 현규엄마..2010-03-02672
24763   도넛집에서 쫑알쫑알 6 디토2010-03-02704
24762   이벤트 당첨됐어요^^* 19 한팔뚝2010-03-021044
24761   청개구리 외손녀 6 teresung..2010-03-021292
24760   2기 토크리더 저도 상 받아네요 24 자연2010-03-02973
24759   살 빠지는 체지로 거듭나기 위한 십계명 8 이겨울님..2010-03-02641
24758   난 남들과 달라요. 10 쏙이♡2010-03-021171
24757   엉뚱한 광고(사회적 금기ㅋㅋ) 6 소심쟁이..2010-03-021348
24756   인터넷 교육 신청해줬어요..ㅎㅎ 14 천자맘2010-03-02680
24755   참새가 방앗간을~ 11 소엽2010-03-02840
24754   잠꼬대~ 6 이경화2010-03-02736
24753   오늘 날씨가.. 7 하늘님2010-03-02680
24752   치아가 건강했으면 좋겠네요 5 이겨울님..2010-03-02756
24751   바쁘시지만 잠시만 시간내어 주세요... 10 천자맘2010-03-02772
24750   친구란건 참 어렵네요 16 맘마미아..2010-03-021273
24749   토크리더덕에 즐거운 하루가될것 같아요..감사해요~! 14 은지맘2010-03-02698
24748   2기 토크리더 당첨되신분 축하드려요.. 22 천자맘2010-03-021023
24747   처음왔어요~ 8 김정민2010-03-02684
24746   오늘 대학교 개학식인데 비가 부슬부슬... 8 쌍지팡이..2010-03-02801
24745   녹색서고 집에 오니 할머니.. 11 맘마미아..2010-03-02784
24744   10초가 1초로 바꼈네요..ㅋㅋ 5 하루양2010-03-02786
24743   2월 토크리더를 발표합니다. 18 운영자2010-03-021412
쓰기
검색 목록보기


이벤트·체험단

기간 ~

쑥쑥플래닛앤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