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향이는 과천에서 태어나고, 자랐습니다. 중앙공원은 물론 도서관과 장터, 서울대공원과 현대미술관, 서울랜드를 제집 드나들듯이 하면서 자랐지요. 처음에는 자동차로, 서너 살 때는 자전거를 타고 화사한 봄 꽃길과 낙엽 길을, 또 눈 쌓인 길을 놀러 다녔습니다. 관악산계곡에서 물놀이도 하고, 겨울이면 꽁꽁 언 계곡에서 썰매도 탔습니다. 때로는 나뭇가지를 모아다 불을 피워서 고구마를 구워먹기도 했고요.
하지만 젊은 남자가(물론 여자도 마찬가지이겠지만) 늘 아이와 붙어 지내는 게 무척이나 힘들었습니다. 그래 처음으로 문을 두드린 곳이 모 공동육아였습니다. 물 만난 물고기처럼 잘 놀면서도 아침에 공동육아로 갈 때면 묻습니다.
“아빠, 오늘도 낮잠 자야 돼?”
“당연하지.”
“낮잠 자는 건 싫은데.”
“그럼 집으로 돌아갈까?”
“아냐, 안 돼. 유치원 갈 거야.”
그렇게 열흘이 지난 어느 날 아침의 일이었습니다.
“으앙! 나 유치원 가기 싫어.”
웬만해서는 우는 법이 없는 다향이가 대성통곡을 합니다. 눈물 콧물까지 쏙 빼면서 서럽게 웁니다. 아차! 싶습니다. 무언가 잘못된 것입니다. 그래 아이를 꼭 안고 어깨를 토닥이면서 묻습니다.
“다향아, 가기 싫으면 안 가도 돼. 그러니까 실컷 울어.”
다향이가 웁니다. 끅끅 거리면서 한참을 웁니다. 그러더니 속마음을 털어놓습니다. 공동육아에 가는 건 좋지만 낮잠 자는 게 너무 싫답니다. 다향이는 어릴 때 유별나게 잠자리를 가렸습니다. 그래 저희 부모님 댁에서도 애를 먹인 적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 엄마아빠가 옆에 누워있었어도 그랬습니다.
또래아이들과 노는 건 좋았지만 그 즐거움보다는 낮잠에 대한 부담감이 더 컸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공동육아를 그만두었습니다. 공동육아 이사들이 누구나 겪는 과정이라면서 말렸지만 그만두었습니다. 맞벌이를 하는 상황이었다면 속으로 울면서 보냈겠지만 집에 있으면서 아이에게 심적인 부담을 지우고 싶지 않았습니다.
다향이가 말합니다. 낮잠을 재우지 않는 유치원에 보내달라고 합니다. 그렇게 1년 이상을 쉬고 선택한 곳이 초등학교병설유치원이었습니다. 다향이랑 제 마음에 딱 드는 곳이었습니다. 아이 손을 잡고 설렁설렁 걸어서 9시까지 데려다 주고, 12시까지 마중을 가면 됩니다.
아이는 선생님이랑 노래도 하고, 그림도 그리다가 중간에 간식을 먹고, 12시면 끝납니다. 아빠랑 손잡고 돌아와서 점심을 먹은 다음엔 놀러 다니는 생활을 했습니다. 그런데 어둠의 그림자가 갑작스럽게 찾아왔습니다.
13평짜리 아파트에 전세를 살면서 다향이를 낳았고, 열심히 모아서 15평짜리 전세로 옮겨 살았는데 재개발이 된다고 집을 비우랍니다. 인근의 16평형 아파트전세비로 1억 이상을 달라고 합니다. 은행융자를 받아서 7,500만원에 세를 사는지라 감당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 안양 인덕원사거리에 있는 00아파트로 옮겼습니다. 과천 인근에 살면서 과천의 문화를 누릴 셈이었지만 생각 같지 않았습니다. 너무 시끄럽고, 먼지도 많아서 6개월 만에 분당 율동공원 앞으로 이사를 갔습니다. 그곳에서의 생활은 너무나 흡족했습니다.
어찌 보면 과천보다도 더 쾌적했고, 과천처럼 좁지 않아 아이랑 탐험(?)할 곳이 많았습니다. 공원에서 자전거를 타고 인라인스케이트를 탔습니다. 봄이면 산딸기, 가을이면 알밤을 주우러 다녔고, 겨울에는 눈썰매를 타며 원 없이 놀았지요. 율동공원을 한 바퀴 돌고 오리가 노니는 개울을 따라 도서관까지 걸어갑니다. 그곳에서 맛난 콩짜장을 먹고, 책을 빌려서 집으로 돌아옵니다.
