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년과 며느님
딸아이가 이른 아침 출근 후, 귀가 할 시간이 지났으나 아직 이다. 늘 점심 전에 돌아오는, 모두가 부러워하는 직장을 가진 딸아인데 뭔 일일꼬. 자꾸만 현관 문 쪽으로 귀가 간다. 며느님은 이제 배가 제법 불러 눕는 시간이 길어졌다. 제 방문을 닫았으니 집엔 나 혼자인 것 같이 적적하다.
휴대폰이 운다. 잽싸게 열어보니 딸년이 보낸 문자다.
“엄마 친구랑점심먹고들어가요 점심맛있게드샴^^”
에구~. 혼자인 시간이 길어지게 생겼다.
누운 며느님은, 아마 점심을 먹자는 소리보다 더 자게 하는 것이 반가울 듯. 이건 어디까지나 내 추측이지만, 거의 틀림이 없는 ‘내 경험론’이다. 내 스스로 점심을 해결하는 것이 그녀를 돕는 일이거니. 조용히 먹고 치우자 싶다.
점심은 말 그대로 ‘점’만 찍는 것이라 했거니. 그런데 신새대 막내 딸년은 그럴싸한 반론을 편다. 기를 쓰고 옛말이라 한다.
“점심을 황제처럼 먹어야 저녁을 간단히 먹게 될 것이고, 그게 건강에 일조를 한다.”고. 옳거니 영악한 딸년의 말이 맞는 듯도 하다.
늘어놓을 수 있는 대로 꺼내 놓은 반찬이 진수성찬이다. 배추김치, 무김치에 갈치조림. 장조림, 깻잎 짱아치에 시금치나물. 멸치풋고추조림, 마늘 짱아치에 콩자반. 볶은 묵은지, 날 배추 속에 양념고추장. 우와~. 쓰잘데기 없는 반찬이 십 이첩 반상기를 채울 만하네. 혼자 먹을 땐 김치와 나물과 생선조림이면 그만인 것을……. 꽤나 심심한가 보다. 손도 안 갈 반찬을 늘어놓고 가짓수를 세고 앉았으니.
두 시가 지나자 며느님이 화들짝 놀란 얼굴로 방문을 연다. 이미 챙겨 먹은 흔적이 있는지라 곤욕스러운가 보다. 안 그래도 괜찮다 이르니 모자라는 잠을 채우러 다시 방으로 들어간다. 에~구~. 저도 챙겨 먹어야 며느님도, 그리고 그녀 뱃속의 내 손자도 기력이 날 터인데……. 공연한 잔소리라 할까 싶어서 말도 건네지 못하고 멀쑥하게 문 밖에 섰다가 돌아선다.
잠시 뒤에 말쑥하게 차려입고 며느님이 방끗 웃으며 나온다. 친구를 만난다 한다. 저녁 전에 들어온다는 말도 잊지 않는다. 수다를 떨다 보면 쉽지 않을 걸? 이도 ‘내 경험론’이다.
정말 혼자가 되어 거실 소파에 길게 눕는다. TV도 이 시간엔 별로다.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핸드폰 우는 소리에 눈을 뜨니 다섯 시다.
“엄마 저녁도먹고들어가요. 저녁맛있게드샴^^”
딸년의 문자다. 요런 요런. 그래. 연애나 한다면 내 봐주마. 서른넷이 적어서 연애질(?)을 하느냐고 묻겠는가. 어서 연애라도 해서 결혼이나 했음 좋겠다. 아니, 정말 누굴 만나는 걸까? 궁금해진다.
갑자기 내 특유의 장난기가 발동을 한다.
“알았샤 꼭바람난고양이같으~^&^”
문자를 전송하고 나니 금방 답이 되돌아온다.
“냐아~옹ㅋㅋ”
흐흐흐. 깜찍한 것.
무료하고 심심하던 차 휴대폰이 또 운다. 왠 문자? 내 핸드폰이 오늘은 호사를 하네?!
“어머니 오빠만나서저녁먹고들어가고싶은데요...^^” 며느님이다. 왜 아니겠어. 그러고도 싶겠지. 아~ㅁ. 그럼 어디, 그녀에게도 장난을 좀 쳐 봐봐?
“그러렴 꼭바람난고양이같으~^^”
문자를 보내고 한참을 기다려도 답이 없다. 뭐여? 시방 시어미 문자를 씹은 겨? 허긴. 그녀의 물음에 내가 답을 한 폭이니 또 무슨 답을 기다려. 그럼 저녁은 영감과 나만 해결하면 되겠군. 영감이 좋아하는 조기나 한 마리 굽고 콩나물을 팍팍 넣어서 김칫국이나 시원하게 끓여야지.
