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히 내가 우리 부모님의 살아온 인생을 가지고 글을 쓸수 있을까?
여자들은 말한다.
“내가 그 동안 살아온 인생을 말하려면 몇 날 며칠을 가지고도 모자라”
그 몇 날 며칠을 얘기해도 모자라는 시간을 종이 몇 장으로 얼마나 대변하여 채울 수가 있을까?
하지만 난 부족함 투성이의 글 솜씨지만 두 분의 사랑을 언젠가 글로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이번기회에 두 분의 대하소설을 써본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남자는 다른 사람이 아닌 나의 친정아버지다.
아버지가 재력이 있어서 어린 시절이 풍족했던 것도 아니고 아버지와 엄마랑 근사한 가족여행을 나눴던 것도 없건만 난 나의 친정아버지를 가장 존경하고 사랑했다.
지금은 존경하고 사랑했던 아버지의 자리가 빈자리로 남아 있지만 내가 언제부터 아버지를 그리 좋아했고 존경했었는지 그 시점을 생각해보니 내가 결혼해 지금의 남편과 살면서 내 아버지와 부부의 연을 맺고 사는 우리 엄마는 참 행복한 사람이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자식의 눈에도 행복해 보이는 두분의 부부의 인연이었기에 아버지와 이별의 시간을 끝낸 지금 엄마는 많이 힘들어 하고 있고 그리워하고 있다는 걸 잘 알고 있다.
내가 아버지를 한 여자의 남편으로서 최고의 남자로 말하는 부분은 아버지는 아내를 그리고 자식을 늘 배려하고 사랑하셨기 때문이다.
가장 쉬운것 같지만 가장 서운한 부분이 배려가 아닐까?
결혼 10년간 내 생일 단 한번 제대로 기억하는 일이 없는 남편과는 달리 아버지는 내가 기억할 수 있는 저학년 때부터 엄마 생신날이 다가오면 일찍 시장에 나가 엄마가 좋아하는 우묵가사리와 밑반찬거리를 양손에 가득 들고 그리고 엄마가 가장 좋아하는 빨간색 자두를 사들고 행복한 표정으로 들어오셨고 엄마 생신날 아침이면 어김없이 우리 딸들을 깨우셨다.
“사랑아 오늘은 너희들이 아침 좀 준비해라”
아버지가 일찍 아침을 깨우시기에 엄마 생신날이 철없던 어릴적 기억엔 그리 좋을 수만은 없었던 것 같다.
엄마와 아버지 생신은 정확히 3주 차이
결혼 후 엄마 생신 때 우리들이 참석 못하면 아버진 서운한 목소리로 전화하신다.
“내 생일은 안와도 괜찮은데 엄마 생신날은 꼭 챙겨야지 엄마 서운해 하신다”
가까운 곳에 사는 것도 아니고 두 시간 거리의 지방에 계시기에 두 분 생신 다 못 챙기기에 가끔은 아버지 생신에 비중을 두고 빼먹는데 엄마 생신은 꼭 챙기시라는 아버지의 엄마에 대한 사랑으로 우린 부담으로 남아있었다.
그러고 보니 부모님 대하소설 마감날이 엄마 생신이다.
아버지 안 계셔서 더 챙겨야 하는데 난 이번도 어김없이 아버지 생신만 챙기고 있는 부족함 투성이의 딸이다.
가끔 두분의 만남이 궁금해 물었었다.
당시 외할머니가 당신의 딸과 아들 모두 도시로 시집 장가가고 나니 외로우셨었나 보다.
한 사람이라도 가까이 두고 싶어 희생된 게 엄마라 그러셨으니까.
아버지의 외모가 참 훤칠해 외모는 맘에 들었었는데 결정적으로 가난했다는 거.
외할머니는 아버지를 옆에 두시면 외할머니가 편하실거라 생각하셨나본데 아버진 장남이셨고 맘이 너무 좋아 엄마 당신은 시집살이가 너무 힘들었다고 하셨다.
사람들은 착한 남자 좋다고 착한 아들 좋다고 말하지만 착한 남자와 사는 여자는 무지 힘들다고 너무 착하게만 살지말라고 하신다. 힘들게 사셨지만 절대 아버지 원망이나 아버지 흉을 들은적이 없는것 같다.
