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애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곧바로 작은 사무실에 취업을 하게 되었다.
사장은 인상이 서글서글하니 좋고 누구에게나 친절하게 대해서
거래처 사람들에게 사람좋다는 정평이 나있던 사람이었다.
영애도 그런 그가 싫지 않았고 그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연인관계로 발전하게 되었다.
사장을 사귀면 사귈수록 겉만 번드르하지 내실은 형편없음을 알게 되었지만
연애경험이 전무한 영애로서는 그상황을 어떻게 해결해야할지 알 길이 없었다.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영애는 분명히 뭔가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으면서도
어찌해야할지를 몰라 사장이 이끄는대로 따라가다가 결혼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사장은 좀 이상한 가족구조를 가지고 있었는데,
전라도에 친부모가 있고, 경상도에 양모가 또 한분 더 계셨다.
그 양모는 사장이 사업을 하기 위해 경상도로 처음 내려왔을때
하숙을 치던 하숙집 주인이었다.
하숙집 주인 여자는 과부였는데,(그때가 아마..오십 중반정도 였을거다.)
싹싹하고 아들뻘 되는 남자가 "어머니 어머니" 하면서 잘도 따르니
"잘됐다~ 너 내아들하자..."이렇게해서 둘은 양부모 관계를 맺게 되었다고 한다.
영애는 결혼과 동시에 두명의 시어머님이 생겼고, 진짜 시어머님은 전라도에 계셔서
일년에 얼굴 한두번 볼까말까였고, 같이 살기는 양시어머님과 함께 신혼살림을 차려야했다.
양시어머님은 성격이 칼칼하고 까탈스러운 사람이라서
어지간해서는 그 비위를 맞추고 살기 힘들다고 주위사람들이 만류했지만
어찌..인연이 되려고 그랬는지 ...우여곡절끝에 양시어머님과 함께 살게 되었다.
사장..그러니까 이제 남편은 결혼을 하면서 사업을 무리하게 확장하기 시작하더니
결국 영애와 결혼 사년차 접어들 시점에 부도를 내고 잠적을 해버렸다.
그때 영애는 연연생의 꼬물거리는 아들,딸이 있었고 남편은 편지 한장 남기지 않고
자식과 아내를 버리고 떠나버렸다.
살길이 막막해진 영애는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남편을 넋놓고 기다릴수만은 없었기에
양어머니가 하시는 쌀장사를 거들게 되었다.
남편이라는 끈도 없어진 마당에... 양어머니와 같이 살아야할 아무런 이유가 없었지만
생계를 위해 영애는 생판 남인 양어머니와 한집생활을 계속 이어가야만 했다.
양어머니는 무척이나 까탈스러운 사람이라 그 비위를 맞추는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양어머니의 남편 그러니까 양시아버님의 제사를 지내기 위해 영애는 갓난쟁이를 업고
부엌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곤로 위에 생선을 굽고 있었는데
생선에 소금간이 덜 배여서 뒤집을때 생선이 조금 으스러졌다고 한다.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양어머니는 뒤집개를 뺏아들고 생선을 짓이겨 생선을 몽땅
못쓰게 만들어버렸다고 한다.
양어머니는 이런 사람이었다. 못돼고 앙칼지고 자기기준에 맞지 않으면 참지를 못하는...
하지만 양어머니 밑에서 쌀가게라도 돕고 있으니 애들 먹이고 사는거지, 그렇지 않고선
도무지 엄두가 나지 않아 영애는 나갈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계속 당하고 살아야했다.
그렇게 십년이란 세월을 죽은듯 엎드려 살고 있는데...
남편이 홀연히 나타나서
지난 과거를 용서해 달라고 다시 받아달라고 매달렸다.
영애는 아이들을 생각해서... 애비 없는 자식으로 키우는것보다는 낫겠지 하는 생각으로
다시 남편을 받아들였다.
개과천선했다고, 믿어달라고 그렇게 매달리던 남편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본색을 드러냈다.
재기하고 싶으니 돈을 좀 마련해달라고 영애에게 요구한 것이다.
영애는 일언지하 거절했지만 남편도 보통은 아니었다.
끈질기게 영애를 설득하더니 마침내 남편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게 되었다.
영애친정 아버지가 이년전에 돌아가시면서 영애몫으로 땅을 조금 남겼는데
그걸 사업밑천으로 받아낸것이다.
영애는 그래도 이번엔 성공하겠지 하는 약간의 믿음과 이제는 남편이 잘되서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평범한 여느 주부들처럼 살고 싶은 마음으로
어렵사리 땅을 내놓았는데... 결과는 또 처음과 마찬가지로 부도로 끝났다.
이번엔 그 규모가 처음보다 훨씬 커져서 영애앞으로 2억이라는
빚까지 남겨두고 남편은 또다시 자취를 감추어버렸다.
영애는 더이상 살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평생을 일해도 2억이란 큰돈을 갚을수 있을까...
애들도 있는데 이젠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애들 데리고 그냥 같이 죽어버릴까...
