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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가장 후회했던 일 중 하나가 바로 ‘대학로에 있는 대학에 다녔으면서도 4년 동안 연극 한편 제대로 보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지금 돌이켜 보면 별로 한 일도 없는데 그 당시엔 왜 그렇게 마음의 여유가 없었을까…
어쨌든, 운좋게 당첨되어 보게 된 연극 ‘폭풍의 언덕’. 사춘기 시절 나에게 ‘도대체 사랑이란게 뭐길래 저리도 지독할 수 있단 말인가’ 하는 의문을 품게 만들었던 에밀리 브론테의 고전.
그렇지만 확실히 소설과 연극은 조금 달랐다. 시간적, 공간적 제약 때문인지, 고뇌하는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의 심리가 절절하게 묘사되지 못한 것 같은 아쉬움이 있었다. 소설을 읽었을 때에는 히스클리프에 대한 연민과 동정심에 그의 광기 어린 행동에 전적으로 공감했었는데 연극에서는 히스클리프가 왜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었는지 그 배경에 대한 묘사가 약간 부족한 듯 싶었다. 또한 캐서린이 왜 히스클리프를 버리고 에드가를 택할 수 밖에 없었는지에 대해서도 너무 단편적으로 묘사된 것 같아 조금 아쉬웠다. 자칫하면 원작과 달리 (내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캐서린이라는 캐릭터가 단순히 변덕스럽고 허영심 많은 철없는 여자에 불과하게 비춰질 수도 있지 않을까 싶었다. 마지막으로 또 한가지, 극중 캐서린의 유령이 쓸데없이(?) 너무 자주 등장해서 몰입을 방해하는 감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구성도 탄탄하고 배우들도 만족스러운 연기를 펼쳤다고 생각한다. 특히 젊은 시절의 히스클리프와 헤어튼을 동시에 연기한 배우가 매우 인상적이었다. 과연 워더링 하이츠의 그 스산하고 황량한 느낌을 어떻게 살려낼까도 무척 궁금했었는데 좁은 무대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느낌을 관객들에게 전달하고자 애쓴 흔적이 엿보였다. 비록 나는 원작 소설과 연극을 비교하느라 약간 비판적인 의견을 내 놓았지만, 원작 소설을 읽어본 적이 없다고 한 내 친구는 연극을 본 후 아주 후한 점수를 주었다. 아무튼, 오랜만에 좋은 연극 한편을 보고 나니 마음이 아주 풍성해 진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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