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에 '링'영화를 보고 거짓말 안 하고 석달열흘 정도 시달렸었다. 그냥 멍하니 있다가도 불현듯 생각이 나서 무서워지고 그랬다. 머리 감을 때도 눈을 못 감고, 샤워기를 틀어 놓고 발가락을 쳐다보면서 머리를 감았다. 엘리베이터에 걸린 거울은 절대로 쳐다볼 수 없었고, 밤 늦은 시간 애국가가 울려퍼지면 황급히 텔레비전을 케이블로 돌렸었다. 지지직하고 화면이 무너질까봐 무서웠기 때문에.
그렇게 나는 공포영화 내지는 공포소설 종류가 너무도 싫었다. 예민하고 섬세한 사고 같은 거와는 거리가 먼데, 어찌된 일인지 공포영화를 본 후의 잔상은 너무도 생생하여, 오래오래 내 곁을 안 떠났다.
그랬는데 말이다. 지난 주 목요일 신문기사에서 공포, 추리, SF소설 어쩌고 하는 기사를 보고 말았던 거다. 참 누가 썼는지. 정말 사람 홀리게도 잘 썼다. 그 기사를 세번인가 네번인가 되풀이해서 읽었다. 그래, 자고로 삐기질을 하려면 글도 이 정도는 써줘야 하는거다! 무릎을 탁 쳐가면서.
그 길로 도서관에 가서 기사에 나온 책과 작가를 샅샅이 뒤졌다. (음..샅샅이 라는 건 거짓말이다. 메모를 못해서 가물거리는 기억에 의지했기 때문에 사실 있는지 없는지 확신은 못하겠다;;) 우리 동네 수준이 너무 고상해서인지 거기엔 기사에 나온 작가도 책도 없었다. 그래, 뭐 딴거 좀 아끼고 이참에 한번 사봐야지. 하고 돌아서는데 눈에 띈 것이 '링'이라는 제목을 단 세권의 책.
영화는 보여지는 것이기에 무섭고, 책은 글자이니 안 무섭다고, 무서울리 없다고 나에게 최면을 걸었다. 무서워 봤자 글자인데 뭐. 그래서 펼치게 된 링 1, 2, 3.
1권은 무서웠다. 영화의 잔상이 아직도 남은 것인지 거의 덜덜 떨면서 봤다. 세세하게 묘사된 배경과 비디오 내용은 이미 봤던 거였는데, 책이 더 사실적이고 꼼꼼하게 묘사돼 있어서였는지 너무 무서웠다. "안 하면 되는데 꼭 한다" 공포영화나 공포소설이나 주인공들은 항상 그렇다. 하긴 안 하면 안 되는거지만, 그렇게 간질간질 공포의 순간으로 사람을 몰아가는 거겠지.
다 풀렸다 싶은 과정과 결말은 예상과는 또 달랐다. 자연스럽게 2권으로 훅훅 넘어간다. 2권은 1권과 상당히 다르다. 기묘하지만 1권처럼 극한의 공포는 생기지 않는다. 더 큰 공포는 '이것'이라고 우기고 있지만 여기서부터는 어쩐지 맥이 좀 빠진다.
마치 헐리우드 영화처럼 화려하고 스케일은 크지만 알맹이는 좀 허무맹랑해진다. 물론 이런 일은 충분히 있을 법하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내가 모두 알고 있지 못한 거야 당연한 일이니까. 그런데 말이다. 링 바이러스로 7일만에 죽었던 사람이 다시 살아난다는 건, 책이 던져주던 "그럴것 같다"는 믿음을 무참히 깨놓은 건 사실이다. 아무리 거기에 과학적 설명을 곁들여도 과학적인 인물이 또 다른 주인공으로 등장해도, 작가가 "어떤 일이 일어나는 건 우연이 아니고, 겉으로는 사람들이 바라지 않는 일처럼 보이는 일에도 사람들이 바라고 원하는 잠재의식이 스며들 수 있다" (맞나?)는 식의 부연설명이나 의문을 던져주어도 말이다.
3권은 아직 다 못 읽었는데 1, 2권과 또 다르다. 이렇게 비슷하지만 다르게 링으로 연결된 세 편의 책. 작가는 제목을 정말 알뜰하게도 써먹었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 이제는 기사에서 추천했던 작품들을 구해서 읽어봐야겠다. 이제 겨우 한편의 책을 읽고 일본 추리, 호러, 공포소설에 대한 평을 하는 건 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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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비꽃
요즈음은 책좀 드려다보면 금방 눈탱이 시큼거리고 ㅠㅠ
해서, 누봉이님처럼 미드에서 콜드케이스 등등 즐겨 본다네 ~`
답글
또미
아..저도 콜드케이스 좋아합니다. 마지막 부분에 노래가 꼭 한곡씩 나오던데요. 그 노래가..또 묘하게 추억을 자극해서..드라마는 끝났어도 채널을 못 돌리게 만들더라고요.
근데..콜드케이스는 범죄드라만데..이상하게도 슬픕니다. 보고 있음..그쪽이나 이쪽이나 사람 사는 건 비슷하구나..하는 생각도 들고요.
제비꽃
답글
누봉이
오마오마오마 제비꽃님
제가 추리소설 마니아 잖아요
어린시절 루팡시리즈 홈즈시리즈부터 아가사크리스티에서 부터 로빈쿡 기타 등등등등
추리물 엄청 좋아한답니다!!
누봉이
공포소설의 백미는 누가 뭐래도 스티븐 킹이쥐.. 영화로도 여러편 제작이 됐지 아마?
난 개인적으로 영화보다는 소설이 더 무섭더군.
이젠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공포소설은 시로~~~
답글
또미
아,,난 지금껏..너무 정갈?ㅋㅋ하게 살아와서 공포소설이 있단 걸...몰랐음.
지난 주에 첨..알았는데..이게 의외로 재밌음...스티븐 킹..이름은 마이 들어봤는데..
수첩에 적었다가 도서관 가서 함 디비 바야지...
책이 영화보다 더 무섭다에는..동의하는데. 단서가 붙긴하네...그만큼 잘쓴 책만 그렇다는거...
사라
난 공포,호러물은 질색.
나이들수록 걍 멜랑꼬리한 로맨틱코미디가 더 좋아진당.
<브리짓존스의 일기>는 내가 꼽은 최고의 로맨틱코미디영화.
휴그렌트 진짜 매력적이지 않냐...제레미 아이언스보다 샤프함은 덜하지만.
암튼 배두나가 우물에서 막 겨나오던 장면은 정말 생각만해도 소름끼친다.
또미야,,우리는 심근경색을 조심해야 할 나이란다..먼말인지 알징..^^
답글
또미
우물에서 기어나온게 배두나였나??음...난 몰랐음..ㅋ근데 책에는 우물에서 기어나오는 귀신은 없었다. 강한 염력으로 비디오에 장난?을 한 그녀..는 의외로 순하고 착하?더라. 2편에서 그녀는 완전 사그라든다. 공포물이 SF소설이 되는 순간인거지. 링..이 이렇게 방향을 급선회하면서..나는 어쩐지 시시하더라. 뭐 물론 나는 여전히 음모론 추종자..지만..ㅎㅎ 이런식의 음모론이나 배후론은 재미읍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