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희씨! 다향이 하고 목욕을 다녀올까 하는데 당신 생각은 어때요?”
“안돼요.”
정희씨가 두 눈을 동그랗게 치켜뜨고 짧게 대답합니다.
우리가족은 세 사람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정희씨와 이제 막 두 돌을 넘긴 다향이, 그리고 내가 함께 살지요. 다향이도 여느 아이들처럼 물놀이를 좋아합니다.
‘다향아, 우리 물놀이할까?’라고 물으면 ‘안돼’라며 도리질하다가도 막상 목욕물을 받기 시작하면 빨리 옷을 벗기라고 난리를 피우지요.
물을 좋아하는 다향이와 손바닥만하게라고 표현하기에도 옹색한, 그래서 콧구멍만 하다는 표현이 더 잘 어울리는 우리 집 화장실! 다향이는 그 작은 화장실에서도 신이 나서 팔다리로 물을 텀벙거립니다.
“왜요? 다른 아줌마들도 사내아이들을 데리고 목욕을 다니는데.”
“그건 괜찮지만 남자 목욕탕에 여자 애를 데려가는 것은 안돼요.”
나는 정희씨의 말이 이해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이와 함께 목욕탕에 가려는 이유를 세세하게 설명했지요.
“다향이가 목욕하면서 물을 첨벙거리면 우린 화를 내잖아요? 사실 옷이 좀 젖고 화장실 밖으로 물이 튄다고 해서 큰 일이 나는 것도 아닌데 말이에요. 그래서 생각한 건데 좀 더 너그러운 마음을 가져야 할 것 같아요. 가끔씩은 아이를 목욕탕에 데려가 물장난을 실컷 할 수 있도록 돕고.”
하지만 정희씨는 끝내 자신의 반대 입장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여자아이를 목욕탕에 데려가면 남자들이 이상한 눈빛으로 쳐다 볼 거라고 했습니다. 한술 더 떠서 아줌마들이 사내아이를 성추행 하는 것을 보았느냐고 되묻기까지 했지요. 그래서 다향이와 함께 목욕탕에 가려던 계획은 물거품이 되었습니다.
예전에 아들을 낳았다고 기뻐하던 친구가 생각났습니다. 그 모습이 신기해서 물어 보았지요.
“아들을 얻은 게 그렇게 좋아?”
“그럼, 나중에 함께 목욕하면서 내 등을 밀어줄 놈인데.”
그런 이유 때문에 남자들이 사내아이를 원하는가 싶어 쓴웃음이 나왔습니다.
며칠 뒤 아이와 함께 부모님 댁엘 갔습니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목욕탕얘기를 꺼냈지요. 사건의 전말을 들은 어머니도 반대를 했습니다. 내가 어릴 때 아버지와 목욕을 다녀와서 이런 말을 했다면서 말입니다.
“엄마, 아저씨들 잠지에 머리카락이 났어.”
하지만 나는 다향이와 함께 목욕탕엘 다녀왔습니다. 내가 참여하고 있는 육아모임 회원들의 말에 용기를 얻었기 때문이지요. 아빠인 내가 다향이를 데리고 목욕탕에 가는 것이 이상하겠느냐는 물음에 그 분들이 이렇게 답했습니다.
“아뇨. 지금 안 데리고 다니면 언제 데리고 다니겠어요?”
처음으로 목욕탕에 간 다향이는 열심히 잘 놀았습니다. 욕탕에 들어가 물장구도 치고, 할아버지들을 보면 꾸벅 인사를 합니다. 비누 한 번 만지고 세수 대야에 손을 담가 닦아내기를 반복합니다. 제 손에 비누를 묻혀 내 팔을 문지릅니다. 그런 아이를 지켜보는 내 얼굴에 잔잔한 미소가 번집니다.
물놀이를 실컷 한 다향이는 자전거를 타고 집에 도착할 때까지 계속해서 흥얼댔습니다. 하지만 내 머릿속에는 ‘여자아이를 목욕탕에 데려가면 남자들이 이상한 눈빛으로 쳐다 볼 것’이라던 정희씨의 말이 빙빙 맴돌고 있었습니다. <2001년>






> 


최신
이전




















떵거리맘
답글
밥상차리는 남자
주리니
4살까지만 해도(만으론 2살였던 울 꼬맹이...)
아들래밀 데리고 갔어요. 쌍둥이라 각자 한명씩 맡았거든요.
그런데 작년부턴(5살) 애들 아빠에게 둘 다 맡겼네요.
이젠 너도 커서 여탕엔 못 들어가.. 그러면서요.
실은 제가 애들 데리고 목욕탕 들어가기 힘들어서 그랬지만, 엄청 편코 좋더라구요^^
답글
밥상차리는 남자
아내와 아이가 여탕으로 들어가면
전 천애고아가 된 것처럼 막막하던데...
이순여(나리)
ㅎㅎㅎ
눈부신하루님의 말에 동감입니다~~
답글
눈부신하루
지금은 다향이가 컸기 때문에 목욕탕에 데려가는 건 불가능하지요^^
저의 아버지께서 절 무척 이뻐하셔서 목욕탕에 데려가신 적이 있으시답니다.
아주 어릴때라고 하시던데.....아마 3살에서 4살정도였을거예요.
전 그때 목욕탕 일이 기억에 생생히 남아있어요^^
아마 어린마음에 희한해서 그랬는지도 모르죠.
그래서 정희씨가 반대했을지도 모릅니다.
여자목욕탕에 유치원생 남자아이를 데리고 오는 엄마들도 있으시지요.
절대로 데려가시면 안된다고 두손들고 말리고 싶네요.
답글
밥상차리는 남자
아기 때나 가능한 일이지요.
전 개인적으로 목욕탕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답답하기도 하고, 때를 밀지도 않으니 아무 소용이 없지요.
그래도 모녀가 목욕탕엘 간다고 하면 바래다 줍니다.
둘이 목욕할 시간 동안 산책을 하거나 자동차 안에서 쿨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