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 누워 있는 동안 가벼운 마음으로 읽은 공지영의 신간.
정말이지 병원에 누워 있는 동안 가볍게 읽기 딱 좋은 이 책은
공지영 그녀 자신도 가볍게 쓰기로 작정하고
한겨레 신문에 연재했던 에세이들을 모아 놓은 것이다.
사소하고 가벼운 이야기들만을 목적으로 최대한 가벼운 글쓰기를 소신처럼 지키며 연재하는 동안
그녀는 많은 사회적 현안들을 짐짓 외면하느라 오히려 마음이 무겁기도 했을 것이다.
광우병 소고기 파동과 촛불집회 조차도 그녀는 딸과의 대립이라는 사소한 에피소드처럼 넘기며
사회적 발언을 애써 자제하고 있는 것이다.
적어도 이 연재에서 그녀는 스스로 그렇게 약속했기 때문에 말이다.
작가로서의 소명의식을 배제하고
그녀가 가까운 지인들과 잔잔하고 소소하게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려준 이 책은,
어쩌면 딱히 기억할 만한 가치가 없는 것일지라 해도
내게 책값 만이천원의 기회비용이 전혀 아까운 것은 아니었다.
특히나 병원 침대에 무거운 몸과 마음으로 누워 있던 나로서는,
그녀 만큼이나 늘 깃털처럼 가벼워지고 싶은 나로서는
이 작고 소소한 삶의 조각들이 충분히 위로가 되었으니 말이다.
그녀의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배시시 미소짓게도 하고, 가슴을 먹먹하게도 하는 그녀의 감수성에 매료된다.
이 책은 그런 의미에서 내게
불현듯, 아주 오랜만에, 작가가 되고 싶었던 내 오래전 꿈을
가슴 저 밑바닥에서 꿈틀거리게 하기도 했다.
더이상 그녀의 책을 읽는게 두려워 질지도 모르겠다.
이룰 수 없는 꿈을 기억한다는 것은 고통일테니 말이다.
글을 쓰며 살아가는 그녀가 못내 부럽다.
글쓰기의 고통을 이해하는 것과 반비례하는 질투심을 느끼며
그렇게 이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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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운동의 갈대
작품 속에서의 글과 실제의 말이 일치하지 않는 사람, 공론의 장에서, 그것도 국회에서 티브이로 중계까지 되는 공개세미나의 석상에서, 자신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자신과 의견이 다른 사람들에 대하여 극심한 반감을 가지는 태도는 결코 성숙하지도, 타인들로부터 존경받지도 못할 자세라고 느낍니다.
저는 그 때 너무나 큰 충격과 실망을 하였기 때문에, 다른 것조차도 다 진실로 다가오지 않는 것이 사실입니다. 지금도 당시의 말과 태도, 얼굴 표정이 너무나 눈에 선합니다(특히 신경질적인 말투와 찌뿌린인상은 압권입니다).
당시했던 여러 말 중 일부를 그대로 옮기면 "아프리카에도 없는 사형제도가 우리나라에 있는 것이 정말 쪽팔리다",(솔직히 제 눈 앞에 있었다면 아프리카에 있는 나라로 이민가라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나는 뺑뺑이 세대라서 후진 중학교, 후진 고등학교를 나왔다"(제가 아는 작가 분은 작품에 적절한 한 단어를 찾기 위해서 한 달이 넘게 고생한 적이 있을 정도로, 대개의 작가들은 혼신의 힘을 다해 작품활동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말을 할 때는 그렇지 않은가 봅니다 - 오히려 글이라는 것은 여러 가지 과정을 통해서 정정이 가능하지만 말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더 신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단 1초라도 수 많은 그의 동문들이 느꼈을 실망감을 생각한다면 위와 같은 말을 할 수는 없다고 봅니다 - 그의 이름 석자만 들어도 대부분의 국민이 알 수 있는 공인이라면 언행에서 더욱 신중함을 기울어야함은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다고 봅니다).
