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책에 나온 얘기가 기억난다.
‘잘 늙어간다는 건 아침에 일어나 몸이 더 불편해진 부분을
리스트에 첨가하면서도 용기를 잃지 않는 일이다’
이런 요지의 글이었다.
잠시 멈춰 서서 나의 남은 시간을 생각해보고, 늙어감을 생각한다.
인간은 자신의 유한함을 인식하는 유일한 동물이라고 하지만
자신의 노화나 죽음을 피부에 와 닿게 구체적으로 인식하지 못한다.
내가 처음으로 노화를 느꼈던 강렬한 경험은 ‘노안’의 시작이었다.
그게 서서히 느껴지는 게 아니라 어느 한 순간 떡 하니 나타난 손님과도 같았다.
포크 손잡이에 적힌 영어 글자를 물어보는 질문에
‘이렇게 작은 글자가 어떻게 보여?’하고 반문했다.
상대방은 ‘아니 그게 안 보인다고? 단어 뜻을 모르는 거 아냐?’하고 놀렸다.
그 후 직장의 동년배들에게 물어보니 싱글거리며 답하기를
‘아직 노안이 안 온 거야? 확인해 보고 싶으면
수첩 뒤의 지하철 노선도를 읽어봐. 가물거리면 노안이 온 거야’했다.
그러고 나서 시간이 지나며 노안은 급속도로 진행되는 듯했다.
불과 얼마 전, 바늘귀에 실을 끼어달라는 어르신 앞에서
아무 생각 없이 실을 낄 때는
내가 그 입장이 되리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으니
이제 와서 웃음이 난다.
노인들은 원래부터 노인이었고 나는 언제나 이 상태로 머물러 있으리라 생각하는 것,
이게 젊음의 특권이자 한계 아닐지.
얼마 전 동생이 사온 상품의 뒤에 적힌 내용을 읽으려고
밝은 데 비춰보며 애를 쓰는데 동생이 답답하다는 듯 휙 빼앗아가며
‘아휴, 내가 읽을게’하는 그 짧은 순간,
‘아니 늙은 날 무시하는겨?’하는 잠깐의 투정(?) 같은 걸 느꼈다.
동생과 나는 세 살 차이밖에 안 나는데도 이렇게 노화의 거리가 엄존한다.
설사 동생이 삼 년 후 내 상황이 된다 해도 지금의 나를 이해할 수는 없을 것이다.
만석님의 글 속에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의 세월의 거리가
빚어낸 실수를 보니 나 또한 무심코 그런 실수를 행하지 않았나 돌이켜본다.
이제 서서히 늙음이란 벗을 맞이하며 다짐한다.
몸이 불편해 지는 목록이 늘어날 때도
젊은 사람이 내게 주는 상처가 하나 둘 늘어날 때도
용기를 잃지 않는 일,
그리고 그 상처가 들어왔다가 빠져나가도록 맘을 열어주는 일,
그게 노후대책이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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찔레꽃
너무 나이 들어감을 서운하고 안타까워 하기 보다는 ...
노안을 걱정 해주고
몸이 불편해 짐을 안스러워 해주는 우리들의 분신인 자식들이 있잖아요
몸이 조금 불편해도 노안이 와도 너무 속상해 하기보다..
의연하게 슬기롭게 대처 해가며.
멋진 사람이 되자구요
답글
제비꽃
자연스럽게, 거침없게, 즐겁게
넉넉한 마음으로
받아들이며 소화시키며
살아가봅시다요 ^^
답글
김미정
맞는 말씀^^
정말 인정하고 싶지 않은데
그래도 나의 늙음을 받아들여야할때 참 서글픕니다
그래도 남은 시간이 많음?!에 위안이~~ㅋㅋ 앞으론 평균수명이 백세가 넘는다잔아요
답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