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관령에 불던 바람

글쓴이 디토

등록일 2009-12-01 00:21

조회수 1,219

글자확대 글자축소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블로그 네이버밴드 페이스북 트위터

사별자를 위한 다큐멘터리 촬영을 하며


지난 한주간 심한 스트레스 상태에 있었습니다.


생전 처음 하는 촬영이 어색하고 두서 없어


대체 무슨 내용이 찍혔는지 모르겠지만


이젠 모두 잊어버리고 그저 편집자가 신의 손길을 발휘하여


어디선가 고통 받는 이에게 작은 위로가 된다면 좋겠습니다.


 


오늘 마지막 촬영 날, 민이가 잠든 대관령 옛길로 해민이와 함께 떠났습니다.


다행히 눈비는 오지 않았지만 엄청나게 강한 바람이 몰아쳐 촬영이 쉽지 않았습니다.


해민이가 민이 나무를 향해 외쳤습니다.



'민이 누나! 꽃 던질게!'


보랏빛 들국화 다발이 해민이 손에서 힘껏


벼랑으로 날아갔습니다..


찬 바람 탓에 입이 얼어붙어 말하기도 쉽지 않았지만


촬영 팀은 끈질기게 버티며 나의 말과 그곳 경치 곳곳을 담아냈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해민이는 피곤했는지 칭얼대더니


오늘 대관령에 가져갔던 민이 유품- 민이의 샌들-을 꺼내


자신이 신겠다고 발을 들이밀며 떼를 썼습니다.


'네 발은 너무 커서 안 들어가. 샌들 찢어지겠다'하면서


신발을 상자에 넣어버렸더니 몹시 서럽게 울어댑니다.


신발 상자를 들고 자겠다고 하면서


상자를 베게 위에 던지길래 제가 화를 냈어요.


왜 물건을 던지냐고...


제 말과 표정에서 심상치 않은 분노를 느꼈는지


해민이는 더욱 심하게 울기 시작했어요.


민이 샌들을 안고 자겠다고요.


결국 샌들을 손수건에 싸서 품에 안고 잠이 들었습니다.


 


오래도록 대관령에서 불던 바람이 제 가슴 속에도 불었습니다.


평소 민이 이야기를 해민이에게 한 적이 거의 없고


해민이 앞에서 눈물 흘린 적도 없었는데


요 며칠간의 경험이 해민이에게 혹 상처가 되진 않았을까?


 


민이에 대해 깊은 얘길 할 땐 제작진이 해민이를 따로 데려가서


놀았기 때문에 아이가 별 느낌 없었을 거라 생각했는데


엄마의 스트레스를 느꼈던 걸까?


 


그러나 편집 후 씨디를 보내준다고 하니


민이와 해민이가 하나의 화면에 담긴 추억을 영원히 간직할 수 있다는 데서


큰 의미를 찾게 됩니다.


외주제작사 촬영이라 방송3사에서 채택될진 아직 모르겠어요.


울며 잠든 해민이를 생각하며


이젠 좀더 밝은 엄마가 되어 더 많은 사랑을 해민이에게 줄 것을 다짐해봅니다.


 


(아 참, 대관령 칼 바람 속에 놀라운 것을 찾아냈어요.


굵은 마디 마디가 박힌 나무에 봉오리 같은 것이 돋아나 있더라고요.


만져보니 부드러운 것이 나무 끝 뿐 아니라


마디마다 뭔가가 움트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분명 나뭇가지 감촉은 아니었어요.


아..그 혹독한 바람 속 벌거벗은 나무에


생명의 싹이 돋고 있었을까요?


누군가 제게 해준 말,




'얼지마!


울지마!


부활할 거야!'


그 말을 사별자 모임 엄마들께도 전했답니다.)


 


 

마이 페이지 > 스크랩북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소중한 글에 감사 댓글 남겨주세요.

 담기 인쇄 답글 목록 글쓰기


글수 글수(37,115 )
쓰기
번호 제목 글쓴이등록일조회수
22139   늙음, 늙어감에 대해 3 디토2009-12-081350
    인디언 썸머를 기다리며.... 2 누봉이2009-12-091282
22138   외출해야겠어요 ㅎ 4 사랑둥이..2009-12-081265
22137   나이들어 자기 주장이 넘 강해서 6 teresung..2009-12-081192
22136   추운겨울을 따뜻하게해줄 내복, 내복의 재발견!! 3 워터풀2009-12-081234
22135   신길동에도 눈이 왔서요 5 이경화2009-12-081165
22134   손씻기 6 뽀샤시2009-12-081241
22133   민감한 그날, 생리냄새 없애기 2 물물2009-12-083199
22132   버블쇼에 어렵게 당첨되었는데...ㅠ.ㅠ 7 지유맘2009-12-081228
22131   오늘은~ 8 세아이2009-12-081197
22130   심장병 예방을 위한 생활수칙 Best 5. 3 미노맘2009-12-081066
22129   술로 하는 망년회 1 기분꽝이..2009-12-081048
22128   피라칸다 6 현이2009-12-081439
22127   성매매 연예인은 누규~ 17 이경화2009-12-084369
22126   아침일찍.. 4 이겨울님..2009-12-08870
22125   편안한 밤 보내세요^^* 4 뽀샤시2009-12-07990
22124   무지 힘드네요 8 이겨울님..2009-12-071075
22123   헌터스 논란, 그럼 불임수술을 시키랴? 6 누봉이2009-12-071538
22122   2박3일 강원도 여행기 5 날씬이2009-12-071796
22121   강박증 5 딩동댕2009-12-071617
22120   아빠랑 아들이랑 둘다 산에 가는걸 좋아해요~ 3 샬랄라2009-12-071087
22119   폐렴은 한번 다 앓고 가는건가요?;;; 4 Too2009-12-071450
22118   며느님은 왜? - 무제 10 만석2009-12-071705
22117   내가 좋아하는 컬러 퍼플, 완소퍼플 아이템 ! 1 굿초2009-12-071002
22116   오늘 퇴근길에 3 삥아뤼2009-12-07884
22115   형님 생신날~ 2 이경화2009-12-071210
22114   오늘날씨 진짜 춥네요~ 2 샤랄라~2009-12-071021
22113   감사합니다~새내기 미션 성공했어요^^ 6 박소연2009-12-071156
22112   엄마한테는 말하지 마. 2 밥상차리..2009-12-071183
22111   병원에서 오라네요..^^ 4 쉬엄쉬엄..2009-12-071290
22110   아~~진짜.... 1 김미정2009-12-07981
쓰기
검색 목록보기


이벤트·체험단

기간 ~

쑥쑥플래닛앤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