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승달님, 제발 제 글을 찬찬히 읽어보세요
제가 언제 초승달님께 부안에 가보았냐고 물었나요?
울진,경주,고리를 말씀드린 거지요~~~~~ (아이구 답답..)
전 초승달님과 개인적으로 토론을 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전 제 개인 의견을 올린 것 뿐이고
초승달님께서도 개인의견을 올리시고 싶으면
타겟을 누봉이로 잡지마시고
부안에 대한 개인적 의견을 말씀하십시오
좌판의 고등어라는 부분에 대해서 말씀인데
제 글을 다시 읽어보시지요
좌판의 고등어는 공지영의 소설에 나오는 것으로
과거,학생운동의 여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현실에 적응하지못해 방황하는 과거 운동권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전 그 단어를 학생운동에 이어 환경단체나 기타 시민단체에서
반대를위한 반대를 하는 일부 과거 운동권을 지칭한 말입니다
제 글을 찬찬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전 초승달님과 개인적인 토론을 원치 않습니다
다만 누구나 자신의 의견을 올릴 수 있습니다.
자신과 의견이 반대된다고
상대를 물고 늘어지는 그런 일들 없이 자유로운 토론의 장이 되길 바랍니다
전 내일 부안으로 출발합니다
초승달님의 경험이 있듯이 제 경험가 가치관과 생각이 있습니다
전 한수원에 장사하러 다니는 사람이고
초승달님께서 인신공격성인 글.... 그러니까 그렇지 라는 식의 글은
삼가해주시길 정중하게 부탁드리겠습니다
비지니스를 한다고 그 비지니스에 제 가치관까지 홀랑 말아먹는 사람은
아닙니다.
한가지만 더 말씀드리지요.이건 초승달님께가 아니라
이글을 읽는 모든 분들에게 드리는 말씀입니다
전 더이상 초승달님과 개인적인 토론은 않을 생각이니까요
유관순열사가 돌아가신게 무엇 때문일까요?
일부 싸가지 없는 초딩들이 우스개로 그러대요
여자가 앞에 나서다가 죽은거라고..
맞습니까?
군수가 싸돌아댕겨서 화난 군민한테 맞은거니 군수 잘못이라구요?
맞습니까?
예수께서 재판에 나서기 전날, 제자들이 울면서 피하길 권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밤새도록 고뇌의 기도를 하면서도
빌라도 앞에 나가 재판을 받고 십자가에 못박혔습니다.
예수가 안도망가서.쥐새끼처럼 도망가지 않고 재판에 나가서
십자가에 매달린 겁니까? 십자가의 의미가 그렇습니까?
내소사에서 얼른 안도망가서 매를 자초했다는 환경단체의 말은..
그 옛날 바리새인들보다 더 사악합니다.
유관순 열사도 예수도 자신의 신념이 당당하다 여겼기에
그렇게 했을겁니다
저는 김종규 군수를 존경하기로 했습니다
그 순간, 그렇게 당당할수 있는 사람.
비겁하지 않은 사람.
자신의 신념에 꿋꿋할 수 있는 사람.
내 신념이 이렇게 당당하니, 부안발전을 위해
신념을 가지고 한 일이니, 돌을 던져도 맞겠다는
그 말씀.
이것이 진정한 사나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겁하지 않아 매를 맞았다는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의 말에
분노를 느낍니다
그리고 이것은 부안군 홈피에 들어가면 아실 것이지만
대다수 국민들의 감정입니다
(김군수 팬카페도 생겼다지만 그렇게까지 참여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이것은 누봉이의 개인적인 취향(?) 이므로 왈가왈부 말아주십시오
누구를 좋아하건 누구를 싫어하건 그것은 제 개인적인 일입니다.
초승달님.
의견이 있으시면 누봉일를 부르지마시고
부안에 대한 실상을 게시판에 풀어놓으세요
가장 가까운 곳에 계시니 가장 잘 아실 것 아닙니까?
그래서 많은 사람들에게 부안에 대한 초승달님대로의 실상을 알리십시오
누봉이는 한수원에서 돈벌어먹으려고 하지만
그이유만으로 한수원을 지지하는 덜떨어진 인간은 아닙니다.
전 앞으로도 계속 한수원과 정부와 김군수를 지지할 것입니다
초승달님은 나름대로의 일을 하십시오.
이것이 민주주의 입니다
인신공격과 폭력을 뺀,논리로 설득하십시오
그럼,, 수고하시고
늘 건강하십시오
밑의 글은 부안군청 홈피에서 퍼 온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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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현 신부가 9월 16일자 한겨례 신문에 기고한 “부안은 싸우고 있다”를 읽어 보면
그가 과연 사랑과 용서를 가르치고 실천하는 종교지도자로서의 자질을 갖춘 사람인가를 의심케 한다.
무엇보다 그는 김종규 부안군수의 폭행 사건에 대해
군수가 일부러 폭행을 유도하지 않았나 하는 상상하지도 못할 의심을 하고 있다.
숨어 지내고 도망 다녀야 할 군수가 어디라고 군민들 앞에 나설 수 있느냐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러면서 그는 군수가 폭행당한 사실을 언론이 대대적으로 보도한데 대해 웬 ‘호들갑’을 떨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하고 있다.
그의 말대로라면 군수가 자신의 소신에 따라 내린 정책적 판단 때문에
자신을 군수로 뽑아준 군민들을 피해 숨어 다니고 도망 다녀야만 옳다는 것인가?
자신의 소신을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려는 노력을 한 군수가 잘못됐다는 말인가?
자신들의 생각과 다른 정책을 펼쳤다고 군수를 폭행하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당연히 언론에서 대대적으로 다룰 수밖에 없다.
그런 언론을 ‘호들갑’이라 생각하는 사람을 보고 과연 종교지도자라고 말할 수 있는가?
그는 또한 사과를 해도 부족한 판에 구국지사처럼 당당하게 행동한 군수의 태도가
폭력을 자초했다며 시위대의 군수 폭행이 정당한 것으로 평가했다. 폭력의 정당성을 열변하는 신부의 지극히 편파적이고 감정적인 태도를 아무리 이해하려 해도 이해할 수가 없다.
또 그런 폭력적인 글에 아까운 지면을 한껏 할애한 신문의 태도도 이해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