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일곱살에 화투의 세계에 입문했다

글쓴이 누봉이

등록일 2009-02-01 22:26

조회수 2,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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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할아버지가 두 삼촌과 함께 고향을 떠나 흘러흘러 정착하게 된곳은 처음엔 충청도 시골이었다.

어찌어찌 고향 일가붙이가  소작을 소개해서 경상도로부터 머나먼 그곳까지 가게 되었고, 그곳에 정착하자마자 할머니는 오빠와 나를 불러들였다.

오빠는 모르겠지만, 나는 확실히 기쁨조로 불려간 것 같았다.

오빠는 학교에 가고 두 삼촌과 할아버지가 논에 일하러 가고나면, 할머니는 나달나달 구멍이 뚫린 삼촌의 '난닝구'에 뽀뿌링 치마를 걸치고 화투판을 끌어다 재수떼기로 하루를 열었다.

그리고는 어린 나를 데리고 민화투를 가르쳤다

그런면에서 영특했던 나는 할머니와의 민화투를 제법 즐기게 되었고 나중엔 성냥개비 하나에 눈이 벌개져서 성냥개비를 다 잃고나면 화투판을 엎어버리는 패륜까지 저지를 정도가 되었다...


당시 할머니는 어린 손녀와 화투치는게 무슨 재미가 있었겠는가?

다만 고사리 손에 열개의 화투패를 다 잡지 못해서 두 손으로 잡고 있다가 칠때가 되면 모조리 엎어놓고

청단했다! 홍단했다! 기쁨에 넘쳐 길길이 뛰던 조그만 손녀가 귀여워서 그랬을것이다.


그 다음해 할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시게 되었다. 내가 국민학교 일학년때 일이었다

죽음이 뭔지 몰랐던 나는 동네 아줌마들이 우르르 몰려와 일을 하는 바람에 쫒겨나 뒷마당에서 또래 여자애들과고무줄 놀이를 하며 놀았다.


당시엔 전화가 없던때이고 교통사정도 좋지 않았다.

전보로 할아버지의 사망소식을 아버지와 삼촌과 고모들에게 띄우고 나서 첫날 밤의 상청엔 할머니 혼자 있었다.

왜 인지, 그때 오빠도 두 삼촌도 보이지 않고 할머니 혼자 머리를 풀고 병풍앞에 하염없이 앉아있었는데

심심해진 나는 할머니에게 화투를 치자고 졸랐다.


조선에 없는 손녀딸에게 어떤 거절도 하지 못했던 할머니는 화투판을 끌어다 나랑 민화투를 쳤다.

얼마나 길게 쳤는지, 내가 성냥개비를 땄는지 잃었는지는 기억에 없는데,

병풍 앞에서 머리를 풀고있던 할머니와 민화투를 쳤다는 기억은 지금까지 남아있다.

그때 우리 할머니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다음날 엎어지듯 달려와 병풍을 밀어제끼고 관뚜껑을 열고 할아버지의 시신을 안고 오래오래 통곡하던 아버지를 충격적으로 바라본 기억도 단편적으로 남아있다

아버지의 눈물도 처음봤고 입에 쌀을 물고 베옷을 입은채 관속에 단정히 누워있던 할아버지의 시신도 처음으로 봤다.

할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고 오래지 않아 할머니와 두 삼촌은 큰고모가 있던 도시로 이사를 갔고, 그 전에 나와 오빠는 부모님 품으로 돌아갔다.

오빠는 고등학교 진학을 위해, 난 고모에게 의탁하는 할머니 새생활에 방해되지 않도록 하는 조치였던 듯 싶다.

아마 오빠가 먼저 부모님께 돌아가고 난 얼마간 더 할머니와 함께 생활하다가 돌아간 것 같았는데

나를 버스에 태워놓고 부모님이 계신 곳까지 안전하게 갈 수 있도록 부탁에 부탁을 거듭하던 할머니와

겨우 여덟살이던 내가 옥수수 반개를 손에들고 창을 마주하고 엉엉 울었던 기억은 있다.


둘째 삼촌이 버스 터미널로 날 데리러 와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 긴시간을 온통 울면서 딸꾹질을 하면서 갔다.

할머니와의 헤어짐이 너무 슬퍼서,

부모님과의 재회가 기뻤다는 기억보다는 꿈에서 할머니와 그 시골이 자주 보였고, 몇달 후인가 나를 보러 오신 할머니와 얼싸안고 또 마구 울었던 것은 아직까지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있다.

그 이후 다시 할머니와 살게 되었지만 (역시 기쁨조로 뽑혀서) 그 날 이후 난 한번도 민화투를 쳐본적이 없다.


아주 오랜 후 고스톱을 금방 마스터 하게 된것은 어릴적 민화투로 기초가 잡혀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래도 난, 고스톱을 즐기지 않는다.

모르겠다

할머니와 치던 민화투가 그당시 내겐 가장 즐거운 기억으로 날 사로잡고 있으니, 아마 그것때문은 아닌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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