작은 냄비에 밥물을 조율하는데 현관문이 바람을 날리며 급히 열린다. 며느님이다. 아들도 뒤 따른다.
“어째? 밥 먹고 들어온다더니…….”
“엄마 문자 받고 쟤가 새파래서 빨리 들어가자고. 하하하.”
대답을 하는 쪽은 아들이고, 아들의 그 웃음도 내겐 의미가 심상치 않게 들린다.
에구~. 에구구~. 며느님도 딸년처럼,
“냐아옹~ㅋㅋ” 한 자만 보내면 될 것을…….
발 뻗을 자리를 보고 누우라 했던가. 재미로 친 장난에 지금 후회가 막급이다. 내가 그녀의 시어미라는 사실을 나는 까맣게 잊는 날이 많다. 바보. 바보. 나는 큰 바보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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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인맘
답글
만석
상인맘님.
그래요. 저희 시어머님은 저 결혼 뒤 바로 저에게 따님들 흉을 보셨어요.
현명한 제 시어머님의 '우리 고부간 가까와지기 작전'이셨던 거 같아요.
저도 곧 그리 되겠지요?
댓글 감사합니다^^
화니맘
만석님 넘 멋지십니다^^
저도 울 시어머니께 그런문자 함 받아보고 싶네여..
한번도 없어서리..ㅋㅋ.
답글
만석
화니님.
먼저 문자 보내 보세요.
문자 보내는 거 모르시면 가르쳐 드리구요.
좋아하실 거예요^^
팬지
며느리는 결코딸이 될수없고 시어머니두 결코 엄미가 될수없듯
어려운 고부사이입니다.
세상이바뀌어두요.
진실로 서로 사랑하면 먼훗날 그마음을 알수있겟지요.^^
답글
만석
팬지님.
며느리가 시어미의 맘을 액면 그만큼 알아 주려니 기대하지 말아야 합니다.
결코 그리 될 수는 없지요.
기대 없이 사랑을 주는 게 정답입니다요^^
대지맘
답글
만석
대지맘님~.
아이고 그렇군요.
생각이 짧았네요.
그러게 젊은 사람들한테 배운다니깐요 ㅎ~.
나도 한 수 배웠습니다^^
대지맘
답글
만석
그러겠지요?
아직은 서로의 맘을 잘 몰라서리...
노력해야지요.
댓글 감사합니다^^
또미
아,,꼭 그런건 아니래도 시어머니와는 아무래도 장난도 어렵긴해요.
근데..저 상황 너무 재밌긴 합니다. ^^
울 시어머니는 아직 문자를 못 하시는데..ㅎㅎ
몇년 전에 울시어머니가 저러러 "우리 아들은 살찐 여자 안 좋아하는데.."라고 하셨는데..그때 저 엄청 화냈었거든요.ㅋ근데 시간이 지나서 곰곰히 생각해보니..살 좀 빼서 사랑 받고 살란 소리였던 듯..
이것도 오해라면 오해였겠지요. ^^;;
답글
만석
또미님.
역시 현명하십니다.
좋은 쪽으로 이해하면 우선 내 맘이 편합니다.
그리고 다른 이들이 보기에도 곱게 보이구요^^
송화
며느님은 시어머니가 기침만 크게해도 놀란다는데...
바람난 고양이 같다고 했으니..
눈섭을 휘날리며 들어올수밖에..
내마음은 그게 아니었는데...
그쵸? 시어머니....
답글
만석
송화님아.
그러게 말일세.
난 며느리 앞에서 많이 망가지려고 노력 중이라네.
그래야 거리가 좀 좁아지려나?^^
미즈천사
아...시어머니만...쿨하게 바꿔선 안되는군요.
맞받아치는 며느리도 쿨하게 바꿔야 ㅎㅎㅎ
답글
만석
글쎄 그게 잘 안 되는 게 바로 고부간의 문제지요.
좀 더 시간이 필요할 듯해요^^
제비꽃
ㅎㅎㅎㅎ
딸내미에게 보낸 바람남 고양이가트 ``와
며느님에게 보낸 내용은 좀 달라야 할것을여
며느님이 깜닥 놀라게도 생겼구먼여 ㅋㅋㅋ
며느님과 오사바사 즐겁게 보내시와여 ~`
답글
만석
제비꽃님아.
그러게 내가 좀 모자라는 사람이 아닌가.
지금도 후회가 막심하네.
차차 이유를 들어 말 할 기회가 있겠지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