그런데 세상 어디에도 마음에 드는 떡은 없는 모양입니다. 사람들도 친절하고, 아이들도 예의바른데 아이들을 구경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토요일 오후에나 아이들 구경을 합니다. 밤늦게 돌아오는 초등학생의 가방이, 파리한 얼굴이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분당으로 이사한 게 다향이 나이 일곱 살 때입니다. 과천에서처럼 초등학교병설유치원에 보내려고 했지만 꽉 찼답니다. 그래 옆집 아주머니한테 유치원을 문의하니까 황당한 말을 합니다.
“몇 등급으로 보낼 건데요?”
“……”
“3등급은 월 30만원, 2등급은 월 50만원, 1등급은 월 100만원이거든요.”
헉! 월 100만원이면 1년에 12,000,000원.
그래서 유치원을 포기하고 그냥 신나게 놀았습니다. 재수생이 다니는 종합학원처럼 아이에게 이것저것 다 시키고 싶지 않았습니다.(물론 경제적인 여건이 안 된 것도 사실입니다)
잘 노는데 마음이 초조해집니다. ‘아직 어린 아이를 무한경쟁의 틀 속으로 등 떼밀어야 하나? 아니면 자유로운 영혼으로 키울까?’ 고민하다가 제주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제주에서도 오지마을에 속하는 교래리(산굼부리가 있는)로 이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그곳 교래분교에 다향이가 입학해서 전교생이 스무 명이 되었습니다.
그곳은 아이들의 천국이었습니다. 전교생이라고 해봐야 몇 명 안 되니까 학원버스가 오지 않습니다. 합반이 마음에 걸리기는 하지만 1학년부터 6학년까지 어울려서 놉니다. 그곳아이들에게 동화책을 읽어주고, 함께 공을 찹니다. 다향이는 언니오빠들을 쫓아다니느라 바쁩니다. 오빠가 잡은 도롱뇽을 만지면서 귀엽다고 합니다.
재미있게 살았는데 겨울이 되니까 문제가 생깁니다. 눈이 내리면 1미터 이상씩 쌓입니다. 정희씨의 출퇴근에 문제가 생깁니다. 눈이 쌓여서 못 간다고 전화하라니까 회사근처로 이사하지 누가 산꼭대기에 살라했냐고 한답니다. 그래서 따뜻한 서귀포로 이사를 했습니다. 그렇게 불행이 시작되었습니다.
도시처럼 편의여건이 갖춰져 있지도 않고, 시골생활의 즐거움도 없습니다. 다향이는 다향이 대로 힘들어합니다. 도대체 왜 복도에서 열중쉬어 자세로 다녀야하는지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그래 메일도 보내고 직접 만나서 한참동안 얘기를 했더니 담임선생이 말합니다.
“그럼 아버님. 손을 앞으로 모으고 다니게 하면 어떨까요?”
그 순간 좌절하고 말았습니다. 도무지 말귀를 알아먹지 못하는 인간을 매일같이 만나야 하는 다향이는 얼마나 속이 터졌을까? 2학년 1학기를 마친 다향이가 학교를 끊으면 안 되냐고 묻습니다. 그래 이유를 적어보라고 했더니 하나같이 타당성이 있습니다. 그래 기쁜 마음으로 학교를 그만두라고 했습니다.
이쯤에서 몇 가지 이야기를 해야겠습니다.
부모님이 만류하면서 말합니다.
“사람은 나면 서울로 보내고, 말은 제주로 보내라고 했는데 왜 거꾸로 하니?”
그래 명쾌(?)한 대답을 했습니다.
“맞아요. 저는 다향이를 말처럼 자유롭게 뛰놀게 하고 싶어요. 어머니가 늘 말씀하셨잖아요. ‘공부도 때가 있다’고. 그럼 ‘노는 것도 때가 있을 거’에요. 지금 안 놀면 언제 놀겠어요?”
친구가 비판을 합니다.
“너희부부야 너희들의 판단대로 한다지만 아이의 의견은 무시되는 것 아니야?”
그래 조용하게 말해주었습니다.
“그럼 자네의 아이들이 고층아파트 살면서 학원을 전전하는 건 그 아이들의 선택인가? 다향이는 나중에 도시로 나올 수도 있지만 도시에서 성장한 자네 아이들은 시골의 정서를 가질 수 없을 걸.”
대안교육을 초창기부터 지켜보면서 ‘다향이가 작은 학교를 1년 쯤 다니고, 그냥 보통 학교(도시의 큰 학교)를 1년 정도 다닌 다음에 그만두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예 다니지 않은 것보다는 다녀보고 스스로 판단했으면 했지요.
