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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무슨 일이고~ 참말로 염병을 하네'
여든이 멀지 않은 갑님씨의 전화목소리가 몹시도 짜증스럽다
곧이어 갑님씨는 늙수구레한 딸에게, 비누로 손씻어라 , 마스크 꼭 써라, 아니 밖에를 아예 나가지마라라며 예닐곱살 먹은 어린아이에게 하듯 당부하였다.
'엄마도 밖에 나가지마, 면역력 약한 노인들에게 치명적이라잖어'
'나는 까딱없다, 내가 염병을 해서 괜찮다. 염병한번 앓으면 만병이 사라진다 카더라'
'아이고 누가 그래~~ 엄마가 의사야?'
'아니 염병한번 앓고 났더니 그 담부터는 잔병이 하나도 없었다 , 요새 이기 염병이 아이고 뭐꼬? 꼬로난가 우한인가뭔가 열이 나서 죽는다 카대, 염병도 그랬다'
갑님씨의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렸다
그러니까,
갑님씨가 시집을 오고 얼마 안되었을때의 일이다.
밭에 나락이 한창 피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바삐 시집을 보냈던 갑님씨의 동갑내기 둘째 시누이가 몸이 아프다고 친정(갑님씨 시집)에 다니러 왔다
선산댁(갑님씨 시어머니)는 친정에 온 딸이 혹시 태기가 있어서 그런가 싶어 돼지를 잡아 한바탕 푸짐하게 먹였는데 그날부터 시누이가 드러누어버렸다
그냥 드러만 누운게 아니라 열이 들떠 갑님씨가 시집올때 해 온 비로도 한복을 몸에 걸치고 다니다 쓰러져 자는 해괴한 행동도 일삼았다.
깡깡 시골 산촌에 의학지식이 있는이가 만무하였으니 다들 갑님씨 둘째 시누이의 해괴한 행동에 혀만 끌끌차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둘째 시누이 병시중을 들던 갑님씨도 몸이 으슬으슬하고 몸에 열꽃이 피더니 고만 까부룩 정신을 놓고 말았다
갑님씨가 정신이 든 것은 한창 나락을 베기 시작할 무렵이었으니 거의 5개월을 정신을 놓고 있었던 것이다. 삼단같던 갑님씨 머리카락은 거의 다 빠져있었고 이미 동네에는 상여가 여럿 나갔다고 했다
다행히 갑님씨에게 염병을 옮겼던 둘째 시누이는 병이 나아 자신의 집으로 돌아간지 오래라하였다.
지금으로 말하면 장티푸스였던 염병은 열이 펄펄 끓고 온몸에 열꽃이 피면서 머리카락이 빠지는 병이었다
오죽 무서운 병이었으면 '염병을 하다 땀도 못내고 죽을 것' 이란 욕이 있었을까.
지금은 줄여서 "옘병을 하네" 라는 욕으로 남아있는 병이다
당시 염병을 앓았던 갑님씨는 열여덟살이었기에 젊어서 면역력이 강해 살아남았지만
이제 여든을 바라보는 갑님씨에게 우한코로나는 겁나는 병이다.
그러나 오개월을 아무 정신없이 죽을 고비를 넘겼기에 염병이 모든 몸의 병증을 쓸어갔다고 믿는 갑님씨가 걱정스럽다
내가 있는 지방은 병원의사도 간호사도 확진자가 되었고 하루하루 확진자가 늘어나고 있다
젊은 시절의 갑님씨처럼, 확진자, 의심자 모두 건강하게 떨치고 일어나기를...
그리고.. 의학이든 과학이든 눈부실 정도로 발전하고 있으나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 앞에서는 무기력해지는 것을 보며
그것이 신이든 자연이든
내 초라한 삶이 새삼 더 겸손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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