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음, 늙어감에 대해

글쓴이 디토

등록일 2009-12-08 17:41

조회수 1,354

글자확대 글자축소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블로그 네이버밴드 페이스북 트위터

어느 책에 나온 얘기가 기억난다.

‘잘 늙어간다는 건 아침에 일어나 몸이 더 불편해진 부분을

리스트에 첨가하면서도 용기를 잃지 않는 일이다’

이런 요지의 글이었다.

잠시 멈춰 서서 나의 남은 시간을 생각해보고, 늙어감을 생각한다.

인간은 자신의 유한함을 인식하는 유일한 동물이라고 하지만

자신의 노화나 죽음을 피부에 와 닿게 구체적으로 인식하지 못한다.

 

내가 처음으로 노화를 느꼈던 강렬한 경험은 ‘노안’의 시작이었다.

그게 서서히 느껴지는 게 아니라 어느 한 순간 떡 하니 나타난 손님과도 같았다.

포크 손잡이에 적힌 영어 글자를 물어보는 질문에

‘이렇게 작은 글자가 어떻게 보여?’하고 반문했다.

상대방은 ‘아니 그게 안 보인다고? 단어 뜻을 모르는 거 아냐?’하고 놀렸다.

그 후 직장의 동년배들에게 물어보니 싱글거리며 답하기를

‘아직 노안이 안 온 거야? 확인해 보고 싶으면

수첩 뒤의 지하철 노선도를 읽어봐. 가물거리면 노안이 온 거야’했다.

그러고 나서 시간이 지나며 노안은 급속도로 진행되는 듯했다.

 

불과 얼마 전, 바늘귀에 실을 끼어달라는 어르신 앞에서

아무 생각 없이 실을 낄 때는

내가 그 입장이 되리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으니

이제 와서 웃음이 난다.

노인들은 원래부터 노인이었고 나는 언제나 이 상태로 머물러 있으리라 생각하는 것,

이게 젊음의 특권이자 한계 아닐지.

 

얼마 전 동생이 사온 상품의 뒤에 적힌 내용을 읽으려고

밝은 데 비춰보며 애를 쓰는데 동생이 답답하다는 듯 휙 빼앗아가며

‘아휴, 내가 읽을게’하는 그 짧은 순간,

‘아니 늙은 날 무시하는겨?’하는 잠깐의 투정(?) 같은 걸 느꼈다.

동생과 나는 세 살 차이밖에 안 나는데도 이렇게 노화의 거리가 엄존한다.

설사 동생이 삼 년 후 내 상황이 된다 해도 지금의 나를 이해할 수는 없을 것이다.

 

만석님의 글 속에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의 세월의 거리가

빚어낸 실수를 보니 나 또한 무심코 그런 실수를 행하지 않았나 돌이켜본다.

이제 서서히 늙음이란 벗을 맞이하며 다짐한다.

몸이 불편해 지는 목록이 늘어날 때도

젊은 사람이 내게 주는 상처가 하나 둘 늘어날 때도

용기를 잃지 않는 일,

그리고 그 상처가 들어왔다가 빠져나가도록 맘을 열어주는 일,

그게 노후대책이 아닐지.

 

 

마이 페이지 > 스크랩북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소중한 글에 감사 댓글 남겨주세요.

 담기 인쇄 답글 목록 글쓰기


글수 글수(37,115 )
쓰기
번호 제목 글쓴이등록일조회수
22139   늙음, 늙어감에 대해 3 디토2009-12-081355
    인디언 썸머를 기다리며.... 2 누봉이2009-12-091284
22138   외출해야겠어요 ㅎ 4 사랑둥이..2009-12-081266
22137   나이들어 자기 주장이 넘 강해서 6 teresung..2009-12-081192
22136   추운겨울을 따뜻하게해줄 내복, 내복의 재발견!! 3 워터풀2009-12-081235
22135   신길동에도 눈이 왔서요 5 이경화2009-12-081165
22134   손씻기 6 뽀샤시2009-12-081244
22133   민감한 그날, 생리냄새 없애기 2 물물2009-12-083200
22132   버블쇼에 어렵게 당첨되었는데...ㅠ.ㅠ 7 지유맘2009-12-081229
22131   오늘은~ 8 세아이2009-12-081198
22130   심장병 예방을 위한 생활수칙 Best 5. 3 미노맘2009-12-081066
22129   술로 하는 망년회 1 기분꽝이..2009-12-081048
22128   피라칸다 6 현이2009-12-081440
22127   성매매 연예인은 누규~ 17 이경화2009-12-084369
22126   아침일찍.. 4 이겨울님..2009-12-08870
22125   편안한 밤 보내세요^^* 4 뽀샤시2009-12-07992
22124   무지 힘드네요 8 이겨울님..2009-12-071075
22123   헌터스 논란, 그럼 불임수술을 시키랴? 6 누봉이2009-12-071539
22122   2박3일 강원도 여행기 5 날씬이2009-12-071797
22121   강박증 5 딩동댕2009-12-071619
22120   아빠랑 아들이랑 둘다 산에 가는걸 좋아해요~ 3 샬랄라2009-12-071090
22119   폐렴은 한번 다 앓고 가는건가요?;;; 4 Too2009-12-071450
22118   며느님은 왜? - 무제 10 만석2009-12-071706
22117   내가 좋아하는 컬러 퍼플, 완소퍼플 아이템 ! 1 굿초2009-12-071003
22116   오늘 퇴근길에 3 삥아뤼2009-12-07885
22115   형님 생신날~ 2 이경화2009-12-071212
22114   오늘날씨 진짜 춥네요~ 2 샤랄라~2009-12-071025
22113   감사합니다~새내기 미션 성공했어요^^ 6 박소연2009-12-071158
22112   엄마한테는 말하지 마. 2 밥상차리..2009-12-071186
22111   병원에서 오라네요..^^ 4 쉬엄쉬엄..2009-12-071293
22110   아~~진짜.... 1 김미정2009-12-07986
쓰기
검색 목록보기


이벤트·체험단

기간 ~

쑥쑥플래닛앤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