대안교육을 생각하는 학부모가 열이면, 열 모두의 지향론과 방법론이 다릅니다. 그러니까 툭하면 모여서 밤새도록 토론을 하는 거고요. 그런 모습을 오랫동안 보면서 ‘저 열정으로 아이랑 놀아준다면 그만한 게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다향이는 학교공부를 하지 않습니다. 영어공부도 하지 않습니다. 학교 다닐 때는 외웠던 구구단도 잘 기억하지 못하고, 알파벳도 모르는 게 더 많습니다. 그래 많은 분들이 말합니다. ‘무책임한 사람’이라고 나무라는 분도 있고, 검정고시의 준비여부를 묻는 분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습니다.
영어도? 대학은? 묻지만 한국사람 모두가 영어를 잘해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일부러 시키지 않는 건 아닙니다. 제가 관심을 가질 때까지 기다린다는 게 옳을 겁니다. 대학! 꼭 가야합니까? 어차피 SKY를 (가기도 어렵지만)나와도 취직이 어려운데 아이를 잡아가면서 비싼 돈 들여 사교육을 시킬 필요가 있나요? 검정고시도 대학을 가려고 마음먹어야 준비하는 것이지 그렇지 않다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입니다.
거의 모든 (대)학생이 영어에 올인 합니다. 영어공부를 하느라 전공을 포기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모든 업체에서 영어성적을 최우선시 하는데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습니다. 업무에서 그걸 사용하는 사람은 극소수인데 영어점수로 사람의 능력과 가치를 평가하다니. 그 시간에 자신만의 세계를 넓고 깊게 만드는 게 낫다고 생각합니다. 외국인이 갖지 못한 나만의 켄텐츠를 구축하고 있다면 저희들이 통역을 붙여줄 테니까요.
다향이는 아침마다 피아노를 칩니다.(물론 제가 좋다고 해서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동시를 한편씩 외웁니다.(그렇게 다섯 권을 외웠습니다) 사람들은 ‘어떻게?’라고 묻지만 하루에 한편 이상을 외운 적이 없고, 손님이 오거나 놀러갈 때면 건너뜁니다. 그 다음엔 그림을 그리고(대략 일주일에 한 장 정도, 기회가 된다면 수년 뒤에 공동전시회도 꿈꿉니다), 읽고 싶은 책을 자유롭게 읽습니다. 오후엔 제가 좋아하는 수영을 합니다. 그리고 짬짬이 놀러 다닙니다.
하루에 한편씩 10년 동안 시를 외운다면 저절로 시인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나라 성인들의 미술솜씨가 중학교 1학년생 수준이랍니다. 그다음부터는 미술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으니까요. 스스로의 즐거움을 위해서 책을 읽습니다. 지난해엔 한 달 동안 육지로 배낭여행을 다녀왔습니다. 다향이랑 해외배낭여행을 위한 예행연습이었습니다.
지금처럼 살면서 1년에 한 번씩 해외배낭여행을 다니고자 합니다. 세상이 얼마나 넓으며 다양한 문화가 있는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존재하는지, 또 다양한 직업이 있는지를 직접 보여주고 싶습니다. 그렇게 4-5년 동안 돌아다니면서 다향이가 진정으로 원하는 일을 찾기만 한다면 성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다음부터는 제가 스스로 공부하면 되니까요.
다향이가 잊을만하면 말합니다.
“다향아, 뭐든 열심히 해. 넌 스무 살이 되면 집을 나가 독립해야 하니까.”
다향이가 싫다고 하지만 그건 두고 볼 일입니다.






> 


최신
이전





















눈부신하루
밥상차리는 남자님의 글을 읽다보면 참 많은 걸 다시 생각해 보게 됩니다.
매일매일 들어오면서도 오늘은 어떤 이야기를 올려주실지 기대를 하게 되네요.
답글
밥상차리는 남자
아이가 학교에 다니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서 많은 분들이 의구심을 갖습니다.
또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해하기도 합니다.
그래 나름대로의 생각을 정리해서 올렸는데도 빠뜨린 게 하나 있네요.
다향이랑 꾸준히 하는 것 중의 하나가 '영화보기'입니다.
상영되는 영화의 6-70%를 보는 것 같습니다.
(제주시보다도 2-30년 쯤 낙후된 서귀포에서 할 수 있는 게 그것밖에 없기도 합니다.)
또 옛날 영화들 중에서도 기억에 남을 만한 것들을 빌려보기도 합니다.
영화에는 이야기가 있고, 음악과 미술이 있고, 사람이 있으니까요.
하지만 제가 원하기 전에는 '영화 어땠어?'하고 묻지 않습니다.
즐거운 영화를 보고 스트레스받을 까닭이 없으니까요.
그냥 저 아는 만큼만 보라고 내버려둡니다.
답글
디토
늘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글 읽고 나면 행복감이 제게도 전염(?)이 되어 참 좋습니다.
