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작된 현모양처 - 너희가 신사임당을 아느냐

글쓴이 메이폴

등록일 2009-03-02 14:48

조회수 2,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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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국민에게 공통적으로 애용되는 물건으로 화폐만한 것이 어디 있을까.

돈만큼 국민 모두에게 환영받는 물건이 어디 있을까. 화폐에 들어있는 그림이나 상징은 그래서

굉장히 ‘의미심장한 권력’을 갖는다.

그 권력은 화폐를 사용하는 이들에게 위압적인 것이 아니면 좋을 것이다.

또 사용자가 선한 에너지를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 이미 세종대왕, 퇴계, 율곡, 이순신이

그 권력을 가졌다. 모두 조선왕조의 인물들이고, 남자다.

세종대왕이야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으니 시비 걸 일은 없다.

그러나 퇴계나 율곡은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무슨 메시지를 주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군신유의(君臣有義)?, 부부유별(夫婦有別)?

2009년 5만원 10만원 고액권이 발행될 예정이란다.

한국은행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화폐에 들어갈 여성을 하나 넣기로 했는데 신사임당으로 거의 결정이

되어가는 모양이다. 이에 대한 여성계의 반발이 만만치 않다.

21세기에 가부장제의 혀끝에 착착 휘감기는 현모양처를 들이대?

그러나 신사임당을 현모양처로 몰고 가는 것은 교활하고 비겁한 가부장제다.

가부장제는 신사임당에 대해 눈 감고 아웅하고 있다. 너희가 진정 신사임당을 아느냐? 따져 묻고 싶다.

신사임당(1504-1551)의 아버지 신명화는 서울에 살았지만 할아버지 신숙권은 영월군수였다.

신명화는 강릉의 이씨를 아내로 맞았는데 이씨 부인이 외동딸이어서 친정을 떠날 형편이 아니었으므로

자신은 서울과 강릉을 오가며 아내가 아이들을(신사임당을 비롯한 다섯 딸) 외가에서 기르도록 했다.

신명화와 이씨 부인은 다섯 딸 중 재주가 뛰어난 둘째 인선(仁善 /사임당 師任堂은 결혼 전

중국 주나라 문왕의 어머니 태임(太任)을 흠모하여 스스로 만들었다는 별호)을 곁에 두고 싶어 해,

서울에 사는 이원수와 혼인을 시키고도 강릉에 머물도록 했다.

신사임당이 서울에 사는 시어머니 홍씨를 처음 상면한 것은 결혼 후 삼년 째 되던 해(1525년)였고,

강릉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다가 파주 율곡리, 평창군 백옥포리 등을 거쳐 서울 시집으로 온전히

들어간 것은 결혼 후 20년이 되던 해(1541년/ 38세), 7남매 중 6남매를 낳고나서 였다.

신사임당은 결혼(1522년/ 19세) 후 21세(1524년)부터 39세(1542년)까지 18년에 걸쳐 7남매(4남3녀)를

낳았다. 7남매 중 다섯 번째로 태어난 3남 율곡은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13살 되던 해에 진사초시에

합격하고 이후에도 아홉 번의 시험에서 장원급제를 하여 천재성을 드러내었다.

그러나 남편 이원수는 하는 일 없이 놀다가 그의 나이 50세(1550년/ 신사임당 47세)가 되어서야

녹봉조차 받지 못하는 하위직급인 수운판관(세금으로 걷은 곡식을 나르는 배를 관리함.

종5품 무록관(無祿官))을 맡았을 뿐이다.

그런데 <동계만록>(東溪漫錄)을 통해 전해져 오는 신사임당부부의 대화를 보자면, 이원수의 반복되는 질문이 예사롭지 않다.

신사임당: “내가 죽은 뒤에 당신은 다시 장가들지 말아요. 우리가 7남매나 두었으니까 더 구할 것이 없지 않습니까. 그러니 <예기>의 교훈을 어기지 마세요.”


이원수: “공자가 아내를 내보낸 것은 무슨 예법이오?”


신사임당: “공자가 노나라 소공 때에 난리를 만나 제나라 이계라는 곳으로 피난을 갔는데 그 부인이 따라가지 않고 바로 송나라로 갔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공자가 그 부인과 동거하지 않았다 뿐이지 아주 내쫓았다는 기록은 없어요.”


이원수: “증자가 부인을 내쫓은 것은 무슨 까닭이오?”


신사임당: “증자의 부친이 찐 배를 좋아했는데, 그 부인이 배를 잘못 쪄서 부모 공양하는 도리에 어김이 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내보냈답니다. 그러나 증자도 한번 혼인한 예의를 존중해서 다시 새장가를 들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이원수: “주자의 집안 예법에는 이 같은 일이 없소?”


신사임당: “주자가 47살 때에 부인 유씨가 죽고, 맏아들 숙은 아직 장가들지 않아 살림을 할 사람이 없었건마는 주자는 다시 장가들지 않았어요.”

이원수의 얄궂고 속보이는 질문에 신사임당은 얼음처럼 투명한 다독임을 하지만, 언제부터였을까.

이원수는 자기 아들보다 더 어린 주막집 여자 권씨를 첩으로 삼았다.

신사임당이 도대체 이것을 감당할 수 있었을까?

그녀는 7남매를 낳고 없는 시집살림 속에서 아이들을 반듯하게 키우기 위해 갖은 애를 썼다.

