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머니 되는 분들의 글을 읽으며 오래 생각해 보았다.
나의 일방적 경험을 토대로 말한다는 건 심히 객관성을 잃은 글이 되겠지만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끊임 없는 사연들이 온라인상에서, 드라마에서 확대 재생산 되고 있는 느낌이 들 만큼
‘가정 비극’의 주제를 제공해온 고부 간의 문제.
이게 다른 심각한 문제들과 마찬가지로
본질을 둘러싼 외피가 너무 두껍고 단단하여 쉽게 접근할 수 없게 만드는 요소를 갖고 있다.
여자의 적은 여자라든지, 속 좁은 여자들끼리 싸운다든지,
얼치기 페미니스트들이 어른 알기를 우습게 안다든지…하는 쉬운 얘기들 아래
숨어 있는 핵심적인 원인이 있다.
온전히 사람과 사람의 사랑으로 온기를 만들어 가야 할 가정이라는 소공동체에,
‘권력 싸움’이 교묘하게 개입 되면서 가정 파탄, 우울증, 분란 등을 불러왔다.
가장 인간적이어야 할 곳에 가장 비인간적 요소가 들어옴으로써 비극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건 당연히 가부장제가 가져다 준, 지겹도록 끈질기게 현대 사회까지 잔존하는 비극이다.
그와 동시에 이를 가능하게 하는, 제도와는 별개의 본능과 관계된 부분이 있다.
그걸 나는 ‘모성애 결핍’이라 칭하련다.
모성의 정의에 대해 비판적인 시선이 있어 왔다.
어머니의 무조건적 희생, 신이 세상 모든 곳에 있을 수 없어 어머니를 만들었다는 얘기-
이렇게 모성을 신성시 하는 인식의 이면에는 '만들어진' 어머니 상이 존재한다는 거다.
모성이란 것도 결국 본능을 바탕에 두고 있다면, 그 실체를 파헤쳐 있는 그대로를 인정한 다음
여기서 좀더 진화한 모성을 위해 어떤 인식이 필요한가를 냉정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실은 나도 그 본능의 무서움을 절실히 경험한 적이 있다.
나의 딸이 뇌종양 진단을 받고 척수 검사를 할 때였다.
아이의 척수를 검사하는 동안 문 밖에서 기다리는데,
소아 병동 곳곳에서 아이들 울음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내 아이가 고통 속에 엄마를 찾으며 울고 있는 것 아닌지 검사실 앞에서 아무리 귀를 대고 기울여도 다른 아이들의 소리가 겹쳐 도대체 내 아이 목소리를 분별할 수가 없었다.
그 순간, 찰나처럼 짧은 순간, 난 다른 아이들의 입을 다 틀어막고 싶은
거의 살의에 가까운 격렬한 감정을 느꼈다.
모성이란 본능을 한 꺼풀 벗겨보면 그 이면엔
내 아이를 위해 남의 아이를 희생시킬 수도 있는 잔인함이 존재한다.
그 원시적인 본능이 아이가 아직 보호 받아야 할 어린 시절에 주요 에너지원이 된다면,
그 아이가 결혼하여 배우자를 만날 때 또 묘하게 변질될 수 있다.
내 아이의 관심과 사랑을 일시에 가져가 버린 남의 자식에 대한 적대감에 눈이 멀면
종국에는 내 자식의 행복까지도 제물로 삼아 버린다.
즉, 자식을 위한다는 모성애가 결국 어미인 내 행복을 위해
자식의 행복을 내놓으라는 걸로 뒤집힌다.
살모사는 어미를 삼키는 동물이라 하지만,
인간의 어미 중에 자식을 삼키는 경우가 있다면 바로 이거다.
그것을 의식조차 못하고 드라마를 보면서, 남 얘기를 하면서
이런 비극을 희화화하고 쉬운 소재로 전락시킨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고부갈등의 원인이 모성애 결핍이란 말을 따져 보자.
갈등의 원인이 며느리에게는 없단 얘기인가?
당연히 있다.
나 역시도 급진적 페미니즘을 내면에 숨긴 채 끊임 없는 ‘수동 공격’으로 저항하였고,
내 결혼 생활에서 주인 역할을 결코 내놓지 않았던 시어머니와
그 어머니를 종교처럼 신성시한 아들,
이렇게 세 박자가 맞아 떨어지면서 결혼은 종지부를 찍었다.
그럼에도 왜 모성애의 결핍에만 초점을 두느냐고?