계속계속 다향이와의 얘기 기다릴게요~
답글
밥상차리는 남자
주리니
저도 지금은 애들이 자유롭게 뛰어놀아야 한다는 생각에
다른 엄마들처럼 아이들에 공부 하라며 스트레스는 주지 않는 편입니다.
울 꼬맹이 6살이거든요. 또래들은 읽고 쓰는 애들이 꽤 많지만
울 꼬맹인 겨우 제 이름 정도만 쓰고 한글을 죄다 모르는 것 투성입니다.
그래서 간간이 걱정도 돼지만(왜냠 연말생여서 만으론 4살이거든요)
공부도 다 때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릴때 실컨 놀지 않으면 정서적으로 삭막해지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드는데...
밥상님은 저보다 더 맘을 터 놓으신 듯 하네요..
답글
밥상차리는 남자
다향이는 초등학교에 입학해서야 학교에서 한글을 배웠습니다.
전교생 스무 명 중에 1학년생이 다향이를 포함해서 3명이었는데
하루는 세 녀석 간에 다툼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다향이는 글을 모르고 입학했지만 어릴 때부터 동화책을 많이 읽어줘서
논리가 앞섭니다.
그러니까 논리에서 밀린 한 아이가 이렇게 말했답니다.
"야, 오다향. 한글도 모르는 주제에."
다향이가 집으로 돌아와서 '주제'가 무언지 묻습니다.
그래 설명을 해주었더니 으앙 울면서 씩씩거립니다.
그리고 금방 한글을 깨우쳤습니다.
제가 필요로 하니까 어렵지 않게 배웠고, 1학년 1학기 말에는
읽고 쓰기에서 (셋 중에)가장 월등한 실력을 보였습니다.
여행을 하다 친구를 사귀고, 그 친구랑 통화를 하고 싶거나
이메일이라도 주고 받고 싶다면 외국어는 알아서 할 거라고
믿습니다.
요즘은 입학 전에 한글을 가르쳐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도 버틴 건
글을 일찍 배우면 그림책을 봐도 글만 읽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어른들이 그렇습니다.)
하지만 글을 모르면 그림을 아주 열심히, 대여섯 번을 읽어주고도
찾아내지 못한 작은 것까지 찾아냅니다.
보석상자
제가 살고 있는 이곳이 율동공원 아래라 직접 보듯이 읽었네요.
저도 애들 키우면서 정말 이렇게 해야하나 싶어요.
우리 애들 남들에 비하면 학원 진짜 안보내는데 걱정될때가 더 많고 제가 더 불안해요.
하지만 쉴시간도 없이 학원차 타고 학원 다니는 아이들보면 안쓰럽기도 하구요.
이곳은 타 지역에 비해 과외가 장난 아니라 안하고 있음 더 미안하다니까요.
잘 따라가주는 아이들이 그저 고마울따름이에요.
행복지수는 과연 어느것일까 싶어요
답글
밥상차리는 남자
전 장안중학교 앞 장안두산빌라에 살았었습니다.
그리고 사는 동안 행복했습니다.
많은 엄마들이 말합니다.
'나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은데 옆집에서 모두 시키니까
불안해서 어쩔 수 없이 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옆집 아주머니에게 내가 그 고약한
옆집 아줌마가 될 수 있습니다.
내가 옳다고 믿는다면 남의 탓하지 말고 나 스스로가
원하는 길을 가면 그만 아닐까 싶습니다.
메이폴
밥상님 덕분에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여태 저는 아이를 제 기대수준에 맞춰 키워온 것 같다는 생각을
밥상님 글을 읽으며 반성하고 있답니다
아이에게는 아이의 인생이 있는데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 살아온 경험칙상으로 아이를 위해..라는 생각만으로
아이를 대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전 요새 진정 아이가 원하는 것이 무언가 고민하고 있고
오늘 아이와의 대화를 통해 아이가 원하는 것을 지원하기로 했습니다
나중에 힘든것, 겪을 것, 헤쳐나가야 하는 것은
아이 몫의 인생으로 남겨두기로 했습니다
다만 ' 자신에 대한 인생의 책임'만 얘기했습니다
아직 어린 아이가 그 말뜻을 이해했을진 몰라도
아이의 인생은 아이에게 맡기기로, 그렇게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답글
밥상차리는 남자
감사라니요? 가당치도 않은 말씀을...
10년 전 쯤에
소믈리에나 파티쉐, 바리스타가 각광받는 직업군이 되리라
예측한 사람이 있었을까요?
아마도 없었을 겁니다.
그래 지나치게 자녀걱정하는 분들에게 말합니다.
"부모는 이미 과거고 아이는 미래입니다.
과거의 낡은 틀로 미래를 규정지으려 한다는 게 가당한 일입니까?
저 아이들은 우리가 상상하지도 못했던 재미난 일을 하면서
살 거니까 그냥 믿고 내버려 두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