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넌 뭐니?(결혼16주년을 돌아보면서)

글쓴이 밥상차리는 남자

등록일 2009-11-27 11:25

조회수 1,6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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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연말이 되면 힘들어하는 남자가 있었다.

‘올해는 뭘 했지? 아! 또 아무것도 없어. 물이 손가락사이로 빠져나가듯이 아무것도 남은 게 없어. 세월만 또 낭비했단 말이야. 이렇게 나이만 한 살 먹고 마는 거야?’ 그 남자가 열아홉에서 스물로 넘어가는 연말에는 기어코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꾹꾹 눌러 참았던 울음이 흐느낌으로 새어나오더니 급기야는 온몸을 들썩이면서 꺽꺽 통곡하고 말았다.


차츰 울음이 잦아들면서 남자는 비 맞은 중처럼 혼자서 중얼거렸다. “절대로 서른이 되는 겨울은 혼자 나지 않을 거야. 절대로, 절대로.” 서른으로 넘어가면서도 혼자라면 그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고 죽어버릴 것 같다는 공포감에서 저도 모르게 중얼거린 것이다. 그 바람이 이루어진 걸까? 해마다 성장통을 앓던 남자의 마음을 사로잡은 여자가 나타났다. 그의 나이 스물여덟, 여자의 나이는 스물 셋이었다.


남자는 여자가 좋았다. 뭐가 그리 좋았는지 모르지만 모임에서 두 번째 만나고 헤어지는 순간 ‘어쩌면 저 여자랑 결혼할지도 모르겠구나!’라는 밑도 끝도 없는 생각이 들었다. 그걸로 끝이었다. 남자는 시큰둥해하는 여자를 밤낮으로 쫓아다녔다. 무얼 물으면 ‘예’나 ‘아니요’, 어쩌다가 맛있는 걸 사주고 싶어서 무엇을 먹을지 물어보아도 ‘아무거나’라고 밖에 말하지 않는 여자에게 사흘이 멀다 하고 시(時)를 지어 받쳤다. 여자가 결혼을 승낙하던 날, 첫 키스의 감동을 주체하지 못해 밤새도록(일곱 시간동안) 집까지 걸어갔다.


마음을 허락한 여자가 말한다. 자신의 집에서는 여자의 발언권이 없다고. 부모님과 오빠가 둘 있는데 자신이나 엄마에게는 발언권이 없다고. 아무리 바른 말을 해도 무시당한다고. 그래 자신에게 있어 말은 해봐야 소용없는 게 되었다고. 그 말을 들은 남자가 결심했다. ‘그 아픔을 모두 치유해주겠다. 절대로 당신을 무시하는 법 없이 당신이 잘되도록 배려하겠다.’고.


둘은 남자의 나이 스물아홉, 여자의 나이 스물넷에 결혼했다. 그리고 신혼여행을 떠났는데 첫날밤부터 남자의 시련이 시작됐다. 여자가 몸을 허락하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부부간에도 강간이 성립한다고 믿었던 남자는 스물아홉 해나 기다려온 순간을 꾹 참고 견뎠다. 그러나 여자는 계속해서 몸을 허락하지 않았고 둘은 결혼 초부터 심각한 문제에 부닥뜨렸다. 그러한 상황은 십 수 년이 지난 지금도 별로 나아진 게 없다.


그 문제만 빼면 남자는 행복했다. 결혼 전과 마찬가지로 경어를 사용했고, 여자의 의견을 존중했으며 시가와 처가를 차별하지 않았다. 새벽잠이 많은 여자를 배려해서 늘 아침밥상을 차려놓고 깨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자와 남자가 함께 사는 건 쉽지 않았다.


남자는 일어나자마자 밥을 먹도록 어머니에게 훈련되었고, 여자는 아침밥 대신 5분이나 10분쯤 더 자는 게 오랜 습관으로 굳어진 상태였다. 남자가 아침밥을 준비해놓고, 식사를 청했지만 여자는 입맛이 없다고 그냥 출근했다. 그것이 첫 번째 부부싸움이었고, 둘은 냉랭한 분위기속에서 출근했다.


여자는 맞벌이생활을 하면서도 집안일의 대부분을 감당하는 남자에게 고마워했다. 하지만 남자가 느끼기에 그 감정은 1년도 가지 못했다.


남자와 여자에게 아이가 생겼다. 여자는 아이를 낳고도 직장에 다니길 희망했고, 남자는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어차피 둘 중의 한명이 해야 할 일이라면……’ 스스로 일을 찾아하는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성격 탓도 있었지만 남자는 사랑하는 여자의 의견을 존중해주고 싶었다. 또 다시 남자의 고난이 시작됐다.


젖먹이 똥 기저귀를 빨면서 집안에 갇혀있는 것만으로도 힘겨운데 양가어른들을 비롯한 모든 사람들이 무능력자취급을 했다. 아이에게 또래집단을 만들어주기 위해서 동네의 아기엄마들이랑 육아모임도 만들고, 유아수영반에서는 수영복만 입은 아줌마들 사이에서 수영팬티 한 장만 걸친 채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남자는 주부습진과 주부우울증을 겪으면서도 열심히 살림과 육아를 담당했다.


여자는 온종일 아이와 씨름하면서도 살림을 해내는 남자에게 고마워했다. 하지만 남자가 느끼기에 그 감정은 1년도 가지 못했다.


남자는 ‘부부란 서로의 눈을 응시하면서 하나, 둘, 구령에 발맞춰 같은 지점을 향해 달려가는 2인3각 경기의 선수’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늘 여자와 상의하고, 함께 행동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여자는 조금씩 달라졌다. 언젠가부터 혼자 생각하고, 혼자 행동하며 남자에게 통고하기 시작했다. 이건 아니라고 남자가 얘기하면서부터 여자와의 잦은 분란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럴 때마다 남자는 속으로 결심했다. ‘애가 조금만 더 자라면 난 훌쩍 떠나버릴 거야.’, ‘아! 빨리 경제적으로 독립해야지.’ 이런 생각도 했다. ‘지금의 결혼제도보다 2-3년 단위의 계약결혼이 더 낫지 않을까? 그럼 서로에게 더 집중할 텐데.’, ‘일부의 소수민족처럼 일처다부제사회가 더 좋지 않을까?’


지루한 싸움과 오랜 고민 끝에 남자의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 ‘부부란 따로국밥이 아닐까?’ 국물에 말아진 국밥이 아니라 밥과 국물이 따로 존재하는……. 아! 사랑, 넌 도대체 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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