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30일]
<아빠>
눈을 뜨니 아침 7시 50분. 늦잠을 잤다. 얼마만의 늦잠인지 모른다.
잠시 뒤에 다향이가 꿈틀거리더니 잠에서 깨어난다.
“오늘은 뭐할까?” 물으니 “다영이네 가기로 했잖아.” 라고 대꾸한다.
지난밤에 한말을 알면서도 “그랬나?” 반문하며 다시 승주로 돌아가기로 한다.
중간에 물어본다.
“아침은 다영이네 집에 가서 먹을까?” 했더니 섬진강휴게소에서 먹자고 한다.
어제 휴게소의 기억이 좋았나보다.
그래 다향이는 자장면을 먹고, 나는 매실재첩비빔밥을 먹는다.
휴게소음식치곤 둘 다 맛있다.
아침을 먹고 내쳐 승주의 선암사 앞, 다영이네집에 도착한다.
그리곤 그만.
동갑내기 다영이는 물론 동생인 다경이, 강아지 남돌이를 데리고 놀러 다닌다.
아비는 안중에도 없다.
안하던 운전을 며칠 동안 과하게 했는지 무척이나 피곤하다.
요를 하나 깔고 누웠는데 몸이 오들오들 떨린다.
그토록 끔찍하게 덥더니만 때가 되니 찬바람이 나는 것 같다.
잠깐 눈을 붙인 것 같은데 오후 2시 30분.
세 아이가 뛰노는 소리가 들린다.
‘어디 있을까?’ 생각하며 찾는데 아이들은 보이질 않는다.
홀로 선암사를 향해 걷는다. 선암사 앞에서 만난 순천야생차체험장.
'아니 순천에도 차가?’ 싶어서 들린다.
8동의 기와집(한옥)도 멋지지만 차시음장의 차 맛도 훌륭하다.
차로 유명한 보성의 것보다 한참 윗길인 것 같다.
시음장에서 만난 부부, 너무나 예쁘다. 부러울 정도로 예쁘다.
그래 차를 예닐곱 잔 얻어 마시고, 2,000원 하는 차례티켓을 끊는다.
고즈넉한 한옥에서 푸르른 산을 바라보며 차를 마신다.
추적추적 비가 내려도 좋을 것 같다. 낙숫물소리를 들을 테니….
제다실.
영화 천년학을 보았는가?
친일파영감이 흩날리는 벚꽃을 보며 좋은 소리를 들어가며 생을 마친다.
거의 그런 느낌이다. 전생에 죄를 많이 지은 내게 ‘웬 호사람!’
지난해 여행 내내 느낀 괴로움, 차를 마실 수 없는 괴로움을
한 방에 날려버린다.(정말 무지무지하게 행복했다.)
차를 마시면서 보니 숙박도 가능하다.
가족실은 5만원, 단체실은 15만원으로 비교적 저렴하다.
아마도 순천시에서 운영하는 것이라 그럴 것이다.
혼자 즐기기에 아까워 정희씨한테 전화를 한다.
남편과 자식이 여행을 다니느라 얼마나 쓸쓸할까?
밥이나 제대로 챙겨먹을까? 미안하고도 고마운 존재.
그이에게 ‘다음엔 꼭 같이 와서 머물고 싶다’고 얘기한다.
(인터넷을 통해서나마 사진을 보여주고 싶은데 아직 기회가 없다.)
집으로 돌아오니 선암식당의 사람들이 이른 저녁(어쩌면 늦은 점심?)을 먹는다.
거기에 껴서 동동주를 곁들인 저녁을 먹는다.
그리고 양껏 뛰노는 세 아이를 쫓아다니면서 구경을 한다.
승주초등학교 죽림분교 아이 둘을 더 만난다.
함께 놀다 돌아오니 다영이아빠가 어항을 놓으러간단다.
그래 어른 둘, 아이 셋, 다섯이 다녀온다.
어른들의 술자리, 다향이는 신나게 놀고, 난 술을 마신다.
하지만 양껏 마셨음에도 불구하고 취할 수가 없다.
이곳에선 다향이가 믿고 의지할 곳이 나밖에 없으니까.
요란스레 흘러가는 계곡물소리를 들으면서 조금씩 취기가 오르는 밤이다.
다향이가 잘 논다.
오전 10시 30분에 만나서 꼬박 12시간 동안 어울린다.
도대체 얼마만의 일인지! 그 모습이 보기에 좋고, 마음이 아프다.
언제든 만나서 놀 수 있는 동무가 있으면 좋을 텐데….
어떻게 해야 그게 가능할까? 아직도 풀지 못한 숙제다.
<다향>
순천에서 남해고속도로를 타고 다시 선암사 밑에 있는 다영이네로 왔다.
남돌이도 많이 보고 싶었는데 다시 보게 되니 정말 반가웠다.
남돌이는 다영이네가 키우는 치와와종 강아지였는데 너무너무 귀엽기도 하고
밉기도 했다.
귀여울 때는 잠잘 때가 제일 귀엽고 미울 때는 마구 할퀴고 물을 때가 제일 밉다.
흥분해서 놀자고 물은 건데 정말 자국이 선명하게 난다.
그런데도 남돌이가 너무너무 좋다. 나도 강아지를 한 마리 키우고 싶다.
엄마만 동의 한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