답글
사라
그녀의 책을 읽어보면 그녀의 다분히 감정적이고 다혈질적인 성격을 느끼게 됩니다...이건 자신의 일상을 포장하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거고 실제로 그녀는 작품속에서 전혀 잘난체를 하지 않습니다..글과 말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주장에 대해서,,,전 그녀가 책 속에서 자신의 신념과 목적,이념을 강력하게 주장하는 걸 본 적이 거의 없습니다 ...<우행시>라는 작품을 통해 그녀는 지속적으로 사형수들을 방문하고 있고 그들을 가까이에서 접촉하며 사형제 폐지론쪽에 자신의 신념을 갖게 된 것 또한 잘못된 바는 아닙니다..저 역시 인간이 인간을 죽일 권리는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고, 대개의 범죄자들의 불우한 유년시절에 대한 깊은 동정심을 갖고 있습니다..다만 극악한 범죄에 의해 가족을 잃은 피해자의 심정이 되었을때 그들을 용서할 수 없다는 측면에서 사형제 폐지에 온전히 동의하지 못하는 우유부단함을 가지고 있죠.
그 방송을 봤다면 저도 그녀에게 실망을 했을지도 모르겠지만,,제가 그녀에게 갖는 호감은
사회적 발언을 하는 작가 공지영이기 때문인 것 보다는 상처받고 돌아온 내 누이 같은 살가움 때문입니다..그건 인생에 대해 좀더 성숙한 대화를 할 수 있을 만큼 비바람에 흔들려본 사람들만이 가질 수 있는 그런 성질의 동질감이죠....또한 여성이기에 가질 수 있는 동질감일테지요.
저도 때론 주는 것도 없이 싫은 사람도 있지만 누군가를 하나의 잣대로 평가하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박정희의 유신은 용서하지 않지만 그가 한국경제에 기여한 위대한 업적은 높이 평가하는 것처럼
사람들에게는 누구나 양면성이 있기 마련이니까요...하물며 님이 그녀에게 받았던 그 충격은
이미 숱한 정치인, 유명인들에게서 너무나 익히 보아온 그닥 특별할게 없는 장면일 뿐입니다,,적어도 제게는요...제가 탤런트로서의 유인촌과 정치인 유인촌에게서 받은 심한 이질감보다는 차라리 봐줄 만한 수준일런지도 모르죠...님이 그녀를 좋아해야 할 필요도 의무도 없지만, 그녀에게 갖는 깊은 불신과 반감에는 맹목적인 터부나 편견이 정녕 없는 걸까요?..40대 이후 남성들의 그녀에 대한 비판이 씁쓸한 것은 여성에 대한 여전한 억압과 편견의 잔재가 숨어있기 때문입니다..그들은 여전히 조신하고 순종적인 여자들에게 관대할테니 말이죠...청문회나 토론장에서 포커 페이스를 유지한채 대단한 평정심을 발휘하며 이성적인 행동을 하는 것은 남자나 여자 모두에게 참 어려운 일이죠...손석희가 좋은 평판을 얻는 것은 그의 침착성과 뛰어난 자제력 때문인데,,문제는 이런 사람이 그다지 많지 않다는 사실일 겁니다..많지 않다는 건, 그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뜻이겠죠...공지영은 책에서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작가라는 사회적 지위때문에 자신이 얻는 발언권에 대해서, 그리고 그것이 자기에게 주어지는 일종의 특권이며 권력이라는 사실에 대해서...그래서 좋기도 하고 부담스럽기도 한 심정을 토로했을 때 어리석은 나는 지면을 종횡무진할 수 있는 그녀의 특권이 그저 부럽다고만 느꼈습니다.
내가 공지영에게 느끼는 것은 사회적 발언을 하는 작가로서의 그녀 이전에 쉽게 흥분하고 쉽게 감동하는 엄마, 아줌마로서의 평범한 인간에 대한 호의입니다..이건 분명 제가 좋아하는 김훈이나 장하준에게 느끼는 경외감과는 다른 감정이지만, 어떤 감정이 더 우위의 것이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습니다.
아마 그 방송을 봤다면 저는 그녀의 흥분하는 모습을 보며 글에서 느낀 그녀의 성격을 확인하는 반가움이 앞섰을지도 모르겠습니다...단언하건데, 그녀가 주도면밀하게 침착하고 이지적인 부류의 인간이었다면 제가 그녀의 책을 사는데 아낌없이 지갑을 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그건 제가 그녀의 책에서 지식을 얻으려는 목적이 없는 것과 일치합니다...하지만 우리에게 공통점이 있다면 결국은 한 인간에 대한 관심이겠죠...호감도 반감도 결국은 반증일테죠..^^
청운동의 갈대
누봉이
답글
사라
일마레
이루기 어렵기 때문에 꿈인게 아닌가 싶어요...그만큼 꿈은 높고 넓고 커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작가로서의 꿈을 계속 꾸셨으면 좋겠네요..^^
답글
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