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넌 뭐니?(결혼16주년을 돌아보면서)

글쓴이 밥상차리는 남자

등록일 2009-11-27 11:25

조회수 1,645

글자확대 글자축소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블로그 네이버밴드 페이스북 트위터


해마다 연말이 되면 힘들어하는 남자가 있었다.

‘올해는 뭘 했지? 아! 또 아무것도 없어. 물이 손가락사이로 빠져나가듯이 아무것도 남은 게 없어. 세월만 또 낭비했단 말이야. 이렇게 나이만 한 살 먹고 마는 거야?’ 그 남자가 열아홉에서 스물로 넘어가는 연말에는 기어코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꾹꾹 눌러 참았던 울음이 흐느낌으로 새어나오더니 급기야는 온몸을 들썩이면서 꺽꺽 통곡하고 말았다.


차츰 울음이 잦아들면서 남자는 비 맞은 중처럼 혼자서 중얼거렸다. “절대로 서른이 되는 겨울은 혼자 나지 않을 거야. 절대로, 절대로.” 서른으로 넘어가면서도 혼자라면 그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고 죽어버릴 것 같다는 공포감에서 저도 모르게 중얼거린 것이다. 그 바람이 이루어진 걸까? 해마다 성장통을 앓던 남자의 마음을 사로잡은 여자가 나타났다. 그의 나이 스물여덟, 여자의 나이는 스물 셋이었다.


남자는 여자가 좋았다. 뭐가 그리 좋았는지 모르지만 모임에서 두 번째 만나고 헤어지는 순간 ‘어쩌면 저 여자랑 결혼할지도 모르겠구나!’라는 밑도 끝도 없는 생각이 들었다. 그걸로 끝이었다. 남자는 시큰둥해하는 여자를 밤낮으로 쫓아다녔다. 무얼 물으면 ‘예’나 ‘아니요’, 어쩌다가 맛있는 걸 사주고 싶어서 무엇을 먹을지 물어보아도 ‘아무거나’라고 밖에 말하지 않는 여자에게 사흘이 멀다 하고 시(時)를 지어 받쳤다. 여자가 결혼을 승낙하던 날, 첫 키스의 감동을 주체하지 못해 밤새도록(일곱 시간동안) 집까지 걸어갔다.


마음을 허락한 여자가 말한다. 자신의 집에서는 여자의 발언권이 없다고. 부모님과 오빠가 둘 있는데 자신이나 엄마에게는 발언권이 없다고. 아무리 바른 말을 해도 무시당한다고. 그래 자신에게 있어 말은 해봐야 소용없는 게 되었다고. 그 말을 들은 남자가 결심했다. ‘그 아픔을 모두 치유해주겠다. 절대로 당신을 무시하는 법 없이 당신이 잘되도록 배려하겠다.’고.


둘은 남자의 나이 스물아홉, 여자의 나이 스물넷에 결혼했다. 그리고 신혼여행을 떠났는데 첫날밤부터 남자의 시련이 시작됐다. 여자가 몸을 허락하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부부간에도 강간이 성립한다고 믿었던 남자는 스물아홉 해나 기다려온 순간을 꾹 참고 견뎠다. 그러나 여자는 계속해서 몸을 허락하지 않았고 둘은 결혼 초부터 심각한 문제에 부닥뜨렸다. 그러한 상황은 십 수 년이 지난 지금도 별로 나아진 게 없다.


그 문제만 빼면 남자는 행복했다. 결혼 전과 마찬가지로 경어를 사용했고, 여자의 의견을 존중했으며 시가와 처가를 차별하지 않았다. 새벽잠이 많은 여자를 배려해서 늘 아침밥상을 차려놓고 깨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자와 남자가 함께 사는 건 쉽지 않았다.


남자는 일어나자마자 밥을 먹도록 어머니에게 훈련되었고, 여자는 아침밥 대신 5분이나 10분쯤 더 자는 게 오랜 습관으로 굳어진 상태였다. 남자가 아침밥을 준비해놓고, 식사를 청했지만 여자는 입맛이 없다고 그냥 출근했다. 그것이 첫 번째 부부싸움이었고, 둘은 냉랭한 분위기속에서 출근했다.


여자는 맞벌이생활을 하면서도 집안일의 대부분을 감당하는 남자에게 고마워했다. 하지만 남자가 느끼기에 그 감정은 1년도 가지 못했다.


남자와 여자에게 아이가 생겼다. 여자는 아이를 낳고도 직장에 다니길 희망했고, 남자는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어차피 둘 중의 한명이 해야 할 일이라면……’ 스스로 일을 찾아하는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성격 탓도 있었지만 남자는 사랑하는 여자의 의견을 존중해주고 싶었다. 또 다시 남자의 고난이 시작됐다.