두 사람이 만나 결혼하는 자리에 중심축은 두 사람일 뿐,
원가족의 자리는 본래 없기 때문이다.
없는 자리를 만들어 내는 것만으로도 어불성설인데
거기다 주인 자리까지 내놓으라고 한다면 결과는 뻔하다.
한국 사회에는 맞지 않는 과격한 얘기라고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미 우리 사회도 그 결과가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
딸의 경우 친정과 밀접하게 관계를 맺고
육아나 살림에 있어 외가 쪽으로 공동체를 이루며 사는 이들이 늘고 있다.
원가족이 전폭적으로, 인간적으로 지원을 해주는 관계이기에 가능하다.
가부장제의 잔재를 끼고 앉아 자투리 권력행사를 하려는 아들 가진 쪽의 허세는
다양한 가정 비극을 낳고, 결국엔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되거나 가정이 깨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면 결핍된 모성애를 어떻게 하나?
아이가 커갈수록 모성은 진화해야 한다.
그만큼 본능은 무섭기 때문에 끝없이 성찰하고 반추하고 공부해야 한다.
잠깐 한눈 팔면 누구나 그 무서운 모성애 결핍, 충만한 원시본능에 머무를 수 있기 때문이다.
잠시도 가만 있지 않는 해민이를 양치 시키면서 나도 모르게 한 말,
‘양치 한 번 시키는 데도 왜 이렇게 엄마를 힘들게 하니!
딸 열 명 키우는 것보다 더 힘드니 엄마가 쫄딱 늙어버리겠어.
그렇다고 아들 키운 보람이 딸보다 더 있냐 하면 그것도 아니잖아!
넌 나중에 효도니 뭐니 그런 소리 하지 말고 결혼 하면 부인한테 딱 붙어서 잘 살아야 해, 알았어?’
딸 키우는 것에 비해 육체적으로 엄청나게 힘이 많이 드는 아들을 키우며 넋두리를 해댄다.
요런 넋두리 역시 원시본능이다.
지금의 사랑스런 모습이 충분히 삶의 보람이련만 거기서 또 얄팍한 다른 보람을 찾으니
바로 이게 못난 인간의 본능이지 싶다.
그래서 아들 가진 엄마는 더 똑똑해야 하고 더 깨어 있어야 하고…
아무튼 더 열심히 노력하며 살라고 아들이 주어진 거라 여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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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비꽃
아들 딸 모두 그부모의 인성교육이 중요하네여 ~`
부모가 우선 잘 살아야겟지여 본보기 이니까여 !
답글
사라
이 글 보니까 얼마전에 본 영화 <마더>가 생각나네요.
모성의 극단성과 이기적 모성애에 대해 할 얘기가 많은 영화였어요.
영화가 말하고자 했던 "원초적 모성애" 앞에서
우리가 경외하는 위대한 모성애는 마치 진실이 아닌 허구처럼 느껴지더군요.
고부갈등의 이면에는 며느리에 대한 시어머니의 모성애 결핍 보다는
자기 아들에 대한 이기적 모성애의 발로가 좀더 우세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하지만 분명한 건 아들 가진 엄마들이 더 깨어 있어야 한다는 것.
열린 의식을 가진 부모 밑에서 건강하게 자알 자란 녀석에게 우리딸 시집보내야 할텐데 말예여..^^
답글
또마
모성애과잉..과 모성애결핍..며느리를 볼 때는 시어머니에겐 모성애가 안 생길까요?
저도 한때는 시어머니랑 많이 투닥거렸고. 지금은 각자 영역을 지키고 살고 있으니..휴전상태입니다.
아마도 시간이 좀 더 지나서..어머니가 우리집에 와서 살게 되면요..전쟁이 다시 시작될지도..ㅎㅎ
해민이가 "부인한테 딱 붙어 살아"..이 말을 이해했을까요?ㅎㅎ
그러고 보니..난 울딸램을 키우면서..거의 안 해본거 같아요..너 키우다가 내가 쫄딱 늙겠다..하고..ㅎㅎ
아들과 딸은..진짜 좀 다른가 봐요...
답글
라일락
참 많은걸 생각 하게 하는 글이네요~~
나... 라는 존재가 있고 엄마 라는 위치도 존재도 있다고 느껴지기도 하고,,,
인간 이기에... 자식 보다 나자신이 더욱 강해져야 하기도 하고 희생해야할부분도 있어야 하고,,,
좌우간 ,,, 많은걸 느끼고 생각하게하고,,,
여러번 읽고 감니다~~
답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