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림에 통 관심이 없는 나. 살림도구들도 초라하기 짝이 없습니다. 결혼할 때 산 밥그릇, 국그릇 아직 고대로 쓰고, 시집올 때 샀던 냄비며 주전자도 아직 그대로 쓰고 있습니다.
간혹 보험을 들 때, 선물로 밥그릇 국그릇 셋트로 받으면 바꿔 쓰기도 해봤는데, 살림 솜씨 시원찮으니 죄다 짝이 안 맞습니다. 밥 그릇 깨먹고 국그릇 깨먹고 짝지 없는 것들이 한가득이지요.
다행히 스텐레스 좋아하는 울 엄마 덕에 결혼할 때 산 냄비가 죄다 스뎅이었던 것이 다행이었을까요? 십년 가까이 썼건만 손잡이만 좀 눌었지 쓸만은 합니다. 프라이팬은 몇번 바꾸면서 썼지만, 우리 집엔 예쁜 쟁반도 없습니다. 식당 개업할 때 받아온 쟁반, 00식당이라고 써진 그런걸 씁니다.
국자와 뒤집개는 스뎅으로 튼튼하니 고대로 잘 쓰고 있고, 주걱은 밥솥 바꾸면서 딸려온 것들로 사용합니다. 그래도 밥솥 두세번 바꿨는데, 새 주걱이 아직 두 세개나 대기하고 있습니다. 알뜰한 것인지 궁상인것인지 저도 모르겠습니다.
커피 좋아하는 나. 다행히 커피잔은 좀 있습니다. 마트 갈때 하나씩 슬쩍 집어오기도 하고 커피 좋아한다고 했더니 선물로도 몇개씩 들어오더군요. 뭐 고백하자면, 사실 울 애가 유치원에서 받아온 유치한 커피잔도 있고 맥심이나 글자가 박힌 사은품 잔도 있습니다.
아무튼, 이런 부엌 사정상 손님이 온다고 하면 좀 걱정이 되긴 합니다. 우리 가족이야 워낙 오랜 전통?이라 익숙해질대로 익숙해져 있는데, 손님들은 이런 궁상맞고 조잡한 식기구들을 보며 '부인이 많이 바쁜가? 취향이 독특한가?' 오해하기 좋기 때문이지요. 특히 남편쪽 손님들이 올 때면, 참 난감해집니다.
안주를 담아간 접시가 하필이면 곰돌이 푸가 그려진 접시였던 날. 맥주를 따르던 잔은 *호프집 로고가 왜 그렇게 선명하던지. 향커피를 탔는데 커피잔 수가 모자라 아이 유치원에서 받아온 유치한 잔과 맥심로고가 찍힌 잔까지 다 꺼내고. 그날 남편 보기 정말 미안했습니다.
어쩌다 한번 올 손님때문에 잔이며 접시며 커피잔까지 다 갖추고 살아야 할 이유가 없다, 고 믿고 살았던 나. 내가 바보 되는 건 괜찮은데 나때문에 가족들이 부끄러워지는 건 '아니다'싶은 마음이 들었지요.
남편이 갈치를 유난히 좋아하는 걸 아는 시어머니는, 자갈치에서 갈치를 궤짝으로 사서 손질해서 우리에게 주십니다. 몸통부분 통통하게 살 오른 갈치로만 장만했다면서 큰 통 가득 담긴 갈치를 내밀 면서, "생선 굽는 팬 있제? 거기다 소금 살살 뿌리가, 아범 멕이그라." 하시는데.
입이 안 떨어지더군요. 양면팬이 있을 턱이 없지요. 사야겠다고 맘먹고 홈쇼핑 방송을 노려본 적은 많지만, 어쩐지 꼭 필요하지 않은 것 같아서 수화기를 들었다 놓았다 하다가 시간이 다 된 김에 포기하고 말았었지요. 그래하여 이런저런 이유로 우리집 식기구들은 참으로 초라하고 오래되고 온갖 것이 없는 오합지졸들입니다.
명장도 아니면서 오합지졸들 끌고 음식을 하니, 참 그맛도 기막히겠지요? 붓 좋다고 명필은 아니지만.
어쨌거나 그래서 요즘은 여유가 생길 때마다 그릇이나 냄비 같은 걸 하나씩 바꾸고 있습니다. 얼마전엔 냄비를 바꿨습니다. 집에 있던 지저분하고 오래된 것들을 싹 버리고 두 개를 새것으로 구입했습니다. 두 개면 충분할 것 같아서 일단 두 개만 구입한거지요.
