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김, 그때 보리밭엔 왜 갔어??

글쓴이 누봉

등록일 2008-07-14 00:38

조회수 2,0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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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아 학교가자~' 

갑임이는 아침설거지를 후다닥 끝내고 호랑이 엄마가 학교 못가게 할까봐 길건너 같은 반 숙이를 불렀다

'지지바야! 빨래는 안하고 가나!' 추상같은 엄마의 목소리가 뒷덜미를 잡았지만

오늘도 못가면 이틀째 못가는 학교다

숙이가 저거 언니 순분이랑 그 밑에 재록이랑 재덕이를 주렁주렁 달고 나왔다

갑임이가 먼저 달음질치자 숙이네 남매들도 다 달음질을 쳤다

학교가 끝나고 집에가서 동생들 업고 집안 청소를 해야 했지만 갑임이는 더 놀고 싶었다

숙아랑 순분이 언니랑 고무줄도 하고 숨바꼭질도 하다보니 해가 뉘엿거렸다

그제서야 엄마의 매운 손맛이 벌써 얼얼하게 와 닿았지만 까짓 맞으면 그만이다.


학교갔다고 엄마에게 머리채를 휘둘리고 깜깜한 밤중에 동생 똥기저귀를 빨갛게 언 손으로

호호빨고 있는데, 숙아네 집 오동나무에서 하모니카 소리가 들린다.

대전으로 고등학교 유학갔던 숙아 저거 오빠가 잠시 다니러왔나보다.

언 손을 치맛폭에 녹이며 잠시 넋을 잃고 듣고 있는데, 숙아네 둘째 동생 재록이가

삐죽 오더니 뭔 종이 쪽지를 하나 전달하고 갔다.

엄마한테 들킬새라 살째기 보니 잘있었냐, 책을 잘 읽고 있느냐는 숙아 저거 오빠의 편지다.

얼굴이 발끈 달아올랐다.

하모니카 소리가 여전히 들려와 갑임이는 사립짝에 기대어 잠시 하모니카 소리에 몸을 맡겼다

'저 오빠는 어째 저리 공부도 잘하고 인물도 좋고 하모니카도 잘 불꼬.. 참말 웅양 인물이라카디

인물은 인물인기라..' 가슴이 콩당콩당 뛰었다.

'머하노! 빨래 다했나!' 추상같은 엄마의 소리에 '야! 다 했심더' 하고 방으로 뛰어들어가지만

뒤꼭지가 서운했다.


갑임이가 열일곱살이 되었다. 학교는 오학년에서 끝내고 말았지만, 집안 살림이나 하라는

엄마의 불호령이 무서워 집안에서 밥순이가 되었다.

그런데 숙아엄마, 즉, 갑임이 엄마의 친구인 길 건너 아주머니가 오더니 속닥속닥 뭐라고 했다

'뭐시라카노! 지가 뭘 할 줄 안다꼬 벌씨로 시집을 가! 낸 못준다!'

갑임이 엄마는 괄괄하고 거칠게 없는 성격이고 숙아 엄마는 털털하니 사람좋은 동네 친구였다


그런데 그 때 이미 갑임이는 숙아 저거 오빠랑 사람들 눈을 피해 풀잎을 뜯으며 수줍은 데이트를

몇번하고 있었고 오동나무 밑의 하모니카 소리가 신호탄이었다.

그런데 갑임이 막내 외삼촌이 동네 사람들한테 이상한 소문을 퍼뜨렸다

'숙아 저거 오빠하고 갑임이 하고 보리밭에 들어가있는 걸 봤다'


아니라고 항변을 하였지만 갑임이는 머리를 깎여 방안에 감금을 당했고 숙아 저거오빠는 갑임이 엄마한테 싸리빗자루로 죽지 않을 만큼 맞았다. 그러나, 이미 대세는 기울었다. 소문난 딸년을 어디다 치울 것인가.

50년대 경상도 깡촌에서는 부모끼리 맘 맞아 결혼하라고 하면 얼굴 한 번 안보고 시집가던게 일반적인

시절이었는데, 웅양열두동네 통틀어 연애결혼 제1호 커플이었다니 말도 참 많았나보다.


어쨌던 시집을 갔다. 뭐 건너집에 살던터러 서로 살림 뻔하게 알고 숟가락 숫자까지 아는처지였지만

갑임이는 시집을 가니 너무 너무 좋더란다.

꼼꼼하고 깔끔해서 사람을 잠시도 못쉬게 하던 친엄마와 달리, 털털맞은 시어머니는 당췌 간섭이란게 없더란다.

돌지나 뽈뽈기어다니는 막내 시동생과 시할머니까지 있는 층층 시하였지만, 친정에서 온갖 고생 다하고

살다 시집으로오니 귀염받지 사랑받지 좀 잘못하는 일 있어도 태도 안나지. 천국이 따로없더란다

다만 힘든건 아침 밥상 세번 점심밥상 세번 저녁밥상 세번 차리는 것이었다는데,

물동이 이고 물뜨러가면 사십초반이던 시아버지가 방문을 살짝 열고 어린 며느리 한번 훑어보고 좋아서

벙긋벙긋 하셨단다


어느날 그 깡촌에 야매 빠마 장수가 들어왔는데, 시어머니가 쌀 한말을 담아가서 갑임이 쪽 머리를 달랑

자르고 신식 파마를 해주었단다.

