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제는 민이를 보낸 대관령에 처음으로 해민이와 함께 들렀다. 사별자 모임의 고마운 엄마들이 동행해 주어 편히 다녀올 수 있었다. 가장 좋은 계절 5월의 연 초록 수풀 때문인지 아니면 해민이가 들어서서 그랬는지 슬픔의 풍경은 마술처럼 환해졌다. 노란 꽃다지와 민들레 꽃, 봄빛을 받아 살아나는 푸른 숲이 한여름의 빽빽하고 짙은 숲의 빛깔과는 다른 보드라운 아름다움을 선사했다. 민이 누나 만난다고 아침부터 들떴던 해민이는 숲을 향해 소리 친다. ‘민이 누나! 어디 있어?’ ‘민이 누나, 안녕? 난 해민이야.’ ‘민이 누나, 사랑해, 또 만나!’ 작은 케이크에 큰 초를 하나 꽂고 해민이와 '하늘마음'모임 엄마들이 민이를 위한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 주었다. ‘민이 나무’라고 정해 놓았던 곳에 꽃다발을 놓으려고 경사 진 곳을 내려가 보았다. 엄마가 어디로 갈까 봐 불안 해서 울먹이는 해민이 손을 한쪽 손으로 잡아 주려니 많이 내려갈 수 없어서 결국 발끝이 닿는 곳에 꽃을 내려 놓았다. 겨울에 민이 아빠가 눈 쌓인 비탈을 미끄러지며 민이 나무까지 다가갈 때는 무척 멀어 보였는데 착시 현상인지, 아니면 부드러운 수풀에 가리워진 모습 때문이었는지 너무나 가까워 조금만 손을 뻗으면 닿을 듯했다. 어쩌면 이승과 저승의 거리도 그렇지 않을까? 우리가 점심 메뉴로 냉면을 먹을까, 만두를 먹을까 선택하는 것처럼 사소한 일상으로 삶과 죽음도 혼재하는 것인지 모른다. 엄마를 놓칠까 봐 불안해 하는 해민이의 손을 잡고 한 손엔 민이에게 줄 꽃다발을 들고 비탈에 안타까이 서 있는 것이 바로 삶의 모습이다. 죽음을 멀고 비현실적이라 생각하는 것, 그리고 저 세상으로 떠난 이와 이별하는 것을 돌이킬 수 없는 상실이라 생각하는 건 어쩌면 삶과 죽음의 거리를 너무 멀다 착각하고 있기 때문 아닌지. 집에 돌아와서 해민이와 나눈 대화, ‘해민아, 민이 누나 만났어?’ ‘응’ ‘누나가 어디 있었어?’ ‘저기 하늘에.’ ‘민이 누나가 뭐라고 했어?’ ‘이렇게 했어’ 하면서 손을 흔든다. 오늘, 가슴 아프게 노무현 전 대통령을 보내는 날이다. 가족도 아닌, 친지도 아닌 한 정치인을 보내며 이렇게 눈물 흘릴 수 있을까? 이렇게 한 시대 민주주의의 죽음을 알리며 좀더 큰 시대를 열어갈 것을 영원히 우리에게 새겨 주었다. 지금의 비루한 세력이 탁한 눈빛으로 두리번거리며 빛을 가리려 해도 꺼지지 않는 빛으로 그 분은 남을 것이다. 해민이와 같은 천진한 눈빛으로 보면 우리도 끊임없이 저 세상에 있는 이들을 만날 수 있을까? 삶과 죽음의 거리가 그리 멀지 않으며, 사랑하는 이의 죽음은 우리 가슴에 매일매일 부활한다는 것을 오늘은 사랑하는 민이와 노무현 전 대통령 영혼 앞에 간절히 기도한다. 오늘 이 땅에서 눈물 흘리며 애도했던 이들이 내일 저 하늘에서 다른 이의 눈물을 지켜볼 텐데 서로 다른 자리에 있지 않았음을 알게 될 텐데 우리가 너무 깊이 절망하지 않길 기도한다. |






> 


최신
이전




















메이폴
삶과 죽음의 거리... 찰나겠죠... 그러나 늘 죽음을 염두에 두고 살면 사는게 사는게 아니라
신은 우리에게 죽음에 대한 망각도 주셨겠죠.. 조만간 울 딸이 콩이한테 '좋은 언니'로 합격점을 받을지
선보이러 가겠습니다 ^^
답글
사라
우리가 삶과 죽음의 거리를 멀게 느끼는 건 만질 수 없기 때문이겠죠.
자주 잊고 살겠지만, 그래도 사랑했던 이들은 마음속에 살아 남아 있다고 믿어요.
딸 만나고 와서 좋으셨겠어요...풀꽃 향기가 그윽하게 전해져 옵니다.
답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