어느날 아버지와 엄마의 신혼적 얘기를 듣고 웃음이 나왔다.
결혼한 지 얼마 안돼 엄마는 화장실 가는게 가장 무서웠다고 한다.
지금이야 집안에 화장실 모두 갖추어져 있지만 우리 엄마시절 그게 특권을 가진 자들의 것이었다.
혼자 화장실 가기 무서워 늘 아버질 끌고 나와 화장실 문 밖에서 보초를 서게 했는데 장난끼가 발동한 아버진 엄마가 볼일을 끝내고 나올 시간이 되면 몰래 숨었다가 깜짝 놀래키기를 몇 번이나 하셨다고 한다.
그런 얘기 한 번도 안하셨었는데 아버지와 이별의 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음을 감지하셨던지 눈시울을 적시면 아버지와의 추억을 자꾸 말씀하셨었다. 그게 돌아가시기 3일전의 말씀이니 엄마는 마음의 등불이 꺼지고 있는 걸 감지 하셨었던것 같다..
혹시라도 돌아가시게 되면 집에 사람들이 올까 사랑방을 치우신다며 짐을 정리하던 중 처음 보는건데 뜯어보지도 않은 것을 엄마가 태울 것으로 분류해서 상자 안쪽에 집어 넣으셨다. 아마 내가 볼까 싶어 몰래 박스 속에 넣어 두었던 것 같은데 궁금하면 못 참는 나이기에 엄마가 자리를 비운 틈을 이용해 살펴보았다.
포장자체도 뜯어보지 않은 성기능강화기구였다.
내가 본걸 알아버린 엄마는
“추책 맞게 그 나이에 왜 그런 이상한 것을 사다두었는지 이해가 안간다며 투덜대셨지만 난 아버지 성격을 알기에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아버진 세월이 많이 흘렀어도 영원히 엄마에게 남자이고 싶었던 것을.
뇌수술 후 아버진 거의 한 달을 단 한번을 제외하곤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셨다.
의식을 회복하진 못하셨지만 내가 아버지를 찾을 때마다 눈가에 눈물의 흔적이 매일 남아있어 엄마가 보면 아파할까 그 눈물의 흔적을 몰래 닦아드렸는데 돌아가시기 몇시간 전에 아버지의 시선이 계속해서 엄마의 시선을 쫒고 있었다.
그리고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입의 모양으로 보아 뭐라고 계속해서 말씀하셨다.
영화속의 한 장면 마냥 기적의 힘이 발휘되었는지 뭐라고 하셨는데 아마
‘먼저 가서 미안하다’ 라는 말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리고 엄마가 아버지의 손을 꼭 잡고 마지막으로 한 말은
“미안해요, 우리 다음 세상에서 다시 만나요”
아버진 엄마한테 그 말을 듣고 싶으셨었는지 엄마의 그 말을 듣고 몇 시간 후 엄마와의 인연의 끈을 놓으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딸들은 성급히 아버지의 물건을 태웠다.
엄마는 당신이 천천히 분리하면서 태운다고 말리셨지만 딸들은 엄마가 아버지와의 추억을 떠올리며 눈물의 시간을 보낼 것 같아 서둘러 태웠는데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니 참 그게 못된 딸들이 아니었나 싶어 후회된다.
23살에 결혼해 40여년간 부부의 인연으로 살면서 소중한 추억도 그리고 영원히 간직하고 싶은 흔적들을 담아두고 싶었을 텐데 자식이 되어 너무 쉽게 그 흔적들을 지워버리게 한 것 같아 지금은 후회가 더 많이 남는다.
물질적으로 그리 행복한 삶이 아니었고 편안한 아버지의 아내도 아니었을텐데 엄마는 아버지를 지금도 좋아하신다.
그때는 몰랐는데 내가 아내가 되고 나니 엄마의 마음을 이젠 알 것 같다.
부부간에 돈도 중요하지만 진정으로 소중한 것은 서로가 아껴주는 배려와 서로의 따뜻한 마음이란 걸.
그래서 난 그리고 엄마는 아버지를 사랑하고 존경 했었다는 걸.
엄마 아빠에겐 우리 부부에겐 없는 서로 아껴주는 배려와 따뜻한 마음이 있었다는 것을.
서로가 아껴주는 배려와 서로의 따뜻한 마음이 있을 때 행복도 함께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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