처음 써보는 강화유리 냄비를 사 놓고 보니, 그 자태가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부엌이 확 살아나는 것 같은 저 자태. 첫 요리를 뭘로 할까 고민을 하다 특별한 김치찌개?를 끓였지요. 어랏, 그런데 물의 양이 좀 많았던건지, 냄비를 타고 넘치는 국물들. 뭐 이것도 특별한 불상사는 아닌데, 남편이 너무 심하게 화를 냅니다.
등을 돌리고 설거지를 하면서말 한마디 안 합니다. "화난나? 에이~머 그걸로 삐지고 그라노~" 발음을 최대한 부드럽게 했는데도 등을 딱 돌리고 쳐다도 안 보네요. 아니, 새 냄비라도 그렇지. 원래 음식하다보면 좀 넘치기도 하고 좀 눌기도 하고 그런거다, 말이 나오려고 했지만. 꾹 참았습니다.
남편 성격상 새 냄비엔 그만한 정성?이 곁들여져야 한다고 믿을테니. 그렇지만 나도 섭섭은 합니다. 그깟 냄비, 새냄비 쯤이 십년지기 마누라보다 더 중하단겁니까? 나도 살짝 삐져서 컴터퓨 앞에서 할일 없이 좀 앉아 있었습니다. 에휴, 사는 게 뭔지, 그래도 마음이나 몸이 더 넓은 내가 참아줘야겠다 싶어서 살짝 나가봤더니. 깔끔쟁이 벌써 가스렌지며 냄비 주변 싹 닦아 놓았더군요.
새냄비 하나로 이런 일이 생기는데. 나, 좀 착하고 여성스럽게 변해보고자 식기 재정비를 하려던 계획을 바꿔야 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뭐 하나 바꾸고 나면 새것인 그것 때문에 남편이 나에게 얼마나 스트레스를 줄지. 그릇은 그릇인거고 냄비는 냄비인건데.
오합지졸이래도 오랜 벗들인데, 버리지 말고 생이 끝나는 날까지 그냥 동고동락해버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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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
난 신혼때 예쁜 그릇에 대한 관심이 좀 심했었어...남편 출근하고 나면 잡지에 나온 그릇집 찾아 과천으로 홍대쪽으로 혼자 싸댕기곤 했으니까..넘 비싼 접시도 몇 개 샀었는데 그런 생활이 이어졌다면 가정경제에 파탄이 왔을거야...사회생활 다시 시작한지 벌써 5년째...한 3년은 정말 신명나게 일했던 거 같아..경제적 인간,사회적 인간으로서의 그 뿌듯함에 살림에 대한 관심은 모두 날아가버렸지..근데 이제 지쳤나부당..불경기때마다 매너리즘에 빠져..요즘은 다 때려치고 다시 살림만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자주 들거든..아마 난 전업주부로 다시 살게 되면 신혼때 만큼 철딱서니 없을 정도는 아니지만 예쁜 그릇에 대한 관심이 다시 시작될거야...손님접대를 위해서라기 보다 그냥 나 혼자 차한잔을 마시더라도, 내 식구들과 딸기 한 접시를 먹더라도 예쁜 그릇에 담으면 기분이 좋더라구..꼭 세트를 구입할 필요도 없고 그냥 쇼핑하다 예쁜 머그잔 하나씩 사서 좋아하는 커피 즐기렴...그리고 냄비나 후라이팬 세트는 홈쇼핑 이용해도 괜찮은거 같아..충동구매와는 거리가 먼 나도 세번 정도 홈쇼핑 이용했는데 10개월씩 할부로 끊어도 수수료 한푼 안붙으니까 그게 젤 맘에 들더라...눈팅만 하고 가려다 잔소리 남기고 간당..^^
답글
쿨한여자
사는 모습을 보면..
저랑똑같은데요..뭐..
남편이 좀 새것 제품에 애착을 부렸나봐요..
저두 결혼 12년차지만..그릇이며 냄비들 아직까지 스탠으로 잘 부비고 산답니다..
태우면 열심히 까칠한 쇠쑤세미로 팍팍 밀어 붙어면서 말이죠..
다음부턴..
남편쪽 손님들 오면..종이컵 내서 주세요..
전요..없는 잔 여기저기 안찾고 그냥 종이컵으로 줘요..
나중에 씻기도 불편한데요..우리 옛것이 더 좋은것이여 하면서 잘 살아 보자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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