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IMF 그 추운 기억속으로...
일주일 전에는 지금의 남편과 출근을 한다고 전쟁이었는데 지금은 늦잠 꾸러기가 되었다
그것은 7년을 넘게 다닌 회사를 IMF로 인해 회사를 그만 둔 것이다
우리는 사내 커플이었다 어쩌면 남편 때문에 회사 일을 그만 둔 것일지도 모른다
그것은 내가 해고가 아닌 명예퇴직 이었기 때문이다....
아직도 할 일이 많고 사회생활을 하고 싶은데 회사 현실은 그게 아니 였기에 과감히 포기했다
요사이 아침에 대한 기본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
바쁘게 움직이던 아침에 많은 여유가 생긴 것이다
새벽같이 출근하는 남편을 보내고 티브이를 보다가 이내 잠이 든다
그게 아침 메뉴가 되었다
오늘도 잠이 사르르 들려고 하는데 요란하게 전화기가 울린다
그렇게 울리는 수화기를 드니 반가운 목소리의 주인공은 내 친구였다
몇 년 동안 연락이 안되어 무척이나 궁금했는데 이렇게 통화가 되다니...
사실 회사일 한다고 친구들과 너무나 멀어 진듯..그래서 연락이 힘들던 게 아니 였을까?
친구에게 이런 저런 회사일 을 이야기하고 지금은 다른 일을 구상 중이라고 했더니 친구는 보험업을 권유했다 사실 남에게 이런 저런 말을 잘하는 외성적인 내 성격이라 나에게 적합한 일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조금 걱정도 되었다
그 이유는 남편이 반대 할거라는 나의 예상이었다
그것도 그럴 것이 작년에 자동차 보험과 관련해 안 좋은 인상이 아직 남 어 있었기에 무척이나 그 직업을 설명 하기에 힘들 것으로 생각했다
우선 친구와 그곳에 가기로 했다
친구는 이미 그 일을 하고 있었기에 소개 형식으로 일이 진행 되었다
보통 그곳은 나 보다 두 세 살이 많은 언니들이었다
버스로 15분 거리에 시청 앞 대한생명 웅장한 건물에 바쁘게 서류를 들고 다니는 사람들 뭔가 확신이 들었다
그래 바로 이거다
그렇게 교육을 마치고 늦은 저녁시간 남편은 퇴근을 했고 오늘일 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역시나 아니 였다 남편의 고정관념은 이미 깊게 자리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나에 마음은 뜨거운 용광로의 쇠 물이었다 그 누가 뭐라고 하여도 꼭 해보리라
그렇게 일주일 이주일 남편 모르게 다니면서 어느 정도의 지식이 늘어갔다
어느날 조그만 술상을 차려놓고 남편의 퇴근을 기다렸다
한 달이 넘은 상황이라 보험에 관해서 설명도 자신이 있었기에 사실을 이야기 하고 싶었다
평소 보다 늦은 귀가 이미 남편의 몸은 술에 흠뻑 젖어 있었다
내가 먼저 말 하기 이전에 남편은 살며시 속삭이듯 자기야 그 보험 자신 있나? 그럼 열심히 해봐라……
근데 옥아 우리 2세는 언제 계획하냐...
차라리 이참에 2세나 잘 낳아서 잘 키우는게 좋지 않겠니...
여보..둘이 벌다 한 명이 벌면 우리 이 전세 언제까지 살어야 하잖아요
전세계약 1~2년이 다가오면 걱정 부터 앞선단 말이에요..
그러니 아이 생길때 까지라도 열심히 할게요....
그렇게 나의 새로운 출발은 부모님에게 허락을 받은 이성친구와의 교제처럼 신이 났다
며칠동안 한가했던 아침이 이제 바쁘겠지…..
하지만 보험업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였다
껌과 사탕 볼펜등..홍보물에만 관심이 있고 가입을 하는 사람은 극소수였다
그렇게 보름이 지나고 한 달이 되어 갈 무렵 나에게도 비장의 무기가 생겼으니 바로 안목이다
사람에 따라서 조금은 차이가 나지만 끝까지 설득을 하면 가입을 할 사람,아무리 설명을 해도 절대 가입을
안할사람..그렇게 대략적으로 구분이 생겼다
차가 없어서 먼 거리를 걷다 보면 다리가 퉁퉁 붇기 일수였고 피곤한 상태에 버스에 올라 졸다가 그만 종점까지 가본 기역도 많다
시간이 흐르면서 수당도 늘고 회사에 비해 월급은 적었지만 나름대로 개인적인 시간이 많다는 것이 매력 이였다
보험설계사의 생활 1년 만에 원했던 임신을 하였다
웃기는 일 이지만 이 보험회사에 전설이 하나 있는데 입사만 하면 1년에서 2년 사이에 임신을 원하면 꼭 성공 한다는 것이다 뭐..그게 사실이던 거짓이던 난 임신 이라는 고마운 선물을 받은 것이다
그렇게 정들었던 언니들과의 잠깐의 이별이 시작 되었고 새로운 생명에 대한 기대감으로 하루 하루가 또 다른 행복이었다
어쩌면 나이에 비해서 다른 사람 보다는 조금 늦은 출산이라 그것도 처음이고.. 강한 성격의 나 였지만 조금은 두려움도 있었다
며칠 전 계속 되는 통증에 혹시 오늘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어서 아침부터 분주하게 청소와 밑 반찬 준비로 하루가 저물어 가고 있었다
하지만 별 다르게 반응이 없었고 그렇게 하루가 지났다
그 날도 청소를 하다가 문득 은행의 통장이 생각이 났다 혹시 모른 일에 대비해서 통장의 비밀번호와 기타 이력을 꼼꼼히 적었다
그리고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어디 어디에 통장이 있고 관련된 내용이 있으니 만약을 대비 하라고…
그렇게 남편과 5분 정도의 통화를 나누다 갑자기 심한 통증에 너무나 힘들었다
그 때가 낮 12시 집과 회사의 거리는 약 30분 정신없이 집 문을 박차고 들어오는 남편….
