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밤은 무섭게 바람이 불었습니다.
창으로 부는 바람 소리가 공포영화 속의 음향이었네요.
아침 일찍 내다본 바깥 풍경은 어둑한 회색 하늘 아래
나무들이 몸살 하듯 이리저리 뒤채고 있습니다.
어제는 해민이 놀이 치료를 마치고 여름 샌들을 사러 갔습니다.
하얀 색에 곰돌이 얼굴이 있는 샌들을 사서 신기니
걸을 때마다 삑삑 소리가 나는 앙증맞은 샌들을 신은 아이는
신이 나서 쫓아다닙니다.
해민이가 30개월 되기 전엔 아이의 신발을 차마 사주지 못했네요.
신발을 사주면 떠난다는 미신......
해민이의 첫 운동화, 샌들, 두 번째 운동화 모두 할머니가 사주셨지요.
이제 미신적인 두려움은 아이의 생후 30개월이 지나며 사라졌나 봅니다.
자꾸 민이와 연관해서 해민이를 바라보는 버릇은 참 오래 갈 것 같네요.
놀이 치료에서 해민이는 서서히 달라집니다.
어제는 놀이실에서 내가 신문을 꺼내 들고 읽자 아이는 불안한 듯
자꾸 엄마 주변에서 왔다 갔다 합니다.
‘엄마가 신문 보는 거 싫어?’하고 물으니
‘응’하고 말합니다.
신문을 치우고 아이에게 시선을 고정하자 안심한 듯
다시 이것저것 탐색하고 놉니다.
어제 처음으로 모래를 바닥에 던지거나
물건으로 이것저것 바닥을 치는 과격한 행동을 보인 것은
공격성 표출단계로 아이가 한 걸음 나아간 것이라 합니다.
그 다음에는 상호작용 놀이로 이어진다고 해요.
지금도 조금씩 교사와 소통하고 관심을 보이지만
아직은 자신이 없어 보입니다.
해민이를 데리고 여름 바지 하나 사고 신발 사서 신기고 하는
이런 작은 일상이 내겐 기적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잃어버린 시간을 순간순간 확인하는 것……
나약한 인간이기 때문이지요.
공선옥씨가 말한
‘우리의 인생에는 이전과 이후가 확연히 나누어지는 순간이 꼭 있다’는 걸
절실하게 느끼며 삽니다.
이제 미로처럼 보이던 삶이 고속도로처럼 쭉 뻗어 있습니다.
탄탄대로란 뜻이 아니라 분명한 목적지가 있다는 뜻입니다.
누군가에게로 끝없이 향하는 삶,
민이는 선함, 부드러움, 아름다움의 표징처럼 되었습니다.
또 어떤 분의 말처럼 ‘삶의 밑그림은 슬픔’이란 것도 이젠 분명히 압니다.
아무리 덧칠을 하려 해도, 도망가려 해도
기본을 망각하면 제자리 걸음이지요.
지금까지 노무현 전대통령 서거에 이토록 가슴 아픈 건
언론의 몇 마디 말만 가지고 그를 함부로 평가한 나 역시 가해자라는 자책,
그를 못 박으라고 소리친 잔인한 군중 속에 나도 끼어 있었다는 생각,
사실로 여겨진 것들 이면에 자리한 ‘진실’을 보지 못했던 내 까막눈,
이런 것에 대한 쓰라린 죄책감이 한몫 하고 있습니다.
애도의 과정은 파도 타기처럼 밀려왔다 밀려갔다 하며
끊임없이 털어놓고, 반복하고 되새겨야 하는 거지요.
아이와 함께 하는 자잘한 일상들이 정말 눈물의 모자이크처럼
웃음과 슬픔으로 새겨지나 봅니다.
한겨레 신문 상담실의 임경선씨 조언대로
이 슬픔에 ‘느린 안녕’을 고하렵니다.
슬로우 굿바이!






> 


최신
이전




















메이폴
답글
디토
라일락
이아침 싸아~ 한 바람을 느끼는 글 이네요..
모든게 함축된 " 느린 안녕" 이 제발 님의 소원대로 되었음 하는 바램 이네요~
따라서 모든게 잘될꺼야",, 하는 희망의 바람이 확 불기를,,,
답글
현이
답글
사라
어젯밤에 피디수첩 보다가 혈압으로 쓰러져 죽을뻔 했어요.
아직은 죽기 싫어서 결국은 채널을 돌려 버렸네요.
민주주의의 사망...정말 이 나라가 어찌 되려는 걸까요..T.T...
답글
일마레
답글
분꽃
보는 각도를 달리함으로써
그 사람이나 사물이 지닌 새로운
면을 아름다운 비밀을 찾아낼 수 있다.
우리들이 시들하게 생각하는 그저 그렇고
그런 사이라 할지라도 선입견에서 벗어나라.
맑고 따뜻한 열린 눈으로 바라본다면
시들한 관계의 뜰에 생기가 돌 것이다.
내 눈이 열리면 그 눈으로 보는 세상도
함께 열릴 것이다.
- 법정의《산방한담》중에서 -
답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