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정원에서- 이혼 후의 만남

글쓴이 디토

등록일 2009-06-07 23:52

조회수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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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황망하게 떠나 보내고 두 달 후 이혼.
법원 가는 날 담담히 함께 점심 먹고

법원의 조정 시간이 매일 2 시 20분으로 정해져 있는 것에 신기해 하며

민이는 시간을 물으면 왜 항상 ‘두 시 이십 분’이라고 답을 했을까,

하는 의미 없는 얘길 서로 의미 있는 듯 나누기도 했다.

 

그리고 아이의 3주기가 되어가는 지금까지 띄엄띄엄 만나왔다.

최근엔 이제 인연이 다 했다는 생각을 갖고 만나지 않은 지 몇 달 째,

갑작스런 연락으로

다시 아무 일 없다는 듯 약속을 정했다.

이번엔 해민이와 함께……

놀이 치료 시작 후 불안해 하는 아이와 한 시도 떨어질 수 없어

늘 같이 다녀야 하는 상황이므로 이젠 내가 ‘홀몸’이 아닌 거다.

 

첫 만남에서 내 아이가 불편한 시선을 받을까 하는 경계심도 잠깐 스쳤지만

나 자신이 해민이에 대해 밝고 당당할 수 있기에 그런 맘은 씻어 버렸다.

해민이에겐 ‘민이 누나 아빠 만나러 가는 거야’라고 말해 두었더니

녀석이 나름대로 기대를 하는 것 같았다.

첨 만나서 해민이는 고개 숙여 인사를 하고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보더니

잠시 후 큰 소리로 ‘민이 누나 아빠!’하고 부르는 게 아닌가?

(거참 그건 지칭이지 호칭이 아녀…)

 

선유도 공원…

몸에 마비가 오기 시작했던 민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찾았던 그 곳…

생명이 다해 가는 아이를 데리고 거닐었던

그곳의 나무, 풀, 새, 모든 풍경이 박제된 듯

비현실적으로 보였던 곳.

민이를 보내고 이혼한 지 얼마 지나

다시 그 곳에 들러 둘이서 민이 얘기를 하며

한없이 눈물 흘렸던 그 곳.

왜 그 곳을 해민이와 함께 만나는 시점에서 다시 약속 장소로 정했는지

그의 의중을 묻지 않았다.

 

해민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선유도 공원 내

‘시간의 정원’(아…지금 생각하니 이름이 의미심장하군…)을 거닐고

정자 옆에 돗자리 깔고 과일 먹고

식당에서 밥 먹고 원두 커피 마시는 동안

해민이는 끝없이 달리며 종알대며

움직임을 멈추지 않았다.

 

장미 정원이 있는 드넓은 잔디밭

나무 그늘에 돗자리를 깔고 앉으니

아이는 비둘기를 쫓아 다니며 열광한다.

나중엔 신발도 벗어 버리고 풀밭을 뛰논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우리는

‘늙으니 아이 보조에 맞추기가 힘들다’는 말을 일상적으로 나누고 있었다.

축구를 하다 겹질린 양쪽 발목이 퉁퉁 부은 채

파스를 붙이고도 괜찮다며 유모차를 밀던 그는

아이에게 다정했고 흙을 만지는 아이 손이 더러워지는 것을 싫어했고

아이가 다치지 않을까 시선을 떼지 않았다.

 

내 머리에 각인된 풍경,

나무 그늘에서 바라본 푸른 잔디에

뛰노는 작은 아이,

이것은 다시 못 올 꿈 속 풍경인가?

 

내가 떠나 보낸 아이와

전 남편과

입양한 내 아이와

나.

이 기이한 인연이 한 자리에서 만나고 있었다.

 

집에 갈 시간, 주차장으로 와서 내 차에 해민이를 태우려 하니

집에 가기 싫은 아이가 갑자기 그의 차 문을 잡으며 외친다.

‘아빠 차 탈 거야!’

아이를 달래서 인사를 시키자 시무룩한 표정으로

‘사랑해요’라고 말하며 그의 입에 입맞춤까지 하였다.

 

아무리 잘 해주는 사람이라도 처음 만난 날 뽀뽀해 주는 일은

해민이 사전에 있을 수 없는 일이라 해도,

느닷없이 ‘아빠 차’라고 말한 것이 이상하기 짝이 없다 해도,

아이의 투명한 감성으로 잡아낸 합당한 이유는 있을 것이다.

 

그 이유를 알면서도 나약한 나는

순간 민이의 모습을 해민이에게서 읽고 있었다.

 

그가 해민이의 아빠가 될 수 없는 현실적 이유들은 수없이 많고

그도 나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지만

끊일 듯 이어지는 이 인연이 언제까지 갈지는

참으로 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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