그렇게 나는 병원으로 옮겨졌고 처음 입어보는 환자 복이 조금은 어색했지만 통증은 계속되었다
남편의 말로는 여기 온지 2시간이 넘어서고 있다고 했고 갈수록 힘이 빠지고 있었다
안절부절 못하는 남편을 보고 간호사들은 왜 이렇게 호들갑이냐 고 했지만 사실 늦게 본 손이기에 그 의미는 소중했다
그렇게 3시가 넘었는데 통증만 계속 되었고 별 다른 진행 성과가 없었다
식은 땀으로 목욕을 거듭하고 점점 지쳐갔다 대한생명의 언니들이 한결같이 이런 이야기를 했었다
명옥이 넌 분명히 자연분만일거야 당당한 체격에 성격도 강하고 근데 그런 예상은 나의 인내력의 부족인가 남편의 손을 잡으면서 도저히 참기 힘들 다고 했고 이윽고 수술이 시작되었다
나중에 안 사실 이지만 전신마취의 수술이라 혹시 모르는 사고에 대비해 보호자가 서명을 해야 한다
남편은 서명을 하면서 얼마나 마음을 졸였을까?
나중에 남편에게 들은 이야기 이지만 그 당시를 이렇게 이야기한다
수술 전 서명을 했고 그 동의서의 내용은 너무나 무서운 내용들 이었다고 죽음을 넘다 드는 수술이라 몹시 불안했고 수술이 시작 되자 남편은 병원 외부 흡연실에서 연신 줄 담배로 그 당시를 모면 했다고 한다
4시40분 경 한 아이의 울음소리에 남편은 긴장을 풀고 방안에서 떨리는 마음으로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한 아이를 기다렸고 이윽고 간호사의 품에서 반가운 인사대신 울음으로 반가움을 표시하는 공주를 맞이 했다고 한다
그리고 30분 후 마취에서 풀렸지만 수술을 했기 때문에 무거운 몸이라 간호사들의 부측으로 방으로 옮겨 졌다고……
말로만 듣던 출산을 몸소 체험을 했다
아직도 모든 게 희미 하게 보이고 방안에 아기 울음 소리와 남편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이미 대충은 예감한 공주 였기에 더욱더 기쁨이 두 배였다
남편도 공주를 원했기에 얼마나 다행인가 딸의 모습을 보면서 그 동안 힘들었던 모든 일들이 봄에 눈 녹듯 사라졌다 조금 늦게 나와서 그런지 이미 머리카락이 많이 자라 있었다
해 맑은 눈동자에 예쁜 코 역시 아기들은 예쁘다 막 피어나는 꽃 봉우리가 터지는 그 모습이 아닐까…
어느덧 우리 유진이가 28개월 아빠를 닮은 건지 아니면 나를 닮은 건지 무척이나 활기 차다 노래도 잘 부르고 춤도 잘 춘다 한 가지 흠이라면 이것 저것 모든걸 사 달라고 난리다
어느 집이든 아이들이 다 그러하겠지만….
며칠 전 할인점에 갔을 때의 일이다 남편과 함 게 생필품 구입차 한 달에 두 번 정도는 가는 편이다 아무래도 동네 슈퍼의 물가가 비싼 게 사실이다
그곳에 가기 전 보통 메모를 하고 간다 충동구매를 막고 균형 있는 생활을 하기 위해서 오래 전 부 터 습관이 되었다
경기가 나아졌다고 하지만 서민들은 아직도 불경기라 주부들의 장바구니가 허전하다
항상 그런 것은 아닌데 오늘 따라 우리 유진이가 자꾸 보챈다
멀쩡한 신발이 있는데 그게 예뻐 보였는지 그 자리에서 대책 없이 울어 버린다
어느 정도 익숙해 버린 나에게 그런 투정은 먹히지 않는 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아마 아빠가 옆에 있어서 그런 듯 하다
정에 약하고 항상 가족적인 남편이 그 신발을 그냥 모른 척 할 사람이 아니기에 마음이 답답했다
응…유진아 아빠가 사줄게 그제서야 아이의 울음이 그치고 남편이 나에게 이야기 한다
이거 내 용돈으로 사줄게….지금 남편이 다니는 회사의 사정은 IMF 이전 보다 더 어렵다
7년을 넘게 근무 했던 내 경험으로 지금 회사 현실을 누구 보다 잘 알기에 남편에게 미안했다
그렇게 장을 보고 집으로 왔다
남편이 잠시 담배를 피우로 간 사이에 딸아이를 혼내 켰다
유진아 너 그러면 안돼 신발이 있는데 또 사달라고 그러면 엄마가 어떻게 하니…..
아이가 뭘 알겠는가 그냥 그 자리에서 또 울음으로 위기를 모면 하려는 아기를 보면서 참고 있던 눈물이 내 시야를 흐리게 했다
그것은 유진 이에 대한 미안함 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어려운 현실을 이기기 위해 아니 먼 미래에 보다 나은 행복을 위해 강해져야 한다
고진감래(苦盡甘來)의 참 뜻을 알고 있기에 오늘도 우리 부부는 힘찬 항해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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