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오월? 유월? 암튼 땀이 삐질삐질 나던 어느 날.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선 모 전시장엘 갔다.
언론에서 교육적 효과가 크다고 난리법석을 떨었던가...암튼 이 지방 구석에 쭈그리고 사는 아줌마인 내가 알 정도로 그 전시는 인기라고 했다.
(지금은 부산에서 하고 있다)
거금 만원을 주고 들어갔다.
그리고 나는 교육이라는 이름의 껍데기를 뒤집어 쓴, 거대하고도 음산한 그림자의 냄새를 맡게 되었다.
이국의 파란 눈동자는 아무런 감정을 보이고 있지 않았다. 뱃속에 태아를 넣은 채, 그것도 반은 껍데기와 살을 얌팍지게 도려낸 어떤 여자를 보았을 때, 나는 눈물이 나려고 했다. 그녀에게 무한한 기쁨이었을 아이와 그녀의 생.
그리고 죽어서도 온갖 인위적인 동작으로 굳어진 채, 핏줄을 심장을 오장을 폐와 안구를 드러낸 체 서 있거나 앉아있거나 철봉에 매달린 사람들.
그리고 그 앞에서 쪼그리고 앉거나 구부정하게 서서 필기도구로 열심히 메모를 하고 있던 아이들.
그 속에서 나는 진정한 침묵이 무엇인지, 그리고 교육이란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다.
대충 한 바퀴 돌고 나는 뱃속 아이를 가진 채 서 있던 그녀에게 작별을 고하고 밖으로 나왔다. 물론 문 밖에서는 만드는 과정(이건 정말 끔찍하다, 정말 비교육적이다)을 보여주는 비디오를 사려는 사람들의 장사진을 뚫고 정말 해가 내려쬐는 바깥으로 나왔다.
심호흡을 하고도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해 안절부절. 나와 6살짜리 우리 딸은 한참 동안 서로 이 전시회에 대해 얘기하지 않았다. 그 후로 지금까지도.
윤금이씨 사진을 시내에 나갔다가 본 일이 있다. 아주 끔찍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비교육적이거나 혐오스럽다고 느끼지 않았다. 나는 그것보다 더 한 것도 봤다. 오월의 광주도 그랬고 ....이 모든 것들은 우리가 눈 돌리고 싶지만 그것이 우리의 역사이기에 나는 한 번도 그것이 끔찍해서 숨겨야 한다고 생각해보지 않았다. 미선이 효선이 사진을 봤을 때도 나는 그것이 너무 끔찍해서 숨겨야 할 사진이라고 보지 않았다.
교육이라는 것은, 분명한 목적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람을 살리기 위한 사람이라면, 그런 모습으로 그런 식으로 전시를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는 언론에서 광고하는 것을 막을 수가 없다. 내가 똑바로 정신을 차리고 옥석을 가려내야 할 뿐, 다른 도리가 없다.
광고를 못하는 역사. 부끄러워서 숨기고 싶어하거나, 정치적인 이유 때문에 말을 꺼내지 못하는 것들에 대해, 선생님이 교실에서 교육을 하는 것이 왜 나쁜 것인지? 아이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순진하지도, 맹하지도 않다고 나는 생각한다.
교육이라는 이름의 껍데기를 쓴, 그림자들이 얼마나 많은지, 왜 우리는 그런 것 먼저 가려내려고 하지 않는지.....선생님의 교육방법은 그것이 비도덕적이지 않는 한, 가르치는 사람 고유의 권리가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