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어지지 않지만 올 가을에 내가 칠순이란다.
혹 그것이 사실이어도 제발 아무도 모른 척 그렇게 지나갔으면 좋겠다.
무슨 잔치니 무슨 기념이니 그런 것 좀 하지 말고.
몇 번이나 누누이 말하고 당부했건만 내 말을 콧등으로도 안 듣는 건지
애들은 저들끼리 쑥덕거리며 무슨 준비를 하는 듯하다.
한 칠십 년 전에, 나는 위로 언니 둘, 아래로 여동생 셋을 둔
딸 여섯 집에 셋째 딸로 태어났다.
셋째 딸이 으레 그려러니 하겠지만 나름 곱게 자랐다.
사실은 몸이 약하다고 제외시켜 주어 자매들에 비해 궂은 일을 덜하며 지냈다.
적어도 열일곱때인가 엄마가 어렵게 얻은 막둥이 아들을 먼저 보내고
내내 산후병으로 앓다가 같이 가시기 전까지는.
그 후로는 서울에 홀로 올라와서 일하며 공부하며
고향에서 동생들 데리고 올라와 학교보내고
스물다섯 넘기지 말라는 아버지 말씀에
제한시점을 한달 남기고 오로지 성실성 하나만 보고
가난한 집 까맣고 비썩 마른 막내아들과 결혼하여
비키니 장 하나, 이불 한 채, 주발수저 두 세트로 결혼생활을 시작했다.
그 이후에 모든 일들이 곱게 생겼다고들 하는 얼굴과는 영 딴판의
거칠고 굽은 상머슴의 손과 발을 남겨주게 되었다.
그렇다고 그것을 대수로 생각지도 않는다.
약 8년의 차를 두고 네 명의 딸을 세상에 내보냈다.
내 젊어서 이런 딸들을 낳아 기르게 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나랑 어쩜 한군데도 닮은 구석들이 없는 외모하며,
그렇다고 서로들도 한배에서 나왔다고 믿어지지 않을 만큼 다르게 생기고,
성격들도 어쩜 그리 딴판인지 …
한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내가 한마디 하면 열 마디씩 한다는 것이나
나의 말에는 무조건 반대의견부터 내고 본다는 사실 정도?
그렇다고 이 네 딸들을 낳아 기른 것을 후회해본 적은 결코 한 순간도 없다.
믿거나 말거나 난 정말 내 죽을 힘을 다 해서 키웠고,
알아주지도 않는 것에 섭섭하게 생각 해본 적도 없다.
다행히 내가 딸 넷을 다 낳기도 전에
딸 낳은 며느리(나의 전손위동서)를 소박놓았다는 고루하기 짝이 없는 시아버님이 돌아가셔서, 나와 나의 네 딸들에 대한 주변의 안 좋은 이야기는 거의 무시하며 지낼 수 있었다.
아이아빠 (우리영감)는 아들 욕심도 없었고, 딸들을 나름대로 존중해주며, 나의 교육방침에 대체로 동의하며 (나의 고집을 혹은 의지를 당하지 못하며) 열심히 키워주었다.
그래서 저렇게 딸들은
‘엄마는 딸만 있어서 행복한 거야’ 라는 흰소리들을 한다.
‘딸만 있어서 너희들이 행복한 거야’라고 맘속으로만 답해주기도 한다.
그러고 보면 돌아가신 우리 아버지 참 멋진 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당시 나름 지식인이어서 그러셨는지
딸 여섯을 낳은 우리 엄마를 구박 한번 하시지도 않았고
딸들에게 흔한 상소리 한번 없으셨다.
그런 면에서는 우리영감도 마찬가지고.
그래서 거의 매일 같이 딸들에게 애들 아빠 흉을 보다가도
“그래도 어디 우리 아빠만한 사람 없잖아요?” 하면
“그렇긴 하지.” 하고 할 수 밖에 없다.
현재 거의 사십을 전후 다섯 살 범위 내에 있는 딸들은
결혼시기도 제각각, 남편들도 제각각, 사는 곳도 제각각, 아이 낳는 시기도 제각각
세상에 나온 순서 혹은
세상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적령기 등의 통념과는 전혀 별개로
그야말로 제 성격, 외모에 따라 제각각이다.
한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모두 딸을 낳았다는 것이다.
외손녀만 여섯…
내가 딸 여섯인 집에 세째라는 것이 서러운 적도 없었고,
내가 딸만 넷을 낳았다고 아쉬운 적도 없었는데,
왜 내 딸들이 죄다 딸을 낳는 다는 것은 가슴아픈지 모르겠다.
물론 딸들은 전혀 그런 생각이 없는 듯하고
나도 손녀들이 하나같이 이쁘고 귀엽다.
그래도… 그래도 말이다.
마치 이런 딸들을 몰고 다니는 이 분위기의 중심이 왜 자꾸 나라는 생각이 드는 건지.
나이 사십 넘은 둘째 딸이 둘째 아이를 가진 모양이다.
“이번엔 아들이면 좋을 텐데…”하며 말꼬리를 흐렸더니
“엄마, 저는 애초부터 동성으로 둘을 가지는 게 목표였어요. 아이한테는 남매보다 자매가 좋아요. 우리 보세요. 자매니까 이렇게 우애도 있고 잘 지내는 거예요.” 한다.
그래, 세상이 많이 달라졌으니까.
여자가 더 이상 열등한 성이라는 생각은 나부터 버려야 하겠다.
내가 했었던 생고생들 울 딸들, 우리 손녀들 안 하게 하려고 내가 고생한 것이니.
우리 딸들, 우리 손녀들, 이 땅의 모든 엄마와 딸들이
차별없이 구김없이 당당하고 행복하게 살면 그것으로 된거지.






> 


최신
이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