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인명은 제천이다.'라는 말을 하게 된다. 그 만큼 나의 삶과 죽음은
내 스스로 주관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우리의 유교사상에서는 부모로부터
받은 신체를 내 맘대로 할 수 없다는 생각이 지배적이고 종교적 입장에서
보았을 때 나의 삶을 주관하는 신을 배반하는 일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요즘은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고 삶을 선택한다는 말을 많이한다.
물론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고 가꾸어 나간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런데
자신의 목숨마저 자신 마음대로 하려는 성향이 강해 젊고 활발한 나이에
생명 줄을 놓아 버리는 경우가 많이 발생한다. 그래서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그런 반면 육체적 고통에 시달리고 생명을 다했다고 느끼는 사람들에
대한 '안락사'는 뜨거운 감자로 사회의 이슈로 부상하고 있다.
누군가 다른 사람의 삶의 형태를 보고 삶의 질을 논할 수 없다고
저자는 분명히 말하고 있다. 그럼에도 그는 고통받는 이들에 대한
안락사에 대한 의문을 끊임없이 제기하고 있다.
나이가 들어 가면서 나 또한 안락사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노쇠한 몸을 이끌고 움직이도 못하는 침대에서 남은 여생을 보내야 한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 그때에도 삶에 대한 애착이 있을까?
인간은 식물을 가꾸고 아름답게 만들 수는 있지만 생명을 창조해 내지는
못한다. 물론 요즘은 생물학의 발전을 이루어 다양한 생명체를 만들어 내지만
결국 어떤 생명체로부터 얻어지는 결과물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스스로
세상에 나올 수 없다는 뜻이다.
'이젠, 죽을 수 있게 해줘.'에서 저자는 안락사를 돕고 간접 자살을
돕는 이야기도 한다. 환자가 느끼는 고통을 4단계로 나누어 설명하기도 한다.
또한 저자는 우리의 영혼은 육체와 다르게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 더 활발히
움직여 빛을 발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영혼이 사라지면서 쇠퇴해진 육체만이 남는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영혼이 사라진 육체의 생명은 아직 남아 있는 것일까?
종교적이든 세속적이든 이 순간을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아무도 없다.
다만 고통을 줄여주기를 원하고 줄여줄 수 있는 것은 각자 자신의 선택이 아닌가.
이 책을 읽음면서 왠지 더 혼란스러워진 느낌이다.
다만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생명연장의 의미를 생각해 볼 때
움직이지 못하는 쇠락한 육체만이 남는다면 나는, 안락사를 선택한다는 것이다.
아마도 그때 선택의 의사를 전하지 못하겠지만 안락사에 대한 논의는
끝나지 않은 논쟁으로 남아 있을 것 같다.






> 



최신
이전



















운영자
좋은 서평 감사합니다~ ♡
답글