그날, 양가 집안에 난리가 났단다.

친정 아버지가 보시곤 (바로 길건너였으니)  나죽으면 절대로 친정오지마라, 곡하려면 머리를 풀고 곡을

해야 하는데 니 머리 꼬라지 보니까 남사스러워서 안되겠다 하시고

시아버지는 말린 담배만 뻐끔뻐끔피시며 못마땅해하시는데,  민의원을 지내신 친척 어르신이

'고마 국화꽃피듯이 보골보골하니 얼마나 이쁘노'하며 진정을 시키드란다


그런데 시어머니의 덮어주심과 시아버지의 사랑, 신랑과의 알콩달콩도 잠시 신랑이 그만 군대를 가버리고 만 것이었다...

며느리 혼자 방 못쓴다고 시할머니와 한방을 썼는데, 그 때 이미 태기가 있었더라고 한다.

어린 새댁이 만삭이 되어 애를 낳는데, 골반이 작아서 그런지 아무리 용을 써도 애는 안나오고

여드레를 애를 틀고보니 기운이 쭉빠져서 산모하고 애하고 죽었다고 웃목에 밀어놓고

신랑 부대에 ' 부인위독, 하고 전보를 보냈는데,

그걸보고 정신없이 달려온 신랑이 시내 양의를 왕진을 청해 무슨 주사를 허벅지에 놓으니

갑임이는 위로 쑥 올라가고 애는 밑으로 쑥 빠지더란다. 요즘말로 분만유도제가 아닌가 하는 말을 나중에

미스 김이 했다.

아무튼 그렇게 첫아들을 낳았는데, 시조모께서 '젊은 년이 가랑이 벌리고 사내 앞에서 애 낳았으니

이제 우리 집 망했다고' 머리를 풀고 통곡을 하더란다.

그때 오직 며느리 향한 일편단심밖에 없던 시어머니가 당신 시어머니랑 한바탕 부딪혔단다

요새 신식며느리들은 다 그렇게 애 낳심더, 어무이가 멀 모르이께네 그런거지예!

신랑도 시조모 어깨를 안고 업고 '안죽었으니 다행이지요 할머니 용서해주세요. 아들 낳았잖아요'

해서 간신히 풀어헤친 머리는 쪽을 쪘는데 어린 새댁 쪽으론 눈길도 안주더란다.


그렇게 다시 신랑은 대구 이군사령부로 돌아갔고 행군이나 부슨 일이 있으면 일부러 집에 들러

자기 모자를 갑임에게 씌우고 부대원들하고 다 사진도 찍고 마누라 자랑도 하고 그랬단다.


'미스김, 솔직히 말해봐, 그때 아부지 보고싶었어 안보고싶었어?'

'보고싶지 안보고싶겠나, 그때 나이가 몇살이었는데, 맨날 맨날 편지 안오나 그거만 기다리고 살았다'


국민학교 다니는 시동생들은 누룽지 안 긁어준다고 부엎바닥에 고추내놓고 오줌싸고 도망가고

서로 숙아 갑임아 부르던 한반 친구에게 갑자기 언니 아가씨라 부르라니 난감하기도 했고

더 난감한건, 큰 시누한테 매일 언니라고 불렀는데, 이제 그 언니가 갑임이를 언니라고 불러야 하는

황당한 일이었다.

그래서 시모가 큰 시누를 얼른 중매로 시집을 보내 그 문제는 해결을 했다.


그런데,,, 동네 골목에서 자치기하고 땅따먹기 하던, 양쪽 머스매들이 문제였다

길건너 또래들이었으니 얼마나 친하게 지내고 얼마나 치열하게 싸우고 놀았겠나

그런데 형, 누나가 결혼을 하더니, 이젠 사돈이라고 점잖게 존대하고 지내라고 하니

이 천둥벌거숭이들이 그게 뭔뜻인지 알기나 하는지,

이새끼 저새끼 하던 애들이 하루 아침에 사형이라 부르라 하니, 말하기가 참 어색하여

고마 다른 동네 애들하고 놀게 되는 슬픈일이 벌어졌던 것이다.


마침 갑임이가 애를 낳던 무렵, 갑임이 친정오빠도 남자애를 낳았다.

그래서 친구 사이였던 길건너 두 사돈이 각자의 첫손주를 안고 나가 손주 자랑을 하곤했는데

갑임이 아들은 투실투실 뽀얀데, 갑임이 조카(오빠 아들)은  비비말라서 영 볼품이 없었던 것이다

갑임이 시어머니는 그게 고소해서 노상 손주를 안고 사돈집에 놀러가서 염장질르고 오는게

일과였다.



'엄마, 와 소는 숟가락으로 밥을 안묵고 입으로 밥을 묵노 드럽구로'

갑임이 아들이 이런 말을 할 때쯤 신랑이 제대를 해서 돌아왔다.

갑임이 생애 가장 행복했던 날들이었다.


그러나 그 뿐, 그 이후 갑임의 인생은 눈물길, 가시밭길, 걸음걸음 번뇌의 길이었으니

이쯤, 그녀의 행복했던 지난 날을 닫고자 한다.


에피소드로,, 국민학교 5학년짜리 시동생을 (시집갈때 뽈뽈기어다니던 시동생) 여탕에 데리고가

때벗기던 그런 일들, 그 이후 엽기적인 일들도 많지만 글이 길어지면 인생도 지루해지는지라

이쯤에서 닫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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