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해.
2009년 7월6일 밤 10시51분에 남편으로부터 수신된 문자메시지다.
고등학교 졸업직후에 이 사람 만나서 어언 20년만에 처음으로 들어본 말이다.
남자들은 마흔 넘어 철들기 시작한다더니 그 말이 맞는 모양이다.
'이 아자씨가 별다방 미스김한테 보내려다 잘못 보낸거 아냐?!"
정말이지 제일 먼저 요런 교양머리 없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 남자한테 여자가 생겨도
그 여자한테 사랑한다는 표현을 하려면 또 20년이 걸릴테니 일단 뭐 그건 아닌 거 같고...
어쨌든 뜬금없이 왠 일일까 싶으면서도 세 글자에서 뚝배기 같은 진심이 느껴졌다.
남편이 보낸 문자를 자정이 넘어서야 확인하는 바람에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기만 하다가 결국 답장을 보내지 못했다.
뭐라고 답장을 보내야 할지 적절한 멘트를 찾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나한테 보낸거 맞냐!...이렇게 장난을 치고 싶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나도 사랑해...것두 자연스럽지가 않았다.
남편의 표현하지 않는 사랑에 너무 익숙해져서 어느새 나도 딱 그만큼 타성에 젖은 결혼생활이었다.
그많던 애교와 설레임은 다 어디로 가고 남아 있는 기억은 악다구니 썼던 시간들이 더 지배적이다.
물론 그래서 잊어버리고 잊혀 졌으면 하는 기억들이다.
이 사람에게 모진 소리도 참 많이 퍼부었는데 돌이켜보면 그걸 다 들어준 우직한 사람이었다.
20년만의 사랑 표현이 감격스럽기보다
때로는 거친 파도와 풍랑에 휩쓸렸던 세월의 강을 함께 건너온 자에 대한 진한 연민 때문에
쉽게 잠들지 못한 밤이었다.
그 강을 건너면서 난파 직전의 위기를 겪기도 했고
그때의 파편 한조각이 아직도 가슴에 박혀 여전히 한 뼘 거리의 시간의 강이 존재하지만
이 사람과 어쩌면 백년해로를 하게 되겠구나,,,아주 오랫만에 그런 희미한 확신이 들었다.
내 마음 속에 존재하는 당신에 대한 거리감이 과연 좁혀질 수 있을까,그 말을 하며 서럽게 눈물이 났을 때
"돈이면 다 돼, 그땐 얼마든지 좁혀질 수 있어."
미련 곰탱이 같은 남편의 대답은 참 단순명료해서 좋았다.
에효,,이 인간 철들려면 멀었지 싶었지만
돈 때문에 멍든 세월, 돈 때문에 상처난 관계에서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뭐,,돈 좋아하는 나도 99프로는 동의하는 사실이니까.
떨어져 지내는 시간이 더 많아서 오랜만에 만나면 내심 많이 반갑다.
하도 산을 돌아다녀서 시커멓게 그을린 얼굴을 보면 안스럽기도 하다.
당신의 날카로운 옆모습을 보면 실날같은 설레임이 사실은 아직도 가슴 밑바닥에서 꿈틀거린다고,
이 말 하면 왕자병이 또 도질까봐 가슴에만 담아두려한다.
매년 7월6일 이 문자메시지를 내보이며 남편을 놀려 먹으면 무지 재밌을 것 같다.
저 한 줄의 문자는 아마도 내 핸드폰 문자보관함에 꽤 오랜 시간 저장되어 있을듯 싶다.
사노라면,,,지금보다 더 좋은 날도 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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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토
백년해로에 대한 '희미한' 확신이란 말에 가슴 찡해집니다.
두 분이 함께 한 세월 속의 추억을 축복합니다.
답글
사라
우리가 살아가는데 있어서 백프로 확신도 장담도 할 수 없으니까요.
그래도,,희미하게라도,,확신이 들기 시작했다는 게 중요하겠죠.
사실 전 심각하게 이혼을 고려했던 적도 있었고,
넘 힘들었던 2년 동안 주구장창 이혼을 요구했던 시절도 있었어요.
따지고보면 장점이 훨씬 더 많은 사람인데 힘들땐 아홉개의 장점 보다 한개의 단점을 못견뎌했죠.
하지만 언제나 남편은 뭘 믿고 그리도 요지부동이던지...
이 사람은 어쩌면 나보다 관계에 대한 책임감이 더 큰 사람인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우린 아직 앞으로 최소 이,삼십년을 더 살아갈텐데
삶이 또 어떻게 변화무쌍해질런지..그건 며느리도 모르는 일일테죠.
그래서 지금 나 행복해미치겠다,,,앞으로도 영원히 사랑하며 행복하게 자알 살 자신있다,,
이런 장담도 약속도 할 수 없다는 거죠...물론 그렇게 살고싶고, 그러기 위해 노력하겠지만요...^^
또미
좋았겠다..ㅋㅋ 근데 놀랍다..매년 7월 6일...을 기억할 수 있겠다니.....!!!!!!
우리남편은 사랑해..자주 해줬었.지만..내가 하도 질색을 하는 바람에..요즘 통 안 한다. 난 그런말 듣고 싶지 않다. ㅋㅋ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말이나 행동은..사람마다 다른게 정상이겠지?
쓰고 보니..내가 차암..별난여자 같아서..벌써 후회가..된다. 이 리플을 등록하지 말까??ㅋㅋ
난 좋았던 기억보다 나빴던 기억이 더 오래 가더라. 우리 남편은 그 반대고..그래서 우린 서로 같은 시간을 살아왔지만 기억하는 건...쫌 많이 다르다. 서로가 옛날 일을 꺼내면..
헉..헉..한다. 난 기억에 없는데 상대가 기억하는게 놀라워서...ㅋㅋ
왕자병...이 있구나. 음..근데 이건 좀 귀여운 병, 아닌가?
울집 남자는 점점점점 더 좁쌀영감이 되어간다.....에잇...쓰다보니...또 졌군.....넌 왕자와 살고 난 영감과 사는구나!!
답글
사라
음...그순간 단순히 좋다는 느낌 보다는 그냥 마음이 묵직했어. (눈물이 찔끔 나더라)
안하던 짓 하니까 좀 당황스럽기도 하고.
자기 죽을 때 "사랑했다!" 한마디만 하면 된다던 사람이었거든..ㅋㅋ
난 기본적으로 과묵한 성품을 좋아하기 때문에 그 말 못들어서 안달나지도 않았지만
그래도 좀 일찍 해주지...그런 생각은 잠깐 들었다.
왕자병은 참아줄 만 하다...내가 더 심각한 공주병이 있기땜에..ㅋㅋ
아침에 출근하면서 "엄마, 나 왜 이렇게 예쁜거야!"..이러고 나오거든..
정말 난 왜 이렇게 이쁜거니!! 크크크.
하늘맘
20년만에 듣는 사랑한다는말..
감동이셧겠네요~~ 바로 나도 사랑해 하구 문자 보내 주시지 그러셨어요~~
사랑해♡ 언제 들어도 참 설레는 단어 입니다. ㅎ
답글
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