젖먹이 똥 기저귀를 빨면서 집안에 갇혀있는 것만으로도 힘겨운데 양가어른들을 비롯한 모든 사람들이 무능력자취급을 했다. 아이에게 또래집단을 만들어주기 위해서 동네의 아기엄마들이랑 육아모임도 만들고, 유아수영반에서는 수영복만 입은 아줌마들 사이에서 수영팬티 한 장만 걸친 채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남자는 주부습진과 주부우울증을 겪으면서도 열심히 살림과 육아를 담당했다.


여자는 온종일 아이와 씨름하면서도 살림을 해내는 남자에게 고마워했다. 하지만 남자가 느끼기에 그 감정은 1년도 가지 못했다.


남자는 ‘부부란 서로의 눈을 응시하면서 하나, 둘, 구령에 발맞춰 같은 지점을 향해 달려가는 2인3각 경기의 선수’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늘 여자와 상의하고, 함께 행동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여자는 조금씩 달라졌다. 언젠가부터 혼자 생각하고, 혼자 행동하며 남자에게 통고하기 시작했다. 이건 아니라고 남자가 얘기하면서부터 여자와의 잦은 분란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럴 때마다 남자는 속으로 결심했다. ‘애가 조금만 더 자라면 난 훌쩍 떠나버릴 거야.’, ‘아! 빨리 경제적으로 독립해야지.’ 이런 생각도 했다. ‘지금의 결혼제도보다 2-3년 단위의 계약결혼이 더 낫지 않을까? 그럼 서로에게 더 집중할 텐데.’, ‘일부의 소수민족처럼 일처다부제사회가 더 좋지 않을까?’


지루한 싸움과 오랜 고민 끝에 남자의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 ‘부부란 따로국밥이 아닐까?’ 국물에 말아진 국밥이 아니라 밥과 국물이 따로 존재하는……. 아! 사랑, 넌 도대체 뭐냐?

마이 페이지 > 스크랩북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소중한 글에 감사 댓글 남겨주세요.

 담기 인쇄 답글 목록 글쓰기


글수 글수(36,877 )
쓰기
번호 제목 글쓴이등록일조회수
22028   라식 수술 할까 하는데 조언 부탁드려요 6 율양2009-11-282115
    언니가 그곳에서 라식수술 받았어요~ 해피맘2009-11-301047
22027   강간에 관한 댓글질 2 디토2009-11-272002
22026   오늘오늘이 왕예쁜2009-11-271564
22025   출사표 두둥~! 3 Mr.짱2009-11-271542
22024   난방비 정말 걱정이에요 ㅡㅜ 1 두리엄마..2009-11-271194
22023   사랑, 넌 뭐니?(결혼16주년을 돌아보면서) 5 밥상차리..2009-11-271646
22022   8주 개인트레인 1 최인숙2009-11-271545
22021   보일러고장.. 이겨울님..2009-11-271724
22020   살곶이 공원에서~~ 2 현이2009-11-271716
22019   여유로운 나의 하루를 보낼려니 1 teresung..2009-11-271548
22018   11월 26일 목요일 나의 하루 2 김옥주2009-11-271348
22017   나영아,고맙다! 10 SarA2009-11-271763
22016   저출산 종합대책을 바라보는 나의 불편한 시선 4 SarA2009-11-271716
22015   건조한 나의 하루... 1 현진모2009-11-261420
22014   애들 생일은 어떻게 보내야되죠? ㅠㅠ 1 노래소리..2009-11-262013
22013   늘근도둑이야기를 보고나서... 2 송세용2009-11-261457
22012   혼인빙자간음죄 폐지를 환영하며 2 누봉이2009-11-262022
22011   아내가 사는 법 2 고석관2009-11-261325
22010   금융사기당했어요.. 4 쓰러지지..2009-11-261637
22009   은행에 공과금내고 슈퍼갔다 왔어요 1 박순희2009-11-261419
22008   병원에 다녀왔습니다.. 이호준2009-11-261803
22007   짬이 없어.. 1 꽁이2009-11-261583
22006   아침일찍 시작에서 일찍 자는 저의 일상~ㅎ 1 이혜선2009-11-261326
22005   오늘은 행복하셨나요? 1 박미정 2009-11-261291
22004   후원이 필요한 아이들!. 검색어 '아프리카 영양실조' 미노맘2009-11-264328
22003   하루 참 길다. 이영주2009-11-261527
22002   애봐준 공 없다더니 2 teresung..2009-11-261427
22001   남편의 김치찌개 2 배해순2009-11-261182
22000   유행바이러스? 감히 내 아이에게? 니오2009-11-2622517
21999   잠이 안오네요.. 3 이겨울님..2009-11-261427
쓰기
검색 목록보기


이벤트·체험단

기간 ~

쑥쑥플래닛앤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