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의 아버님은 경남 통영의 어촌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당시 모든 어촌의 생활환경이 어려웠듯이 저희 아버님의 가정또한 많이 많이 어려웠습니다 낮에는 개벌에서 조개를 잡고 밤에는 다른사람의 집의 밭에서 일을 하셨다네요.
그러던중 저희 아버지의 나이가 초등학교때정도 되었을때 어머님이 돌아가셨답니다. 그때부터 아버지는 부엌일까지 함께하셨다고하네요 그리고 얼마되지않아서 다시 새어머님이 들어온신후 다시 아버지는 일을 시작하셔야했는데. 새로오신 어머님이 살림에는 영 관심이 없었셨다네요 그래서 어린 아버지가 모든 부엌일까지 함께하셨다네요. 그리고 얼마되지않아서 새로오신 어머님이 여자아기를 낳고 얼마되지않아서 갑짜기 돌아가셨다네요 그래서 이제 갓 돌을 지난 여동생을 젖동냥을 하면서 일하기를 얼마지나지않아서
저희 할아버님이 다시 장가를 가셨서.. 아기두명이 더 태어났습니다..
그렇게 아버지는 배다른 여동생 3명 아니네요 나중에는 할머님이 한분 더 계셨다네요 그래서 아버지는 총 4명의 여동생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면서 살았습니다.
모든것을 자기스스로 해야하기에 그리고 여동생을 키우기위해서 무지 고생하셨다네요
보통 이런일이 있으면 주위에서 말들이 많잖아요
아버지는 그때부터 말이 없어졌다고합니다. 어떤 말보다 행동이 중요했다네요!!!
처음으로 은행에 대출하여 배를 구입후 처음 1년동안은 정말 고기도 많이 잡히고 좋았다네요
그시절 아버지는 어떤사람들보다 책임감과 성실함이 다른사람들의 모범이 되었다네요
그리고 그시절 저의 어머님과 결혼하셨습니다.
그런데 갑짜기 태풍으로 배가 파손되어서 결국 모든 빛을 아버님혼자서 감당하셨다네요
그리고 아버지는 원래의 고향이 통영에서 일자리를 구해 지금의 삼천포로 옮기셨답니다
그당시 저희에게는 나이어린 고모들3명에 삼촌1명 그리고 엄마 그리고 저희 언니들 2명까지 정말 대식구의 생계가 아버지의 손에 걸려있었답니다
아버지는 삼천포에서 어떤일이든지 가리지않고 열심히하셨답니다. 그후 어느정도 자리를 잡고 저희들 가족중 삼촌 그리고 고모들은 시집/장가를 떠나고 우리에게는 여자형제5명에 남동생 1명의 대가족이 되었답니다
혼자서 이렇게 인생의 90%이상을 고독하게 가족을 위해서 스스로 희생하면서 살아오신 우리아버님
이제 조금 편안할려고하니깐 그만 뇌종증으로 고생하시다가 작년에 저희들 곁을 영원히 떠났습니다
너무나도 아버님 인생을 생각하면 바로 고독이라는 단어가 떠오릅니다
혼자서 모든일을 감당하시면서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시는 우리시대의 아버지의 바로 그모습 고독
이제 모든 걱정이랑 벗어버리시고 아버님 편안하게 잘쉬세요!!
그리고 아빠 막내딸이 아빠 무지무지 사랑한다는거알죠 너무 보고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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