영애의 머릿속은 너무나 혼란스러워 이성적인 생각이 어려워졌다.
잠든 아이들을 바라보며 영애는 밤새 뜬눈으로 지세웠다.
아이들과 그냥 모든걸 포기하고 싶었지만
고사리 같은 아이의 손을 보는 순간...
영애는 다시 이악물고 살아보자 결심을 하게 된다.
여전히 영애 곁에는 성질 고약한 양시어머니가 있었고,
남자 장정도 해내기 힘들다는 쌀배달을 영애는 갸녀린 몸으로 마다하지 않고 해내야 했다.
은행빚을 갚기 위해 사채돈까지 빌려서 썼기 떄문에
영애는 밤낮으로 몸이 부서져라 일하고 또 일했다.
발그레한 뺨에 수줍은 미소를 짓던 순둥이 영애는 이제 사라지고
자식새끼 데리고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독기 품은 영애만이 남게 되었다.
영애는 영혼을 팔아서라도 아이들을 지키고 다시 살아내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그렇게 또 십수년이 흘렀다.
악착같이 하루하루를 살아낸 영애에게 이제 남은건
산 송장처럼 비쩍 마른 몸둥이와 남편에 대한 원망, 그리고 죽도록 일해 십년만에 갚아낸
빚보증서뿐이다.
아이들은 바르게 자라주어 딸은 시집도 보내고 든든한 사위도 얻게 되었다.
이제 아들만 장가 보내면 영애는 미련없이 도시생활을 접고
시골에 들어가 텃밭이나 가꾸며 그렇게 노년생활을 보낼꺼라고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다.
영애 곁에는 혹처럼 따라다니는 양시어머니가 아직도 살아계신다.
하지만 젊었을때의 깐깐함과 꼬장꼬장함은 이제 사라지고 없고
이빨빠진 종이호랑이 마냥... 영애 눈치 살피기 바쁜 그저 그런 늙은 노인네에 지나지 않는다.
지난 삼십년을 함께 산 죄로...
미운정이 얼마나 들었는지..이젠 양시어머니가 밉지도 않고 그저 불쌍할 뿐이었다.
영애는 마지막 노후를 양시어머니를 모시고 시골에 내려가서
조용히 그렇게 살다가 양시어머니 먼저 보내드리고 뒤이어 자기도 조용히 가고 싶다고 했다.
남편은 그렇게 잠적했다가 딸이 결혼하기 전해에 다시 제발로 걸어들어왔다.
하지만 이제는 아들, 딸들이 아버지를 받아주지 않았고
남편은 정처없이 그렇게 떠돌이 생활을 하다가 딸이 결혼할때 잠시 손잡아주고
예식장에 앉아있어주는 것만으로 아버지 노릇을 끝냈다.
저지른 죄가 있으니 자식들도, 영애도, 양어머니도...아무도 남편을 찾지 않았다.
여기까지가 엄마의 인생소설 입니다.
여자로써의 행복은 포기하고 두아이의 엄마로, 며느리로, 집안의 가장으로
뼈빠지도록 살아내야만 했습니다.
살면서 당신을 위해 고기 한번 먹지 못하고 그렇게 사셨습니다.
이제는 빚도 다 갚으시고 쫓기는 기분 훌훌 털어버리시고 시골로 들어가시고 싶어하십니다.
여전히 친정엄마는 쌀가게를 운영하고 계시고 , 저희 할머니를 모시고 계십니다.
이젠 쌀가게도 예전같지 않아 하루에 배달 대여섯개가 고작이지만
그래도 직접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시며 배달까지 하신답니다.
이제는 저희 친정엄마가 걱정없이 편안하고 안락하게 사셨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자식으로서 받기만 했지 효도 한번 못해드리고
이제는 내 새끼 챙기기 바쁜 못난 불효자가 되었습니다.
이번 기회에 엄마의 인생을 다시 한번 적어내려가다보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줄줄 흘러 내리고 가슴이 미어질것 같았습니다.
엄마...너무 고생만 하신 우리 엄마...
사랑합니다. 그리고..험한 인생을 이 악물고 살아주셔서 감사합니다.
포기하지 않고 살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친정엄마와 이모들^^ 맨 왼쪽 제일 키큰 여자아이가 저희 엄마예요.
성격이 깔깔하신 우리 할머니. 이제는 많이 늙으셔서 2주일에 한번 오는
우리 딸래미 기다리는 재미로 사신답니다.^^
딱 한장 있는 아버지 사진. 제가 백일이라 기념으로 가족사진을 찍었다고 하네요.
이때만해도 우리 엄마 얼굴이 참 예뻤는데...^^ 이때의 엄마 나이와 지금 제 나이가 얼추 비슷하겠네요
지금의 엄마모습. 고생을 많이 하셔서인지 머리가 완전 백발로 되어버렸네요.
끝에는 염색약이 좀 남아있긴 하지만..머리뿌리 부분은 검은 머리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새햐얀 백발이네요T_T






> 






최신
이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