큰 딸 매창은 시, 서, 화에 능했으며(기생 매창은 그 후의 인물) 막내아들 우는 시, 서, 화, 금(琴)에 능해

사절(四絶)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사임당의 작품으로 남아 있는 그림들은 대개가 처녀 적의 것이고 시는 주로 멀리 떨어져 있는 부모를

그리워 하는 것들이다.

결혼 후 아이들을 기르면서 그녀는 마음껏 자기의 예술혼을 불태울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랬던 그녀에게 남편 이원수의 애정행각은 청천벽력과 같은 것이었을 것이다.

아내의 교양이나 예술혼을 따라가지 못했던 남편에게 신사임당은 애당초 존경심 따위는 품지 못하고 살았을 지도 모른다.

물론 이원수도 그런 아내가 버거웠던 차에 젊고 만만한 주막집 처자에게서 생의 환희를 느끼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자식의 교육이나 집안의 경제에 별 도움을 주지 못했던 사람이지만 아이들의 아버지로,

아내의 남편으로 있어야 할 자리를 떠나버린 그에게 신사임당이 느꼈을 배신감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크지 않았을까? 예쁘고 싱싱한 첩에게 폭 빠져 있는 남편이 예전의 정을 나누던 남편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가질 수 있었을까?

그녀는 아이들을 모두 남겨두고 수백리 길을 떠나 금강산으로 들어갔다. 감수성이 남달랐을 그녀가 그 먼 길을 오고가며 길 위에 흩뿌렸을 눈물은 얼마나 되었을 건가? 존경까지는 하지 않았지만 자기편으로 남아 있으리라고 믿었던 남편이 어느 날 다른 여자를 더욱 아끼고 그녀의 편에 서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의 배신감. 그리고 자신보다 20년이나 더 젊은 연적에게 몸과 마음을 빼앗기고 있는 남편을 어떠한 방법으로도 되돌릴 수 없을 것이라는 절망감...

그러나 만신창이가 된 자신의 처지와는 달리 남편은 젊은 여자를 새로운 파트너로 맞아 들였지만

사회로부터 도덕적 비난도 받지 않는다.

후세의 여인들처럼 위자료를 받고 이혼을 함으로써 관계를 청산할 수도 없다.

신사임당은 한없이 불공정한 게임의 법칙에서 헤어날 수 없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고 또 한탄하며

 마음을 추스르다가 어쩔 수 없이 귀가를 해야 했을 것이다.

그녀가 금강산에서 얼마나 머물렀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

미루어 보자면 그녀는 금강산에서 돌아온 지 얼마 안 되어 가슴에 입은 상처와 이사로 인한 과로까지

 겹쳐 48세라는 많지 않은 나이에 사망(1551년)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아내의 간곡한 당부의 말에도 불구하고 이원수는 첩으로 거느리고 있던 주막집 처자 권씨를 아내로 맞아 들인다.

신사임당이 사망하던 당시 큰 아들 선은 28세, 셋째 아들 율곡은 16세, 막내아들 우는 10세였다.

신사임당과 달리 권씨는 술을 무척 좋아해서 새벽부터 술을 마신 뒤 자리에서 일어났고

조금만 비위에 거슬리는 일이 있으면 빈 항아리에 머리를 박고 울어대거나 끈으로 자살 소동을 벌이기도 했다고 한다.

당연히 신사임당의 자녀들과 권씨는 사이가 좋지 않았는데 아들들은 아버지에게 울면서 가정의 화합을

간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전의 화목을 기대할 수 없게 되자 율곡은 어머니의 3년 상을 마치고 19세가 되던 해,

형과 아버지에게 편지를 남기고 가출한다.

율곡은 강릉 외가로 갔다가 금강산으로 들어가 불교에 입적하여 의암(義庵)이라는 법명을 받고 일 년 후

다시 속세로 돌아온다.

어머니의 죽음, 아버지의 재혼, 집안의 불화가 율곡에게 얼마나 큰 고통을 주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시앗을 보면 돌부처도 돌아앉는다고 했다.

젊은 첩을 끼고 놀았던 이원수는 신사임당에게 양처가 될 환경을 허락하지 않았다.

신사임당 역시 그런 남편에게 양처로 남아 있으려 하지 않았다.

신사임당은 현모이기는 하였으되 자기 자신을 모두 희생해야 하는 현모였다.

▲ 고은광순(한의사)  

그런 신사임당을 '뛰어난 예술가였으며 이상적인 어머니상과 아내상을 가졌던 현모양처'라고 포장하지 마라. 혼인 후에는 자기의 예술혼을 제대로 불태워 보지도 못하고, 7남매를 가르치며 넉넉지 못한 살림살이에 허덕이다가 그렇게 피를 토하고 죽은 신사임당을 '현모양처'이며 '뛰어난 예술가'였다고 포장하여 화폐에 새겨 넣는 것은 그녀를 두 번 죽이는 일이다. 그녀를 심하게 욕보이는 일이다.

대한민국 남성들에게 현부양부(賢父良夫)가 명실상부한 최고의 가치로 인정되고 실천되는 날이 온다면, 현모양처라고 거짓 포장된 신사임당의 모습이 화폐에 올라도 괜찮겠다.

혹은 여성의 재능과 예술혼을 인정하지 못하고 꽃피우지 못하게 하는 사회적 이데올로기나 시스템이란 얼마나 사악한 것인가를 우리 사회가 상식으로 받아들여, 자신의 정체성을 부정해야 비로소 가능한 현모양처를 여성의 덕이라고 거짓 포장한 교과서나 어린이 위인전이 모두 수정되는 날, 그런 날이 온다면, 신사임당이 화폐에 올라도 괜찮겠다.


- 고은광순 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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