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마 한 번 했다가.....

글쓴이 누봉이

등록일 2009-04-29 06:34

조회수 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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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땋은 머리 늘어뜨리고 있던 열 여덟살짜리 새댁이 시집을 가서 가장 힘들었던게

시할머니까지 모시는 열명이 넘는 대가족의 밥상차리고 빨래하는 일이 아니라

머리 쪽찌는 일이었단다.

어린 새댁이 머리를 틀어올려 비녀로 쪽을 찌는게 힘들어 시어머니가 아침마다 쪽을 쪄 줬는데

털털하고 성질급한 시어머니가 며느리 쪽쪄주는게 귀찮아서 당시 시골마을을 돌던 야매 미용사에게

쌀한말과 며느리, 그리고 동갑이자 친구였던 딸을 데려 가버렸단다


50년대였던 당시에 빠마머리는 신여성의 상징이자 시골에선 볼 수 없는 헤어스타일이었는데

우리 할머니는 순전히 며느리 쪽쪄주는게 귀찮다는 이유로 며느리와 딸을 신여성으로 만들어버렸으니...

아무튼 동갑내기 딸과 며느리 머리를 빠글빠글 볶아서 집으로 돌아왔는데...


어린 며느리가 물동이 이고 나가는 것만 봐도 입이 벙그러지던 우리 할아버지..

빠글빠글 볶은 며느리 머리를 보고는 에잉! 하고 돌아앉아버렸단다

증조할머니는 ' 집안 망할 일'이라며 빠마의 총책임자였던 며느리 , 곧 우리 할머니를 쥐잡듯 잡았고

안그래도 조심스러운 시집살이에서 빠마 한번 했다가 분란이 일어난 걸 보고 어린 새댁은 수건을 둘러쓰고

쥐죽은듯 방안에만 있었는데...


실개천 건너편에 살던 새댁의 친정아버지가 이 불의의 사태에 대한 소문을 듣고 어렵다는 사돈댁에

( 그전엔 동네친구였던...) 건너와서 딸의 빠마머리를 보고는,,

' 나 죽어도 절대 친정에 오지말라' 는 엄명을 내리셨다나...


당시에 부모가 돌아가시면 머리를 풀고 곡을 해야 하는데 삼단같은 머리를 싹둑 잘라 뽀글뽀글 볶아버렸으니 우세도 이런 우세가 없다는게 새댁의 친정아버지 생각이었으니..

신랑은 군대가버려서 편들어줄 사람은 없지, 괜히 시어머니 명령에 따랐다가 (뭐 솔직히 본인도 해보고 싶었겠지) 온 집안에 빠마사태에 대한 난리가 났으니 새댁은 눈물만 찔금찔금 짤 수 밖에..


그렇게 몇날을 죄인처럼 공범인 시누이와 한방에서 꼼짝도 못하고 지냈는데,

빠마사태가 번개처럼 소문이 돌고 돌아 이웃 마을에 살던 시외삼촌께서 건너오셨더란다.

시외삼촌 즉, 시어머니의 친정오빠는 당시 명망높던 민의원이어서 그 어른의 말한마디는 곧

무게가 넘치고도 넘쳤는데.

민의원이었던 시외삼촌과 시아버지, 그리고 친정아버지 셋이 앉아 술 한잔을 하면서

시아버지와 친정아버지가 며느리의 빠마사태에 대한 성토를 울분에 차서 해대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민의원이었던 시외삼촌이 ' 거 , 참 질부 머리가 좋소. 국화꽃 피듯 몽실몽실하니 참말로 이쁘요'

라고 하셨다나.

시아버지와 친정아버지의 약간의 항의가 있었으나 시대와 풍속등에 대해 점잖게 말씀하시는 시외삼촌의

말씀에 나중엔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고

그 몇달 후 휴가를 나온 신랑이 그때까지 토라져 손주며느리를 쳐다도 보지 않던 증조할머니에게

온갖 애교를 동원해 마음을 풀어주셨다고 하니..


빠마 한번 했다가 날벼락을 맞았던 우리 엄마의 어설픈 신혼이야기다.


그날 이후로 이적지 우리 엄마는 빠마를 하고 사신다

시대를 앞서갔다기보다 순전히 귀차니즘에 의거한 시어머니의 결단이 우리 엄마를 신여성으로 만들었지만, 우리 엄마는 가끔 돌아가신 할머니를 그리워하며  성격은 털털했지만 인습에 그리 얽매이지 않았던

멋진 분이었다고 그리워하신다.

평생을 딸보다 며느리를 더 귀여워하고 의지하셨던 우리 할머니,

친정엄마보다 시어머니가 더 좋아, 남편보다 시어머니 때문에 살았다고 하던 우리 엄마.

그리고 그 구순하던 고부간이 우리 올케언니에게도 이어져 우리 엄마역시 예전에 우리 할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딸보다 며느리를 더 사랑하시는 것 같다.............질투가 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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